장태동의 서울 문학기행

그가 노래했던 사랑의 대상은 누구였을까?

시인과 스님으로 항일의 삶을 살았던 만해 한용운의 흔적

등록 : 2016-05-26 14:40 수정 : 2016-05-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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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장 근처 한용운 동상과 시비
시, 시조, 한시, 소설 등 수백 편의 작품을 남긴 만해 한용운의 흔적을 찾아간다. 탑골공원에서 북촌 유심사 터까지 1.4㎞,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심우장까지 1.8㎞, 그리고 심우장 윗마을에 앉아 그의 시를 읽는다.

탑골공원에서 북촌 유심사 터까지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복종’ 등 잘 알려진 시부터 시조, 한시, 소설까지 두루 썼던 만해 한용운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 첫머리를 탑골공원으로 정했다.

탑골공원은 1919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항일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에 항거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살았던 한용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만해용운당대선사비’가 그곳에 있다. 1919년 3월1일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곳이 탑골공원이다. 학생들은 이곳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여기에 조선시대 세조 때 세운 절 원각사가 있었다.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과 대원각사비(보물 제3호)가 남아서 그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탑골공원을 나와 낙원상가를 지난다. 운현궁 앞을 지나 건널목을 건너면 안국역 3번 출구다. 거기서 우회전한 뒤에 조금 가다가 바로 좌회전한다. 그 길이 북촌 계동 길이다.

길 오른쪽에 있는 ‘목욕탕’이라는 큰 간판이 붙은 건물을 끼고 우회전하면 ‘유심당’이라는 이름의 한옥집이 나온다. ‘유심당’은 한용운이 잡지 <유심>을 발행했던 유심사가있던 곳이다. 한용운은 1918년 <유심>을 발행하고 이곳에서 1919년 3.1운동을 준비하면서 불교계의 참여를 이끌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심우장까지

유심사에서 창덕궁으로 걷는다. 창덕궁 맞은편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한성대입구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탄다.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앞에서 한용운이 세상을 뜰 때까지 살았던 심우장까지 걷는다.

그 길 중간에, 조선시대에 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던 선잠단지가 있다.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집, 수연산방에서 차 한잔하며정감 어린 한옥을 느껴 본다.

수연산방에서 나와서 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한용운의 동상과 시비가 보인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한용운의 상 옆에 둥그런 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님의침묵’이 새겨져 있다. 심우장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올라간다. 난간에 한용운의 시 구절을 적어 달아 놓았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 / 당신은 당신의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오셔요’ 중에서

심우장은 한용운이 1933년부터 1944년 세상을 뜰 때까지 살던 곳이다. 한용운은 이곳에서 ‘흑풍’ ‘후회’ 등을 썼다.

마당에는 한용운이 심었다는 향나무가곧게 자랐다. 90년 된 소나무가 한옥과 잘 어울린다. 방으로 들어가면 한용운에 대한 자료 몇 점과 그의 친필 액자를 볼 수 있다. 한옥 처마 아래 걸린 심우장 편액은 오세창이 썼다. 심우장이라는 이름은 선의 수행 단계를 열 폭의 그림으로 그린 심우도의 첫 번째그림인데, 소를 찾는 동자가 산속을 헤매는 모습이라고 한다. 처음 새긴 뜻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한용운이 남긴 글이 떠오른다.

 “조선 땅덩어리가 하나의 감옥이다. 그런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산단 말인가.”

한용운은 1944년 6월29일 심우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는 망우리공원에 있다.

(순서대로)심우장 현판, 유심사 터, 심우장 가는 길
 

북정마을에서 사랑을 생각하다

한용운의 흔적을 찾아 걷는 길은 심우장에서 끝나지만 심우장이 있는 마을 골목을 돌아보며 그를 생각해 본다. 심우장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차도를 만난다. 그곳이 북정마을이다.

낡은 담 앞에 붓꽃이 피었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에 화분이 놓였다. 햇볕 들지 않는 골목길 끝에서 햇볕이 전구의 불빛처럼 환하게 퍼진다. 빨랫줄 위로 떠다니는 고마운 바람에 빨래가 펄럭인다.

마을 구멍가게 앞에 앉아 조선시대에 쌓은 한양도성의 성곽과 현재의 마을이 어울린 풍경을 바라본다. 물 한 모금 마시며 한용운의 시집을 펼쳐 든다. 인간의 길, 구도의 길, 항일의 길에서 노래한 사랑, 그가 노래했던 사랑의 대상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할까?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님의 침묵’ 중에서

그러면 나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님의 주시는 고통을 사랑하겠습니다 -‘하나가 되어 주세요’ 중에서

나의 노래는 사랑의 신을 울립니다 -‘나의 노래’ 중에서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 중에서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해당화’ 중에서

님이여 이별을 참을 수가 없거든 나의 죽음을 참아 주셔요 -‘참아 주셔요’ 중에서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 주는 것입니다 -‘선사의 설법’ 중에서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글은 짧을지라도 사연은 길 터인데 -‘당신의 편지’ 중에서

일체 만법이 꿈이라면/사랑의 꿈에서 불멸을 얻겠습니다 -‘꿈이라면’ 중에서

글에 적은 한용운의 시 구절들은 종합출판 범우(주)에서 2006년에 출판한 <님의 침묵(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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