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의 만세 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지다

3·1운동 백주년 기획 연재 ④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풍경

등록 : 2019-04-11 15:15 수정 : 2019-04-1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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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전날

학생들과 육군 장병들로 북적

무리 속 누군가 “대한독립만세!”

잇따른 화답과 웃음 터져나와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서대문형무소, 만세운동 100년 맞아

한 초등생 “역사 잊은 민족 미래 없다”

백주년 기념 기획 행사 풍성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현장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10일 수요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11일) 기념을 하루 앞둔 서울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 오전 11시께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주차장으로 10여 대가 넘는 관광버스가 들어찼다. 비에 젖은 붉은 벽돌 건물은 후손들 방문이 반가워 상기된 듯 보였다. 현장학습 중인 학생들과 워크숍 나온 직장인들, 부대 행사차 단체로 방문한 육군 장병들이 대형 태극기 앞에서 자세를 잡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한독립만세!” 무리 속 누군가의 수줍은 외침에 “만세! 만세!” 잇따른 화답과 웃음이 터져나왔다.

1920년 3월1일, 수감자들의 “대한독립만세!”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내는구나. 꽁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기미독립선언서’의 한 구절이 떠오를 만큼, 실로 봄기운 가득한 현장이었다. 100년 전 그날의 함성과 선대의 독립정신을 역사 속에 박제하지 않고, 오늘날 민주주의 현장으로 생생히 불러내려는 시도가 한창인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도와 콘텐츠를 선보이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년 일제가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지었다. 1945년까지 독립지사들이 모진 고초를 겪었고, 해방 후에는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활용됐다. 민주화 인사들이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통한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벽돌 하나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이유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란 새 이름은 1998년에 얻었다.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 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된 공간은 자주독립과 자유평화수호 정신을 기리는 곳으로 조성돼 해마다 삼일절과 광복절에 기념행사를 열고, 간혹 예술가들의 전시장으로도 활용된다.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영향으로 여옥사 8호 감방이 화제다. 유관순 열사가 일제에 항거하다가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한 방이다. 한 평 남짓한 방이 큰 울림을 준다. 1920년 3월1일 서대문형무소에 울려퍼진 만세 함성의 시작점인 덕이다. 당시 감옥에 수감된 3천여 명의 수감자들도 옥중 만세를 불렀다. 옥중 만세를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와 여성 독립운동가들-어윤희, 권애라, 심영식(심명철), 신관빈, 임명애, 김향화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인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장(사적 제324호) 근처에 뿌리내린 ‘통곡의 미루나무’도 먹먹한 풍경이다.

현저동과 깊은 연을 맺어온 소설가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유년 기억을 통해 일제 강점기 ‘경성 감옥’을 생생히 묘사했다. 수인복을 입고 쇠고랑을 찬 수감자들을 담장 너머 쳐다보는 아이들이 대물린 공포로 쭈뼛거렸던 반면, 2019년 4월에 만난 미래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거리낄 게 없었다. 형무소 마당을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가로질렀다. 초등학교에서 단체 현장학습을 왔다는 이정호(9)군은 “비가 오는 날 좁은 감옥과 고문받는 선조들을 볼 때는 눈물이 날 만큼 무섭긴 했다”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음을 배웠다”는 말로 주변 친구들의 환호를 받았다.

1920년 3월1일 옥중 만세 소리가 터져나왔던 여옥사와 여옥사 내 감방.

3·1운동 특별 기획전시·강좌 등 4월 행사 풍성

서대문구가 준비해온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들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중심으로 그 빛을 보고 있다. 구는 지난 2월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던 이들 중 수형기록카드가 남아 있는 1천여 명의 기록을 모아 <3·1운동 참여자 자료집> 총 3권(각 권 500여 쪽 내외)을 발간했다. 이는 3·1운동 관련 서대문형무소 수감자에 관한 최초의 자료집으로, 지역별·죄명 분류·미포상자 300여 명 발굴과 북한 지역 수감자 280여 명 발굴이란 성과를 거뒀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항일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 활용 방안’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여는 등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있다.

문화재청과 함께 30여 점의 항일독립운동 문화재를 활용한 특별 기획전시 <항일문화재로 보는 100년 전 그날>이 호평받고 있다. 2월19일부터 4월21일까지 역사관 내 10옥사와 12옥사에서 여는 전시는 ‘식민지 감옥에 살다’ ‘3·1운동 독립의 희망을 피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민족의 희망이 되다’ 세 개의 주제로 구성했다. ‘기미독립선언서’ 원본, 이육사 친필 원고 ‘편복’, <광복군가집> 제1집, 독립운동가 <이규채 일기> 외에도 ‘대동단결선언’, 임시정부 법규, 윤봉길 선언서, 수형기록카드, 대한민국임시정부요인 환국기념 서명포 등 문화재를 볼 수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기획 강좌도 한창이다. 앞서 ‘여성독립운동가 기획 강좌’를 1~2월 5회에 걸쳐 진행한 데 이어 ‘2019년 이달의 독립운동가 특강-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를 1월부터 12월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강의실에서 연다. 대한민국역사문화원과 학계 전문가를 초청해 지난 1~3월까지 유관순 열사, 김마리아, 손병희 독립운동가의 삶과 흔적을 돌아보는 강연을 했다.

4월부터 안창호(4월16일), 김규식과 김순애(5월21일), 한용운(6월18일), 이동휘(7월16일), 김구(8월20일), 지청천(9월17일), 안중근(10월15일), 박은식(11월19일), 윤봉길(12월17일) 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차례로 다룰 예정이며, 회차마다 온라인(naver.me/xKGh7REO)으로 예약 접수한다. (70명 내외 선착순 마감, 무료입장)

역사관 내 10옥사와 12옥사에서 열린 특별 기획전시<항일문화재로 보는 100년 전 그날>.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추모비 공모전’ 열어

서대문구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추모공간 설치 디자인(스케치) 공모’를 열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독립의 가치와 중요성이 미래 세대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당선안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한센병사와 사형장 사이 중간 지점 (현 추모비 설치 장소)에 설치되며 참가 자격은 제한이 없다. 자세한 사항은 누리집(www.sdm.go.kr/news/notice)에서 안내한다. 4월24일까지. <끝>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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