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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릭터 따라 속살 비치는
모습 수록했다가 삭제 변형돼
초베스트셀러 이문세 4집도
초·재반과 싱글 버전까지 존재
재킷 뒷면이 다른 <아름다운 우리나라> 1984년 인순이의 독집 LP.
‘빽판’을 통해 팝송의 매력에 빠져든 필자가 가요 LP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대마초 파동의 기운이 드셌던 1975년 즈음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음반을 발매한 국가마다 재킷 이미지가 다른 변형 버전이 풍성한 팝송 LP처럼 대중가요에서도 같은 음반의 변형 버전이 넘쳐난다. 신중현 음반들이 가요 LP의 화두로 주목받는 이유는 선구적인 음악성도 있겠지만 재킷 디자인과 수록곡이 다른 변형 버전들이 지닌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에드포(ADD4)의 첫 앨범과 덩키스의 이정화 독집, 김민기 1집, 김정호 1집, ‘늙은 군인의 노래’가 수록된 양희은 독집, 유재하 1집, 강산에 0집 등은 이 분야의 대표적인 명반들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최대 활황기로 평가받는 80~90년대 대중가요 LP에도 많은 변형 버전들이 발견된다. 1984년 한국음반에서 발매된 인순이의 독집은 타이틀곡이 건전가요에 가까운 ‘아름다운 우리나라’다. 평범한 이 음반의 재킷 뒷면을 장식한 사진은, 인순이가 주연배우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1982년 개봉 영화 <흑녀>의 캐릭터와 같이 속살이 비치는 에로틱한 옷을 입은 독사진이라 단숨에 눈길을 잡아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반은 야한 사진을 삭제하고 ‘착한 음반’으로 변신한 재발매 버전이다. ‘퇴폐적이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고 전량 폐기된 초반은 현재 개체 수가 극소수인 희귀 버전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재킷 앞뒷면이 다른 이문세 4집 초반(위), 재반(가운데), 싱글(아래) LP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전이 팝송 전성시대였다면 이문세·이영훈 콤비가 수준 높은 팝 발라드를 제시한 이후는 대중가요가 팝의 인기를 위협하기 시작한 터닝포인트였다. 1987년 발매된 이문세 정규 4집은 대중가요의 부흥에 기여한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이별 이야기’ 등 지금까지도 애청되는 히트곡들이 담긴 명반이다. 이 앨범의 메가톤급 히트로 제작사 킹레코드도 자체 음반 공장을 가진 메이저 음반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8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답게 이 음반은 재킷 디자인이 다른 초반과 재발매 음반 그리고 45회전 싱글 변형 버전까지 혼재한다. 싱글 음반은 정규 앨범의 밀리언셀러 등극을 기념하기 위해 소량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재킷은 모자이크 분위기의 재반 커버 사진과 비슷하지만 이문세의 검정 머리카락이 파란색으로 변형돼 있다. 재킷 앞면에 ‘45 RPM'과 타이틀 2곡을 명기한 정규 앨범과는 달리 싱글에는 ‘그女의 웃음소리뿐’ ‘그대 나를 보면’ ‘이별 이야기’ 등 수록된 3곡이 모두 씌어 있다. 싱글의 재킷 뒷면도 정규반과는 약간 다른 사진을 솔라리제이션(사진을 인화하다 순간 빛에 노출해 명암의 반전 효과를 얻는 것)으로 변색 처리해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LP의 일반적인 회전수인 33과 1/3이 아닌 45회전 방식을 택해 확연하게 뛰어난 음질 구현도 매력적이다.
공일오비 정규 5집과 변형 프로모션 LP.
1994년 대영에이브이에서 발매한 공일오비(015B)의 정규 5집도 이문세 4집처럼 싱글 음반으로 제작된 변형 버전이 있다. 음반 미디어가 LP에서 CD로 대전환이 시작된 시기였기에 소량 제작한 정규반 LP도 귀하지만 싱글 버전은 실물 보기가 쉽지 않은 희귀 음반이다. 싱글은 인쇄된 재킷 없이 제작된 대부분의 디제이(DJ)용 LP와 달리 정식 인쇄된 재킷이다. 싱글 재킷 앞면 하단에는 빨간색으로 ‘비매품' ‘PROMOTION LP'가 씌어 있다. 총 10곡이 들어 있는 정규반과 달리 조용필 원곡 ‘단발머리’와 나미 원곡 ‘슬픈 인연’의 리메이크 버전 등 4곡이 수록되었다. 이문세 4집 싱글이 45회전이라면 공일오비 5집 싱글은 33과 1/3회전으로 제작되었다. 한 면에 5곡씩 수록된 정규반과는 달리 싱글에는 2곡씩 수록되었지만 한 면을 꽉 채우고 있어 45회전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1986년에 동아기획에서 제작한 들국화 정규 2집도 특이한 변형 버전이 있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1위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1집 이후 들국화는 멤버 교체의 내홍을 겪었다. 기타리스트 조덕환이 멤버들과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하면서, 2집은 트윈 기타 체제를 갖춘 6인조가 되어 발표했다. 밴드 믿음소망사랑이 공중분해하면서 들국화의 정식 멤버가 된 최구희와 주찬권, 들국화의 사운드를 주도했던 허성욱의 깔끔한 키보드 연주, 허성욱의 친구인 밴드 노란잠수함 출신 기타리스트 손진태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전인권의 개성적인 음색의 화합이 빚어낸 세련된 사운드는 들국화 2집이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은 원동력이 되었다.
초반과 달리 멤버 사인이 인쇄된 들국화 2집 변형 재킷 LP.
들국화 2집은 수많은 공연을 함께 소화했던 멤버들이 정식으로 밴드에 합류해 발표한 히트 음반이다. 이 앨범 이후 들국화 멤버들은 재결성 이전까지 또다시 흩어졌다. 원래 최성원이 먼저 불렀지만 전인권이 다시 불러 히트한 ‘제발’ 등 명곡이 즐비한 이 앨범 변형 재킷도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록곡과 재킷 디자인은 정규반과 같다. 변형 버전은 재킷 앞면에 전인권, 허성욱, 최성원, 주찬권, 손진태 등 멤버들의 초록색 친필 사인이 큼지막하게 장식되어 있다. 흔하게 보이는 정규 2집에 비해 변형 버전의 사인은 얼핏 보면 인쇄가 아닌 친필로 오해할 법해 흥미를 더한다.
정규 음반 CD 버전과 다른 파격적인 변형 재킷 이미지로 꾸민 넥스트 3집 싱글 LP.
넥스트의 정규 3집은 LP 제작이 거의 사라진 1996년에 CD와 카세트테이프로 발매되었다. 이 음반도 정규반과는 다른 DJ 프로모션용으로 제작된 변형 재킷 LP가 있다. 커버는 정규반에는 없는 파격적인 이미지가 눈길을 잡아끈다. 총 14곡이 수록된 정규 CD와는 달리 싱글 LP에는 4곡이 담겨 있다.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 밴드답게 ‘Money’는 배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로 내달리는 세상을 질타한 곡이다. 이 앨범의 최대 히트곡인 록발라드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기 전에 동성동본 금혼법을 비판한 노래다. ‘Komerican Blues(Ver. 3.1)’는 1993년 개봉한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으로, 수록했던 곡에 창을 삽입해 한국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이처럼 대중가요 LP 음반의 다양한 변형 버전들은 당대의 금지 문화와 상업적 이유 그리고 급변하는 기술 환경이 빚어낸 우울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파격적인 재킷 이미지와 다양한 버전의 변형 음반들은 지금보다 풍요로웠던 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제작 환경과 다채로운 당대의 기록 문화를 반증하는 유산들이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l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