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간 오로지 부엉이 사랑의 결실

서울의 작은 박물관 ⑤ 종로구 삼청동 부엉이 박물관

등록 : 2019-05-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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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개국, 3천여 점 작품 전시

평범한 주부인 배명희 관장

외국 한 번 안 나가고 열정 수집

중학교 수학여행 중 인연 맺어

2000년대 초 행복 나누고 싶어 개관

서양에선 지혜와 철학의 상징

우리나라 부와 밤의 수호자

배 관장, 부엉이 관련 책 집필 중


부엉이 박물관 기념촬영 장소.

51년 동안 부엉이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 종로구 삼청동에 부엉이 둥지를 만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부엉이와 함께하는 행복을 전해주는, ‘부엉이 박물관’ 배명희 관장이다.

그동안 그가 모은 수천 점의 부엉이 관련 작품들이 박물관에 빼곡하게 전시됐다. 부엉이 박물관은 ‘신기하고 아름다운 부엉이 나라’다. 동서고금의 부엉이 작품이 부엉이 나라로 여행 떠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1968년, 부엉이와 첫 만남

부엉이 박물관 외관.

부엉이 박물관에 가면 박물관을 가득 채운 부엉이 관련 전시품을 볼 수 있다. 박물관 안내 문구에 80여 나라 3천여 작품이 있다고 적힌 것으로, 전시품의 개수를 가늠한다.

부엉이 박물관 관장 배명희씨와 부엉이는 1968년 경주에서 처음 만났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경주의 기념품 판매점에서 나무로 만든 부엉이를 사면서 그와 부엉이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첫눈에 마음에 든 부엉이 인형, 그 뒤로 그의 부엉이 사랑은 장날이면 그를 장터로 이끌었다. 그가 살던 강원도 시골 마을에 장이 서는 날이면 세상 신기한 물건이 모인 장터는 그만의 신비한 세상이었다.

집일을 도우면 엄마가 용돈을 주셨다. 그 돈을 모아 장날 장터에 나갔다. 한번은 기차를 타고 마을을 떠나 강원도 묵호까지 가서 시장 구경도 하고 부엉이 인형을 사온 적이 있다. 엄마에게 혼은 났지만, 그날 엄마는 그의 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부엉이를 수집하게 된 건 서울에 오고 나서였다. 신문을 보고 대사관, 외교부, 적십자 등에서 여는 바자회가 있으면 열 일 제치고 달려갔다. 그가 외국 한 번 나가지 않고도 외국 여러 나라의 부엉이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던 이유다. 옛 동대문운동장 부근에 있었던 벼룩시장부터 청계천 일대 벼룩시장은 빼놓지 않고 돌아봤다.

부엉이 인형으로 시작한 그의 수집품은 부엉이를 주제로 한 공예품, 액세서리, 크고 작은 장식품, 생활용품, 미술품 등으로 넓혀졌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오지 못한 날은 잠을 설치곤 했다. 특이한 꿈을 꾼 날이면 그는 길을 나섰다. 목적지나 계획도 없었다. 가장 먼저 오는 시내버스를 탔다. 그리고 마음 내키는 정류장에 내려서 그 마을 시장을 찾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점찍어놓고 몇 번이고 찾아가서 사기도 했다. 파는 물건이 아닌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부엉이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린 주인들은 일정 금액을 받고 그에게 전해주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가정을 꾸려가는 주부로 살던 그는 틈틈이 짬을 내고 생활비를 아껴가며 부엉이 작품을 어렵게 모았던 것이다. 그렇게 모은 수집품으로 2000년대 초반에 삼청동에 부엉이 박물관을 열었다. 수집품을 볼 때마다 느끼는 행복한 마음을 고스란히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부엉이 박물관 탁자 위에 놓인 연필통에도 부엉이 그림이 있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부엉이 나라

서양에서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이다. 수호신으로 여기기도 한다. 티베트 등 일부 나라에서는 깨달음의 의미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물을 상징하고, 밤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도자기로 만든 독일의 부엉이 조형물에 백조의 깃털로 만든 펜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함께 있다. 지혜와 철학의 상징이다.

눈에 불이 들어오는 것은 부엉이가 밤을 지키는 것을 나타낸다. 부엉이는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보는 밤의 수호신이자 신과 소통하는 영물이라고 옛사람들은 생각했다. 네팔의 제사장이 점을 치던, 밀랍으로 만든 주사위에 부엉이 문양이 새겨졌다.

생활용품에도 부엉이 문양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부엉이 문양 3단 찬합은 재물이 깃들기를 기원하던 생활용품이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조선 시대 민화에도 부엉이가 등장한다.

재물을 상징하는 부엉이는 금고에도 있다. 옥으로 만든 부엉이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오래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어린이 프로그램인 <부리부리 박사>에서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주던 부리부리 박사도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 캐릭터였다.

외국 물품도 많다. 조지아 부엉이 도자기, 150년 정도 된 부엉이 면도칼, 영국에서 사용하던 다리미에도 부엉이 문양이 있다. 구리로 만든 페루산 부엉이가 인상적이다. 파워레인저 인형이 처음 나올 때 레인저의 수호신이 부엉이였다. 그 세트도 전시됐다.

미얀마(버마) 암수 부엉이는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백반과 검은색 안료를 칠하고 금분으로 치장했다. 오래돼서 금분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백반의 흰색은 남았다. 독일의 어느 집 지붕 위에 설치돼 새와 동물들이 지붕 위에 올라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던 것도 있다. 페루 원주민이 만든 부엉이 토기는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국제 행사에 참여한 페루 원주민에게서 산 것이다.

미국 유명 칼럼니스트 앤 랜더스가 사용하던 부엉이 돋보기.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였던 앤 랜더스가 사용했던 부엉이 조각이 있는 돋보기는 그의 가족이 시카고에서 2003년에 산 것이다. 오팔 원석으로 만든 호주산 부엉이, 네덜란드 부엉이 종, 독일의 부엉이 저울…. 전시품 하나하나마다 눈을 맞추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부엉이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이 전해지길

그는 자신이 모은 수집품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그는 부엉이 수집품과 그의 책을 통해 오래도록 세상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부엉이 박물관을 다녀간 이탈리아 여행자가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부엉이 그림을 그려 박물관으로 부쳐준 일도 있었다. 부엉이를 통해 먼 나라 사람이 이웃이 되고 행복한 마음을 나누어 갖은 것이다.

부엉이 문양이 가문의 상징인 이탈리아 콘트라다 치베타 가문 사람을 친구로 둔 이탈리아인 교수가 부엉이 박물관을 다녀간 뒤 자기 친구에게 부탁해서 그 가문의 상징인 부엉이 문양이 새겨진 스카프를 보내준 일도 있다고 한다.

박물관을 찾아온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전시했다. 그 그림 중 일부를 모아 박물관 외부 벽에 벽화를 그렸다.

부엉이 박물관 벽에 그려진 부엉이 그림. 박물관을 찾아온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다.

그가 옛날에 부르고 놀던 부엉이와 관련된 전래동요 가사도 보인다. ‘떡해 먹자 부엉/ 양식 없다 부엉/ 걱정 말게 부엉/ 꿔다 하지 부엉/ 언제 갚지 부엉/ 갈(가을)에 갚지 부엉’ 가난했던 시절 서글픈 이야기에도 부엉이는 하나의 희망으로 등장한다.

부엉이와 관련된 속담도 볼 수 있다. ‘부엉이 곳간’은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풍족한 상태를 뜻한다. ‘부엉이살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쩍부쩍 느는 살림을 일컫는 말이다. 먹이를 모으는 부엉이의 습성 때문에 생긴 속담이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참 정겨운 노래다. 세상이 춥고 각박해질수록 포근하게 느껴지는 건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와 함께 살던 고향 집 밤이다. 부엉이 박물관에 가면 고향집 그 밤이 추억처럼 살아난다.

기념촬영 공간을 제외하고 박물관 안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기념촬영 공간의 배경에는 유지룡 작가의 부엉이 작품이 있다. 합판에 소나무 속껍질과 겉껍질, 대나무로 부엉이 모양을 만들고 먹물·쪽물·황토물로 색을 입혀 만들었다. 하루 일을 마친 가족이 모인 집 초저녁 정서를 표현했다. 부엉이 박물관의 의미가 더 깊어진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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