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녹색 지붕 붐

등록 : 2016-06-02 17:03 수정 : 2016-06-0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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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의 ‘클룽커크라니히’는 녹색 지붕 명소로 유명하다. 도심 가운데 쇼핑몰 옥상에 자리한 평 범한 녹색 공간이지만 일주일 내내 사람들로 북적댄다.
1992년 리우회의 이후로 ‘생태 도시’, ‘에코 시티’ 등의 개념이 널리 퍼지면서 지붕 녹화와 같은 형태의 생물 다양성 생태도시 조성을 위한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베를린에서도 2015년 녹색당이 1000개의 지붕을 녹색으로 물들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기도 했지만 별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올해 다시 기민련 소속 슈테판 에버스가 2030년까지 베를린을 녹색 지붕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행정절차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녹색 지붕을 만드는 이유가 노스탤지어나 도시 미관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효과만 보더라도 지붕 위를 덮은 토양층이 수분을 많이 흡수해서 저장하고, 그것이 천천히 증발됨에 따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뿐만 아니라 강수량이 많은 시기에 하수도로 유입되는 빗물의 양을 줄여 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도 한다.

그러나 지붕을 녹화하는 것만으로 어디서나 이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기후, 토양, 강수량 등에 따라 때로는 큰 예산 낭비를 낳을 수도 있다. 결국 녹색 지붕 사업은 ‘녹색’보다는 먼저 ‘지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지붕이나 옥상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잘’ 활용할 수 있을까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슈테판 에버스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베를린에 이런 곳을 많이 만드는 것”이라며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의 “클룽커크라니히”(//klunkerkranich.de)라는 곳을 구체적인 예로 들기도 했다.

클룽커크라니히는 도심 한가운데 있는 쇼핑몰 옥상에 자리 잡은, 조금은 색다른 종합 문화 공간이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던 멋들어진 지붕 녹화의 예를 떠올렸다면 그 첫인상에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삐걱거리는 탁자에 작은 공연장, 꼬마 손님들을 위한 모래 놀이터와 소박한 화단, 그리고 커다란 고양이 얼굴이 간판을 대신하는 허름한 바 하나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일주일 내내 저녁 시간을 물들이는 재즈나 팝 등의 음악 공연은 물론이고, 주중에 열리는 원예 강좌나 천연염색 워크숍에 사람들이 가득 차기 때문에 때로는 예약이 필수라 한다. 주말에는 하늘을 지붕 삼아 중고 시장이 열리기도 하고 주말 저녁이면 음악 공연이 그 화려함을 더한다. 잔잔한 베이스 색소폰 선율과 함께 시작된 해넘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내리쬐는 햇빛과 널빤지를 더덕더덕 덧대어 만든 이곳저곳의 모습이 사람들의 편안한 얼굴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연스러움이야말로 베를린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특별한 관리 계획도 없이 큰 예산을 들여 만든 거창한 볼거리에 열광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모이고 누구나 잠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무대가 되고 청중들에게는 흥을 선사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겠다는 젊은이들의 이상이 한 정치가에 의해 현실이 되어가는 곳, 참 베를린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중충하고 볼거리 별로 없다는 이 도시를 찾는 젊은이들이 한번쯤 들러 보면 어떨까 싶다.

글·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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