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개울사냥’, 그 기억을 한입 베어 물다

장태동 여행작가의 여름 보양식 上 서울에서 먹는 천렵 음식들

등록 : 2019-07-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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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 튀겨 동그랗게 앉힌 도리뱅뱅이

민물새우 듬뿍 든 새뱅이탕에

민물고기 푹 고아 만든 어죽,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아이들 물장구 소리

도리뱅뱅이.

신작로에 송곳처럼 박힌 미루나무, 둑방 위에서 풀 뜯는 누렁소, 햇빛 반짝이는 여울목, 냇가의 흙냄새 물비린내, 그 풍경을 울리는 쨍쨍한 매미 소리에 한여름 오후 2시 땡볕 아래 정적은 더 깊었다. 바람도 화석처럼 굳어버릴 것 같은 그 정적을 깨는 건 냇물에서 물장구치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머리 굵은 형들은 어항에 된장 발라 물살에 쓸려가지 않게 돌로 받쳐놓고 반두(족대)에 매달려 개울을 가로질렀다. 잠시 일손을 놓은 고모 삼촌들이 함께하는 날이면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넣고 국수를 삶고 잡탕을 끓였다. 그게 천렵(川獵·개울사냥)이었다. 여름보다 뜨거웠던 그 시절 냇가의 추억으로 서울에 있는 천렵 음식들 찾아나섰다. 장태동 여행작가


도리뱅뱅이와 어죽

도리뱅뱅이란 피라미를 잡아 배를 따서 내장을 빼고 초벌로 기름에 튀긴 뒤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다시 한 번 살짝 기름에 튀겨 만드는 음식이다. 보통 얇은 프라이팬에 피라미를 동그랗게 올려 튀기기 때문에 도리뱅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손가락만 한 피라미가 뭐 먹을 게 있냐는 사람도 있지만 도리뱅뱅이는 세 가지 맛으로 먹는다. 튀겼으니 고소한 맛이 나고, 고추장 양념장의 매콤달콤한 맛이 어우러진다. 그리고 먹다보면 물고기의 살 맛이 느껴진다.

요즘은 빙어로 도리뱅뱅이를 만드는 집이 많다. 피라미로 만든 도리뱅뱅이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 그 여름 냇가의 물비린내를 머금은 피라미의 그 맛 때문일 것이다.

도리뱅뱅이로 입맛을 돋웠다면 이제 어죽을 먹을 차례다. 도리뱅뱅이와 단짝이 어죽이다. 어죽은 다양한 민물고기를 오랜 시간 푹 끓인 뒤 으깨진 살과 국물에 양념을 풀고 국수나 수제비, 밥을 넣어 한 번 더 끓인 음식이다. 충북 옥천과 영동, 충남 금산과 예산·아산, 경남 산청·진주의 어죽이 유명하다. 생선국수, 어탕국수라고도 한다.

강촌민물매운탕 어탕국수.

서울에도 어죽이나 도리뱅뱅이를 파는 식당이 있다. 그중 동작구 신대방2동에 있는 ‘강촌민물매운탕’의 어탕국수, 강남구 역삼동 ‘예당어죽’의 도리뱅뱅이와 어죽을 맛봤다.

강촌민물매운탕 어탕국수 국물의 주재료는 붕어다. 산초가루와 후추, 청양고추 다진 것 등을 기호에 따라 넣어 먹는다. 처음에는 국수와 밥을 함께 넣어 끓여서 냈는데, 지금은 주변 직장인들의 기호에 따라 밥은 따로 제공한다.

예당어죽의 어죽도 붕어를 주재료로 국물을 만든다. 민물새우도 들어갔다. 도리뱅뱅이는 빙어로 만든다. 해종일 물장구치며 물고기 잡고 놀던 천렵의 추억이 맛있다.

새뱅이탕과 메기매운탕

새뱅이(민물새우)탕과 메기매운탕은 어린 시절 천렵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식당에서 사먹은 기억이 먼저인 식당 음식이다.

새뱅이탕과 메기매운탕의 추억을 따라 20대 초반에 닿았다. 밤새워 낚싯대 찌를 바라보던 어느 날, 손맛 한 번 보지 못하고 허탕치고 돌아서던 그날, 저수지 옆 허름한 매운탕집 간판이 그렇게 간절하게 보였다. 며칠을 별러서 드디어 다시 찾은 저수지, 낚싯대를 드리우기 전에 먼저 그 집에 들러 새뱅이탕과 메기매운탕 맛을 봤다. 아끼지 않고 넣은 양념에 진하게 우러난 원재료의 맛이 어우러진, 거칠면서도 깊은 매운탕의 경지를 맛봤다. 그 맛이 새뱅이탕과 메기매운탕 맛의 기준이 되어버렸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 10여 년 동안 입맛에 차는 새뱅이탕과 메기매운탕을 만나지 못하다가, 그날의 그 맛에 버금가는 새뱅이탕을 아산에서 만났다. 헤어진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이 그럴까? 그리고 또다시 이별, 짧은 만남 긴 여운, 더 이상 그런 맛은 찾아보지 못했다. 메기매운탕도 마찬가지여서, 아예 다른 집을 찾지 않고 그 옛날 처음 맛보았던 그 집을 찾아가야만 했다.

예당어죽 어죽. 국수를 건저먹고 밥을 말아 먹는다.

그리고 다시 10여 년 만에 새뱅이탕을 만난 건 역삼동 예당어죽이었다. 쫄깃한 수제비, 깻잎의 향, 호박과 감자의 맛이 새뱅이 고유의 향과 어울린다. 새뱅이탕을 처음 먹는 17살 아이의 한 줄 맛 평가 “새우를 씹으니 냇물이 보이네!” 그 아이의 첫 새뱅이탕도 그렇게 강렬했을까?

잡어탕과 올갱잇국

여름이면 개울에서 하루 종일 살았다. 그냥 개울에 들어가서 뒹굴며 노는 게 좋았다. 조금 커서는 천렵을 다녔다. 어항에 된장 발라 목 좋은 곳에 놓고 냇물에 쓸려가지 않도록 돌로 고정했다. 반두를 들고 냇물 아래위로 뛰어다니며 고기를 잡기도 했다. 십중팔구는 돌멩이만 건져올렸지만, 피라미, 꺾지, 갈겨니, 빠가사리(동자개), 마주(모래무지) 같은 것이 들어 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청난 보물이라도 찾아낸 양 소리를 질렀고 신이 났다. 그렇게 잡은 물고기를 넣고 라면도 끓여 먹고 국수도 삶아 먹고 잡탕찌개도 끓여 먹었다. 그런 날들이 좋았다.

남한강 매운탕집 빠가사리(동자개)와 잡고기가 들어간 매운탕. 사진에 보이는 고기는 마주(모래무지)다.

그때 먹었던 잡탕찌개가 매운탕집 차림표에 있는 잡어탕이다. 서울에서 잡어탕을 맛보기 위해 찾은 곳이 성북구 정릉동 ‘남한강매운탕집’이었다. 매운탕은 2인분부터 판다고 해서 빠가매운탕과 잡고기매운탕을 섞어서 2인분을 주문했다.

빠가사리와 마주가 들어 있었다. 깔끔하게 매콤하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뜨끈한 국물에 추억의 빗장이 열린다. 잔뼈 발라낸 살코기와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옅은 민물 냄새와 고소한 살코기 맛이 어우러진다. 추억 속 천렵의 그 여름을 한 입 베어 문다.

여름 천렵의 낮 음식이 잡어탕이라면, 밤 음식은 올갱이(다슬기)다. 냇물에서 직접 잡은 올갱이를 삶아 알맹이를 뺀다. 그렇게 모은 올갱이로 된장국을 끓였다.

올갱잇국은 충북 옥천·영동·괴산이 유명하다. 서울에서 올갱잇국집을 찾아다녔는데, 옥천과 영동에 뿌리를 둔 올갱잇국집 두 곳에서 그 맛을 봤다.

공덕동 옥천올갱이국집 올갱이국 상차림.

마포구 공덕동 ‘옥천올갱이집’은 직접 담근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 된장으로 국물을 만든다. 토속적인 맛이 강하다. 사장님도 옥천 사람이다. 아욱과 근대를 넣고 끓인다. 겨울에는 우거지를 넣고 끓여야 그 맛이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강남구 개포동 ‘영동올뱅이집’은 그 뿌리가 충북 영동에 닿아 있다. 식당 대표의 아버님이 영동 사람이란다. 상호 영동올뱅이집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국물 맛의 기본이 되는 된장을 해마다 직접 담근다. 올갱잇국 맛을 내는 데는 아욱이 최고다. 된장과 아욱의 조화에 올갱이 향이 가미된 그 맛이 올갱잇국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욱은 철을 탄다. 그리고 오래 끓이면 아욱이 물러지고 맛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찾아낸 게 우거지와 시래기를 넣고 끓이는 방법이다. 아욱을 넣고 끓이는 맛에 가장 가깝기도 하지만, 사철 활용할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직접 담근 식혜는 맛있는 마침표다.

영동올뱅이집 올갱이국밥 한 상.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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