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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술상 받들던 주병 세트
시어머니 손길 담긴 명주 저고리
북촌 개보수 때 쏟아져나온 물건들
이경애 관장, 손수레 끌고 직접 모아
북촌생활사박물관 전시품과 사진들.
조선 시대 초기부터 1970년대 말까지 북촌 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든 물건이 북촌생활사박물관에 빼곡하게 전시됐다. 이경애 관장이 북촌에 살면서 골목 이곳저곳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모은 전시품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은 우리들의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낸 세월, 세월 따라 흘러간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어 있다.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는 생활 속 역사이고, 경험한 세대에게는 달달한 추억인 옛날 얘기가 북촌생활사박물관에 가득하다.
마지막 선물이 된 시어머니의 명주 저고리
지금은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새색시였을 때 일이다. 시어머니에게 배우던 집안 살림 중 술을 좋아하는 시아버지의 ‘술상 차리기’ 항목도 있었다. 시아버지 혼자 술을 찾을 때는 한 되짜리 오지 주병에 술을 담고, 친구 1명이 찾아왔을 때는 두 되짜리, 3명 이상이면 세 되짜리에 술을 담아야 하는 게 법칙이었다. 시아버지를 모시던 새색시 시절 할머니의 손길이 남아 있는 오지 주병 세트를 북촌생활사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지금은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새색시였을 때 일이다. 시어머니에게 배우던 집안 살림 중 술을 좋아하는 시아버지의 ‘술상 차리기’ 항목도 있었다. 시아버지 혼자 술을 찾을 때는 한 되짜리 오지 주병에 술을 담고, 친구 1명이 찾아왔을 때는 두 되짜리, 3명 이상이면 세 되짜리에 술을 담아야 하는 게 법칙이었다. 시아버지를 모시던 새색시 시절 할머니의 손길이 남아 있는 오지 주병 세트를 북촌생활사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박물관 전시품 중 하나인 작은 용수(술을 거르는 데 쓰는 도구)에도 술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지혜로운 할머니의 이야기가 깃들었다. 할아버지는 다른 술은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오로지 맑은 약주만 찾았다. 당시에는 밀주(허가 없이 집에서 담근 술)를 금지하고 밀주 단속을 하던 때였다. 약주를 좋아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술을 안 담글 수는 없어서 할머니는 꾀를 내 작은 항아리에 술을 담갔다.
밀주 단속을 하는 날 할머니는 작은 술항아리를 치마폭에 숨기고 앉아 태연하게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집안 곳곳을 들쑤시는 밀주 단속꾼들도 할머니 치마까지 들추지는 못했으니,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 덕에 내내 맛있는 약주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작은 항아리에 술을 담글 때 사용하던 작은 용수가 전시실에 있다.
슬픔이 너무 커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가 저고리 한 벌에 전해진다. 한국전쟁 중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란하는 며느리에게 한 번도 입지 않았던 당신의 새하얀 명주 저고리를 입혀주시던 시어머니의 마지막 손길, 북풍한설 혹독한 겨울 추위에 머나먼 길로 내몰리는 자식을 위한 그 손길이 생이별이 되고, 마지막으로 느꼈던 체온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는 그때 그 어머니보다 나이가 훨씬 더 든 한 사람의 세월, 그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가 수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
밥상 앞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박물관
북촌생활사박물관에 있는 3천여 점의 소장품은 하나같이 다 사연이 있다. 전시 공간이 턱없이 좁아 일부만 전시하는데, 그 전시품들의 사연을 적어 놓은 짧은 안내글을 읽은 뒤 바라보는 전시품은 또 다르게 느껴진다.
서울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그였지만, 정작 정착할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깊은 생각 끝에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면 북촌에 살겠다고 먹은 마음이 지금의 이 자리를 만들었다.
이런저런 글을 쓰며 살던 그때, 서울시에서 북촌 지역 한옥 개보수 지원 정책을 폈다. 북촌 주민들은 낡은 한옥을 고쳐 지었고, 그 과정에서 집마다 가지고 있던 오래된 생활용품이 골목으로 쏟아져나왔다. 600년 역사의 북촌 마을 한옥은 근현대 생활사까지 품은 보물창고였다.
그는 손수레를 밀고 끌고 북촌 골목 이곳저곳을 다니며 집집마다 버린 오래된 생활용품을 모았다. 다락, 광, 마루 밑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보관했던 오래된 물건들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경애 관장의 눈에는 그 물건들이 오래된 향기를 간직한 보물로 보였다. 박물관 소장품 중 70%는 이경애 관장이 그렇게 손수 모은 것이다. 20%는 돈을 주고 산 것들이고 10% 정도는 기증받았다.
다듬잇돌과 자개농이 있는 공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의 역사성과 예술성과는 결이 다른,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 애써 찾지 않으면 그냥 사라져버릴 물건들, 그리고 그 물건에 새겨진 사연이 빛을 발한다.
그래서 북촌생활사박물관은 어둠이 내리는 북촌 골목 창으로 새어나는 불빛에 서린, 무릎 맞대고 앉은 밥상머리 한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골목에서 건져올린 보석 같은 물건들
생활용품을 전시하는 곳이 일반 주택 거실과 방이어서 생활사박물관의 의미를 더한다. 현관으로 들어가면 거실에 있는 자개 장롱과 다듬잇돌이 눈에 띈다. 거실과 방을 가득 메운 크고 작은 전시품을 천천히 둘러본다.
은제 주전자 세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1940년대 계동 장씨 가의 혼수품이라고 한다. 은제 주전자 세트는 당시 부유층 사이에서 유행하던 혼수품이었는데, 신부 집에서 마련해야 했던 품목이었다. 그런데 당시 신부 집에서 은제 주전자 세트를 마련할 돈이 부족하자, 신랑 집에서 도와줬다고 한다. 신부는 은제 주전자 세트를 남편의 주안상에만 올렸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뜨자 남편 제사상에만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장씨 가문의 며느리들이 대를 이어 사용하던 간장 단지도 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간장 응고물은 100년이 넘은 간장독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아이가 돌 때 입었던 색동저고리.
1950년대 사용하던 아기 요가 전시관 벽에 걸렸다. 1960년대 계동 서씨 가에서 사용하던 나무 대문 빗장은 장수와 부귀를 상징하는 거북 모양이다. 지금은 할머니가 된 아이가 돌 때 입었던 색동저고리는 작아서 못 입을 때까지 입다가 동생에게 물려준 것이다. 오래 입고 물려 입어서 낡았지만, 낡아서 오히려 더 반짝인다. 실로 꿰맨 바가지, 도롱이와 삿갓, 계동 송씨 가에서 사용하던 행주치마, 나무 국자와 조롱박 바가지…
전시품 사이에 옛 사진도 있다. 멍석을 짜고 있는 할아버지, 옹기장수, 짚신장수, 풍로에 약탕기를 올리고 약을 달이는 사진, 우마차와 나무장수 사진, 무쇠솥에서 나무 주걱으로 밥을 푸는 사진… 많은 사진 가운데 물동이를 머리에 인 어린 여자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사진 앞에서 잠시 머문다. 사진 속 아이들 웃음에 마음이 맑아지면서도 왠지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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