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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훈련된 방식으로 따라 그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글과 그림으로 의미를 형상화하는 이색 전시 <ㅇㅁㅇㅇㅁㅈ>(~9월5일,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여는 허성진(29) 작가는 평소 고민했던 점을 이렇게 밝혔다. 대학에서 배운 전통적인 그림에 한계를 느껴 한때는 붓을 내려놓고 집필에 몰두해 소설을 습작하기도 했다. ‘의미의 이미지’에서 초성만 따 제목으로 삼은 이번 전시는 글과 그림을 통해 의미가 드러나는 순간과 전달되는 방식에 주목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단순히 똑같이 그리는 행위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대로 그려도 결국 사물이 될 수 없는데 말이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죠.”
허 작가의 다짐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시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는 조선 시대의 ‘시의도’(詩意圖, 시의 뜻을 주제로 한 그림) 사상을 떠오르게 한다. 이는 문학과 시각예술이 다른 존재가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예술 형식으로, ‘글과 그림의 의미 전달이 유사하다’는 뜻이다.
허 작가는 글과 그림 중 어느 한쪽만으론 의미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에 공감한 이미선 화가와 손을 잡았다. 일상의 의사소통에서 느끼는 낯섦과 먹먹함을 추상회화(그림물감이나 페인트를 떨어뜨리거나 뿌려서 화면을 구성한 그림)로 표현한 이 작가의 작품 9점을 벽면에 설치하고, 그 앞을 글로 메운 허 작가의 커튼 작품 5점이 가로막듯 걸었다.
관람객은 두 종류 작품 속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관람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림의 아쉬움을 극복한 작가와 글의 한계를 헤쳐나간 작가가 협업으로 전시를 완성했다. 이렇게 색다른 전시로 이미지를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한 이유를 허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그림만이 그동안 알고 있던 이미지 전달 방식의 전부가 아니에요. 그것 말고도 글과 작가가 삼위일체로 소통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느 일방적인 방법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글과 그림의 경계, 그 틈에서 새어나오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 허성진은 중앙대학교 서양회화과를,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서 회화로 석사를 졸업했다. 주요 전시 경력으로는 ‘간접화법’(2017, 아트스페이스오), ‘이야기된 기호’(2018, 에무갤러리) 등이 있다. 2017년에는 아트스페이스오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선정됐으며, 2019년에는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소액다컴에 선정됐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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