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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현지 음식이면 충분’ 생각에
한국 음식은 거의 짐 쌀 때 안 넣어
반년 이탈리아 생활, 체중 8kg 감소
근육도 사라져 ‘할아버지 체력’ 돼
한국 돌아와 선짓국으로 체력 회복
몸 안에 ‘한국 음식 요구 DNA’ 확인
감자면 등 인스턴트 면류 잔뜩 챙기고
이탈리아 도착 뒤 마늘 넣고 끓여 먹어
이탈리아에는 한국의 꽁치 통조림 대신 정어리 통조림이 있다. 고춧가루와 간장만 있으면 한국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생선찌개를 끓일 수 있다. 두부 역시 이탈리아 슈퍼마켓에서 판다.
9월 두 번째로 이탈리아로 떠나면서 내 가방은 온통 한국의 먹거리로 가득 찼다. 홍삼과 비타민도 잊지 않고 챙겼다. 3월에는 전혀 챙기지 않았던 것들이다.
내 짐이 달라졌다. 9월 다시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나오기 위해 꾸린 짐은 3월 초와 달리 매우 가벼워졌다. 3월 초 가방에서 가장 큰 무게를 차지했던 요리 관련 책과 이탈리아어 교재를 우선 빼버렸다. 많은 부피를 차지했던 전기밥솥과 휴대용 전기조리기도 넣지 않았다. 3월에는 이런 것들이 짐의 절반이었다.
대신 고춧가루·간장·고추장·생강가루 같은 한국식 양념을 챙겼다. 3월에는 이렇게 맵고 짠 양념을 전혀 가져가지 않았다. 라면과 물냉면 같은 면류도 챙겼다. 이탈리아에서는 신라면·삼양라면·너구리·비빔면같이 잘 알려진 라면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물냉면·감자면·해물짬뽕·육개장 칼국수 이런 건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면류를 주로 챙겼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었던 구운 김, 미역 같은 해조류도 챙겼다. 중국 김이나 일본 김은 이탈리아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질이나 향에서 한국 김만 못하다. 나는 입맛이 없을 때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벼 구운 김에 싸먹는 걸 즐긴다.
타야린은 피에몬테 고유의 파스타다. 하루는 타야린을 먹고 하루는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먹으면 예전처럼 이탈리아에서 향수병에 걸릴 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싼 짐을 보면 어떤 나라에서나 현지 음식을 즐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올해 초와는 180도로 달라진 모습이다. 나의 변심은 반년 가까운 이탈리아에서의 장기 체류 경험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긴 외국 체류는 처음이었다. 그전까지 고작해야 보름 정도의 국외 출장이 가장 긴 체류였다. 그때는 한식에 대한 그리움 정도는 있었어도 그게 사무쳐 꿈에 음식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전에는 외국에서 한식이 생각날 때 중국 음식점이나 일본 라멘집에서 두반장이나 고추기름을 잔뜩 쳐서 먹으면 금세 괜찮아졌다. 하지만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그런 대체품이 나에게는 별 효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표적인 게 평양냉면이었다.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다니던 5월에 평양냉면이 너무 먹고 싶어 향수병이 걸릴 정도였다.
향수병은 애교였다. 6월에 시작한 레스토랑 주방 인턴 생활은 한국 나이로 쉰이 넘은 나에게는 중노동이었다. 나는 한 달 만에 입고 간 바지가 맞지 않을 정도로 체중이 급감했다. 체중계가 없어서 몸무게를 측정해보지 못했는데 나중에 한국에 와서 재보니 체중이 75㎏에서 67㎏으로 8㎏이나 빠졌다. 허리도 32에서 30으로 2인치가 줄어 있었다. 이른바 ‘노예 다이어트’였던 셈이다.
3월 초와 7월 말의 내 모습. 강도 높은 노동 덕에 인턴 2개월 만에 몸무게가 8㎏ 빠졌다.
처음에는 체중이 빠지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가 평생 처음 보는 날씬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체중이 급격하게 빠지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기력과 근력을 동시에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오기 전에 이미 사례를 들은 바 있었다. 입학 전에 나와 동기들은 서울의 예비학교에서 지난해에 이탈리아에서 공부했던 선배들을 만났다. 그들 가운데 1년 사이 거의 20㎏이 빠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하루에 20시간 가깝게 일을 했다고 했다(그는 연회가 많은 호텔에서 인턴을 했는데 이탈리아 연회는 거의 밤을 새우는 수준이다). 나는 그게 내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손님 80명이 온 날 디저트 접시들이 주방을 가득 채운 모습. 이렇게 두 번 준비해야 한다.
케이터링용으로 만든 고기 쌈 튀김. 350여개를 한 시간 만에 만들었던 것 같다. 고기에 치즈와 바질 페이스트를 넣고 만 뒤에 3개를 꼬치에 꽂아 튀 긴다. 맛은 괜찮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만들어 튀긴 다음에는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
결혼 피로연 때 굽기 위한 냉동 빵. 100여명이 먹으려면 이런 걸 무려 15판이나 구워야 한다. 빵 안에 달콤한 잼이 아니라 후추를 친 파프리카가 들어 있다.
내가 인턴으로 일했던 레스토랑 역시 1~2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연회나 단체손님이 있었다. 30~40명쯤이면 꽉 차는 레스토랑에 무려 100명이 오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손님이 오면 사흘 전부터 분주했다. 케이터링(음식 공급 서비스)도 끔찍했다. 엄청난 양의 식재료를 며칠 동안 손질하고 요리하고 그걸 전부 차량으로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중노동을 하면 체력이 소진되는 건 물론이고 입맛도 잃었다. 레스토랑에서 아무리 DOC(원산지 인증 제도) 마크가 붙은 최고급 햄과 치즈로 만든 식사를 내놓아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거기다 7~8월 이탈리아는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였다. 그나마 손이 간 음식이 수박이었다. 그랬으니 살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이 가장 많이 빠지는 곳은 뱃살이나 얼굴 살이 아니라 허벅지였다. 나는 이탈리아 유학을 오기 2~3년 전부터 매일같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스(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운동)을 했다. 덕분에 내 허벅지는 매우 탄력이 있었고 걷는 것만 놓고 보면 20년 어린 동기들에게 뒤지지 않았다(물론 동기들처럼 수업이 끝나고 축구를 하지는 못했다. 수업 뒤 축구는 정말 젊음의 특권이다).
하지만 6월 인턴을 와서는 딱 첫 주 이틀만 운동을 했다. 인턴 사흘차부터는 강도 높은 노동 탓에 운동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신 하루 14시간 이상을 서 있고 레스토랑 안에서도 하루에 1만보를 걷기 때문에 나는 운동이 충분하다고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다리와 엉덩이가 탄력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몇 년간 스으로 다져놓은 허벅지 앞쪽 근육이 허무하게도 한 달 만에 사라져 버렸다. 내 다리가 노인 다리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제야 나는 노동과 운동이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바닥난 체력 덕에 여름휴가를 이탈리아가 아니라 한국에서 보냈다. 한국에서 아내를 불러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겠다는 장밋빛 계획은 접었다. 동기들이 차를 빌려 한국의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일주 여행을 즐길 때 나는 서울로 와야 했다.
서울에서 내 목표는 원기 충전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국에 와서 예전에는 거의 먹지 않았던 곱창전골·선짓국이 당겼다(그러고 보니 나는 이탈리아에서 소내장을 토마토소스에 끓인 트리파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또 홍어, 장어탕, 묵은지 김치찌개, 갓김치 등을 찾아서 먹었는데 대부분 향과 맛이 강한 대표적인 한국 음식이다.
한 달 정도를 이렇게 먹었더니 체중이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요요현상이었는데 나는 이 현상이 반가웠다. 체중이 늘면서인지 향이 강하고 매운 음식을 먹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한결 좋아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체중이 빠지면 안 된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듯했다. 이탈리아에서 맨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아파트의 언덕길을 잘 걸어 올라가지 못할 정도였지만 이내 동네 한 바퀴를 뛸 수 있는 체력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탈리아를 나와서 다시 찾은 기력을 잃지 않을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 이탈리아가 아무리 미식의 나라라고 하지만 내 몸속에는 한반도에 살았던 조상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일군 전통 음식을 요구하는 디엔에이(DNA)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DNA의 요구를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향수병에 걸려 무기력해지거나 심하면 서 있을 힘조차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탈리아에서 경험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음식은 이탈리아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이다.
지난 22일 내가 토리노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자정이었다. 서울에서는 토리노까지 직항이 없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해 18시간이 걸렸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고춧가루와 마늘을 잔뜩 넣어서 인스턴트 육개장 칼국수를 끓여 먹었다. 매운 향기에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렸다.
글·사진 권은중 <음식 경제사> <독학 파스타>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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