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한글 찾기’ 놀이 하며 한글 아름다움 찾는 곳

서울의 작은 박물관⑭ 용산구 용산동6가 국립한글박물관

등록 : 2019-10-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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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4살 때 쓴 한글편지 눈길

박씨전 등 조선 ‘딱지본 소설’엔 발길

신하 반대 속 한글 만든 세종을 느끼며

공기 같은 한글의 의미 새삼 깨달아


조선 시대 만들어진, 만주어·중국어·일본어를 익힐 수 있는 한글판 외국어 학습교재 앞에서 발길이 머문다. 조선 시대 정조 임금이 4살 무렵 쓴 한글편지 속 서툰 한글 필체를 보며 한 획 한 획 더하며 글자를 완성하는 어린 정조의 고사리손을 상상해본다. 한글에 얽힌 진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앞에서 한글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 놀며 한글을 익힐 수 있는 한글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인기다. 한글날을 맞아 국립한글박물관에 다녀왔다.

국립한글박물관 건물.

‘가갸날’을 아시나요?
용산구 용산동6가 국립한글박물관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찾기 좋은 곳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공기와 같은 한글의 의미를 새삼 느끼게 된다.

박물관 영상실에 들러 한글 창제에 대한 영상을 본다. 영상 중 한 대목이 마음에 남는다. “너희들이 설총은 옳다 하면서 군상(君上·임금)의 하는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 세종이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남긴 말로, 한글 창제의 의지가 엿보인다.

박물관 전시 자료에 따르면 한글 창제 전에는 이두·향찰·구결 등 한자의 음이나 뜻을 활용하여 우리말을 쓰고 읽었다. 세종은 즉위 25년째 되던 1443년 한글을 창제했고 3년 뒤인 1446년에 그 문자를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냈다.

한글에 대한 정인지의 글이 인상 깊다. “이 스물여덟 글자를 가지고 전환하는 일에 제한이 없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있고 자세하면서도 통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깨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조선 시대 한글로 새긴 묘비 ‘한글 영비’를 재현한 작은 조형물.

조선 시대 생활에 쓰인 한글에 대한 내용을 보여주는 작은 조형물과 그 안내 글도 재미있다. 조선 시대에 부모님 묘에 한글로 된 비석을 세운 일도 있었다. 현존하는 한글 금석문 중 가장 오래된 자료이자 보물 제1524호인 ‘한글 영비’가 그것이다. 비문에는 ‘신령한 비라. 이 비를 범하는 사람은 화를 입으리라. 이는 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노라’라는 내용의 옛 한글이 새겨졌다. 누구나 쉽게 익히고 쓸 수 있게 한다는 한글 창제 이유가 고스란히 비문에 녹아 있는 것이다.

고종은 1894년에 칙령을 통해 한글을 조선의 공식 문자로 삼도록 했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26년에 조선어연구회 주도로 열린 기념식 ‘가갸날 잔치’를 재현한 작은 조형물도 보인다. 이날 잔치에서 ‘가갸날’이 처음 선포됐다. ‘가갸날’이 지금의 ‘한글날’이다.

한글로 쓴 조선 시대 일본어 회화집 <첩해신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 그렇지만 한글이 금방 실생활에 사용된 건 아니다. 한글은 처음에는 왕실의 주도로 <능엄경> <법화경> <금강경> 등 불교 경전을 번역하는 일에 많이 쓰였다고 한다. 또한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 유교 경전을 번역하는 데도 많이 쓰였다.

1676년에 한글로 펴낸 일본어 회화집 <첩해신어> 앞에서 잠시 머문다. <첩해신어> 책장을 넘기며 일본어를 공부하던 조선 사람 그 누구를 떠올려 본다. 1795년에 한글로 펴낸 중국어 학습서 <중간노걸대언해>도 있다. 1748년 한글로 펴낸 <동문유해>는 만주어 어휘를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한글은 점점 사람들 생활 속에 정착하게 된다. 조선 후기에 천연두 치료 방법을 우리말로 풀어 쓴 의학서 <두창경험방 언해>도 전시됐다.

나란히 진열된 <박씨전> <사씨남정기> <깔깔웃음주머니> 등 작은 책 세 권이 눈에 띈다. 이른바 ‘딱지본 소설’이다. 안내에 따르면 ‘딱지본 소설’은 근대 활판 인쇄기로 찍어낸 국문 소설류를 말한다. 대체로 일반 책보다 작고 표지가 화려하여 ‘딱지본’이라고 불렀다. 값이 싸서 ‘육전 소설’이라고도 불렀다. ‘딱지본 소설’이 한글 전파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상설전시실 한쪽에 테마 전시 ‘한글 타자기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1914년부터 1980년대까지 타자기의 역사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의 손자이자 과학자인 최동식이 개발한 ‘외솔 두벌식 타자기’를 볼 수 있다. 이 타자기의 자판은 오늘날 컴퓨터 자판의 원형이 됐다고 한다.

놀며 배우는 한글, 한글 놀이터

‘시조놀이 카드’와 ‘승경도 놀이판’은 무엇일까?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승경도 놀이판은 어린이들이 벼슬 이름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든 놀이판이다. 시조놀이 카드는 시조를 익히기 위해 만든 카드다. 시조의 마지막 노랫말이 적힌 카드를 바닥에 흩어 놓으면 진행자는 시조 전체 노랫말이 적힌 카드를 첫 장부터 읽어 내려간다. 다른 사람들은 진행자가 읽는 시조 중 마지막 노랫말이 적힌 카드를 바닥에서 찾는다. 카드를 가장 많이 찾은 사람이 승자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항아리에는 ‘시케단지’라는 한글이 보인다. 식혜를 담았던 항아리다. 놋그릇에는 ‘첫돌맞이’라는 한글이 보인다. 한글이 새겨진 떡살도 있다.

정조 임금이 4살 무렵 큰외숙모에게 쓴 한글 편지.

전시품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정조가 4살 무렵에 큰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복제품)였다. 한 획 한 획 더하며 글자를 완성하는 어린 정조의 고사리손을 상상해본다.

3층 한글 놀이터는 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한글을 익힐 수 있는 공간이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알아볼 수 있다. 누워서 몸으로 한글을 만들고 거울을 보며 한글을 확인할 수 있는 곳도 있다.

한글 놀이터.

‘변신하는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적힌 큰 판을 넘기며 글자를 만들어보는 놀이기구다. ‘한글 돋보기’는 글자판을 한글 돋보기로 비추어 글자를 만들어보는 놀이기구다. ‘숨은 한글 찾기’는 그림 속에 숨어 있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찾는 놀이다. 노랫말이 숨어 있는 ‘한글 숲’에서 노랫말을 찾아보는 공간도 아이들에게 인기다.

한글배움터는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모아 써서 글자를 만들어볼 수 있다. 자신의 이름과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을 한글로 써보기도 한다. 터치스크린에 쓰인 밑 글자를 따라 손가락으로 글자를 쓰는 시설도 있다.

제3회 한글실험프로젝트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 전시관.

제3회 한글실험프로젝트 ‘한글 디자인: 형태의 전환’ 전시관은 한글의 특징을 디자인적 관점에서 예술 및 산업의 내용으로 재해석한 전시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자음과 모음의 거실’ ‘한글 마루’ ‘한글 무늬’ 등이 눈길을 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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