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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 52~53도짜리 알코올의 독특한 맛
수수 중심으로 여러 곡식 섞어 만들어
12~13세기 몽골, 중국에 증류법 전수
중국 경제 발전에 브랜드 가치 치솟아
마오타이, 조니워커 등 양주 회사 제쳐
다소 우여곡절이 있을지라도 21세기가 중국의 시대가 되리라는 전망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구촌 사람들이 15억 중국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새롭게 주목해야 할 두 가지 테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공자 사상이고 둘째가 술이다. 전자가 정치라면 후자는 경제다. 위스키와 와인 대신 중국 술이 헤드테이블에 놓일 때를 대비하라. <논어> 구절을 읊고 중국산 명주로 건배할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황하문명의 발원지이자 중국 대륙의 중원인 허난성 일대를 중심으로 몇 차례에 걸쳐 중국의 대표 술 바이주(백주·白酒) 문화와 역사를 독자들과 함께 찾아가본다.
다소 우여곡절이 있을지라도 21세기가 중국의 시대가 되리라는 전망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구촌 사람들이 15억 중국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새롭게 주목해야 할 두 가지 테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공자 사상이고 둘째가 술이다. 전자가 정치라면 후자는 경제다. 위스키와 와인 대신 중국 술이 헤드테이블에 놓일 때를 대비하라. <논어> 구절을 읊고 중국산 명주로 건배할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황하문명의 발원지이자 중국 대륙의 중원인 허난성 일대를 중심으로 몇 차례에 걸쳐 중국의 대표 술 바이주(백주·白酒) 문화와 역사를 독자들과 함께 찾아가본다.
중국 정부는 1989년 마지막으로 열린 전국주류품평회에서 모두 17종의 바이주를 일종의 국가 공인 명주로 선정했다. 사진은 현재 중국 허난성 보풍주(寶豊酒)문화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출품작 모습이다.
기 노인은 황천에서도 노춘(老春)을 빚고 있을 테지 저승엔 이백이 없는데 누구한테 술을 팔려나 (紀黃泉裏/ 還應釀老春/ 夜臺無李白/ 沽酒與何人) -이백, ‘술 잘 빚는 선성 땅 기씨 노인을 애도하며’(哭宣城善釀紀)
노춘은 술 이름이다. 중국 당나라 때 춘(春)은 술을 의미했다. 노춘을 좋아해 불원천리 찾아갔건만 술 빚는 기씨 노인은 이미 죽고 없다. 주인 잃은 주점 앞에 황망히 서 있는 이백(李白)의 쓸쓸함이 고스란히 느껴져온다. 이백도 노춘도 사라지고 없는 시대, 오늘날의 우리는 이백의 노춘 같은 ‘좋은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이백이 마신 술보다 더 좋은 술을 마시고 있다. 그것이 중국을 대표하는 술 바이주이다. 이백의 시대에는 바이주가 없었다. 12~13세기 전까지 중국에서는 오늘날 같은 증류 기술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다. 중국의 저명한 수학자 화나경(華羅庚·1910~1985)이 마오타이(茅台)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고향의 명주 우량예(五粮液) 신제품을 시음한 뒤 “이백도 일찍 태어난 것을 한탄하리라”라는 찬사를 남긴 것도 이런 중국 술의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주는 알코올을 증류한 소주의 일종이다. 원래 중국에서도 소주라고 불렀으나, 신중국 성립 뒤 중국 정부는 누런 빛깔의 전통적인 발효주를 황주(중국 남부지방의 소흥주가 대표적이다)로, 투명한 흰 빛깔의 소주를 백주라고 명명했다. 배갈, 고량주는 바이주의 속칭이다. 배갈은 바이간(백간·白干)이라는 특정 바이주 상표 이름이 바이갈로 와전된 데서 유래했고, 고량주는 바이주의 주원료가 고량(수수)인 데서 비롯됐다. 바이주는 알코올 도수가 18도 전후를 넘기 어려운 황주와 달리 최고 70도 이상 고도수까지 만들 수 있다. 보통 30도 전후부터 다양한 바이주가 생산되나, 양조 기술의 발달로 현재는 52~53도에서 최고 품질의 바이주가 나온다. 바이주는 제조 방식이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며 오랜 기간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좋은 바이주는 값이 비싼 편이다.(바이주 애호가들에게는 이 점이 바이주의 유일한 약점이다). 술값만 비싼 것이 아니다. 현재 중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비싼 주식은 중국의 국주라는 칭송을 받는 술 ‘마오타이’ 주식이다. 마오타이의 주식 상장은 21세기 중국 바이주 산업의 세계 시장 진출을 상징한다. 15억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의 바이주 산업은 전세계 증류주 시장에서 서구 대형 주류업체들인 조니워커(영국), 잭대니얼스(미국), 에네시(프랑스) 등을 제치고 브랜드 가치 1~3위(마오타이, 우량예, 양하대곡)를 독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해 있다. 바이주는 최근 한국 주류 시장에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1천 개가 넘는 브랜드 바이주가 있다고 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한 바이주는 대개 원료가 되는 곡물과 누룩, 술 빚는 방법과 생산된 술의 향 등으로 크게 구분한다. 원료는 고량(수수)을 중심으로 쌀, 밀, 보리, 옥수수 등 최대 10가지 전후의 곡물을 다양한 비율로 섞어서 사용한다. 바이주 명주의 하나인 우량예가 ‘다섯 가지 곡물의 액체’라는 뜻인 데서도 바이주의 주원료가 다양한 곡물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바이주는 당화발효제인 누룩을 보리, 밀, 완두를 섞어서 만든다. 바이주 누룩(곡·曲)의 특징은 액체 상태가 아니라 고체 상태로 만들어 쓴다(고태법)는 점이 꼽힌다. 누룩은 띄우는 온도에 따라 고온곡, 중온곡, 저온곡 등으로 분류된다. 고온일수록 술의 발효 기간과 저장 기간이 길어지는 대신 고품질을 생산할 수 있다. 곡물은 각자의 비법에 따라 다양한 비율로 섞어 저온상태에서 찌고 익혀 한 차례 증류한 뒤 누룩과 섞어 저온에서 한 번 더 발효 과정을 거친다. 바이주는 향기로도 종류를 구분한다. 향형(香型)에 따라 맛과 냄새는 물론 빛깔에도 차이가 있으며, 미각이 예민한 사람은 혀와 입술에 닿는 느낌의 차이도 감지할 수 있다. 간장 향기가 도는 장향(醬香), 짙고 깊은 농향(濃香), 맑고 강렬한 청향(淸香), 쌀을 주원료로 하여 깔끔한 단맛이 나는 미향(米香), 이상의 여러 향을 두루 갖췄다는 겸향(兼香)이 대표적인 향형이다. 최근에는 이런 분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주장하는 양조회사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제일의 술 마오타이는 장향형이지만, 바이주의 70% 이상은 농향형이다. 농향형으로는 우량예, 노주노교(瀘州老) 등이 유명하다. 청향으로는 분주(汾酒)가, 겸향형은 동주(董酒)가 원조 격이다. 그렇다면 일반 대중에게 명주로 알려진 바이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방마다 특색이 넘치는 중국 바이주를 한 줄로 줄 세우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지만, 그래도 비싼 값을 주고 사서 마시는 만큼 어느 정도 ‘검증’된 리스트를 가질 필요는 있다. 중국 전역 3만7천여 개의 주창(양조장)과 1천여 개의 기업형 양조회사 제품 가운데 국가로부터 명주로 공인받은 바이주는 17종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주류산업 양성화를 위해 1953년부터 5차례에 걸쳐 전국주류품평회를 열어 명주를 선정해 육성하는 정책을 폈다. 이 품평회는 극심한 경쟁의 부작용 때문에 1989년을 끝으로 더는 열리지 않는데, 이때까지 최고상으로 뽑힌 바이주가 17종이었던 것이다. 수상 횟수별로 굳이 줄을 세워보면, 5차례 전 대회에서 금장을 받아 자타 공인의 최고 명주가 된 바이주(괄호 안은 생산지)는 마오타이(구이저우성)·분주(산시(산서)성)·노주노교특곡(쓰촨성)이다. 4회 수상으로는 우량예(쓰촨성)·서봉주(산시(섬서)성)·고정공주(안후이성)·동주(구이저우성), 3회 수상은 전흥대곡(수정방·쓰촨성)·양하대곡(양하남색경전·장쑤성)·검남춘(쓰촨성), 2회 수상은 쌍구대곡주(장쑤성)·황학루주(후베이성)·낭주(쓰촨성), 1회 수상은 보풍주(허난성)·무릉주(후난성)·타패곡주(쓰촨성)·송하양액(허난성) 등이다. 중국 술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와 같은 소주 형태의 바이주는 12~13세기 원나라 때를 기원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추운 중앙아시아 지역의 발달된 증류 기술이 전세계를 지배한 몽골 기병의 말 등에 실려 중국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본래 유목민 지역인 중국 북부지방의 분주가 중국 바이주의 원조로 추정되는 것도 이런 역사적·지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오늘날 바이주의 주산지는 대부분 중국 남부지방과 양쯔강 일대에 치우쳐 있다. 이 지역은 기온대가 일정하고 미생물이 풍부한 수자원을 가지고 있어 고품질의 바이주 생산과 장기 저장에 유리하다. 즉, 산시성 분주 계통의 바이주 제조 기술자와 양조 산업이 좋은 입지조건을 찾아 유동한 결과 남부지방과 양쯔강 주변에 자리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고대부터 중국에 독자적인 증류 기술이 있었다는 주장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언젠가 고고학 발굴을 통해 원시적이나마 증류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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