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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서울에서 구두공장 가장 많은 곳
소셜 이노베이션 허브로 다시 떠올라
‘연대’ 중시하는 혁신의 장소로 제격
‘카페성수’, 요즘 대세 충실히 따라
‘블루보틀’, 뉴욕 브루클린 옮겨온 듯
손에는 지도 없이, 마음속으로는 목적지 없이 도시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생각 이상으로 얻는 게 많다. 유럽 인문학에서 말하는 ‘플라뇌르’(flaneur) 개념은 걷는 기쁨에서 연유한다. 급할 것 없이 천천히 걷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로 흔히 ‘산보객’이라 번역한다.
플라뇌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근대화 과정에서 뿌리 뽑힌 인생들을 그린 작가는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였다. 20년 동안 쓴 작품 모음집인 <인간희극>에서 플라뇌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데, 그는 방랑하는 사람이며 근대화된 도시를 하나의 물신의 대상으로 꿰뚫어보는 관찰자다. 플라뇌르의 눈으로 시대를 매섭게 통찰한 시인은 샤를 보들레르(1821~1867)였다. 시집 <악의 꽃>에서 그가 본 것은 대로가 아닌 이면, 즉 파리의 골목길이었다. 나폴레옹 3세 시절의 파리 지사였던 오스망 남작의 주도 아래 진행된 파리의 근대화 개조 작업 과정에서 화려한 외관 뒤에 가려진 우울한 풍경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플라뇌르를 문화적 행위로 파악하여 세계 지식인 사회에 유행시킨 사람은 20세기 초반 독일의 문화평론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이었다. 그는 미완으로 끝난 명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산책자인 플라뇌르에게 ‘구경꾼’ 개념과 구분하여 적극적인 관찰자의 의미를 둔다. 느릿하게 걸으면서 이제 막 근대 도시로 형성되기 시작한 파리의 모습을 상품, 유행, 진열, 소비, 패션, 광고, 건축 등의 개념으로 나눠 바라본다. 여기서 ‘아케이드’란 산업자본주의의 틀이 확립되던 시기에 과거에 없었던 상품의 세계로 인도하는 백화점 같은 곳으로, 소비문화를 뜻하는 은유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유럽 작가들이 취했던 플라뇌르로서의 시선은 도시재생 작업이 한창인 21세기 서울과 소비문화를 바라보는 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느린 보폭으로 서울이란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는 자세다. 여기서 ‘골목길’이란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면서 도시의 이면을 말한다. 오늘 돌아볼 곳은 도시재생에서도 가장 핫플레이스라 불리는 성수동 지역이다. 규격화되고 무미건조한 프랜차이즈 상품과 서비스와 달리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작은 공방, 개성 만점인 음식점, 공장을 복합공간으로 바꾼 이국적인 카페 등이 몰려 있는 곳이다. 성수동이라 크게 뭉뚱그려 말하지만, 지하철로는 세 권역으로 나뉜다. 뚝섬역과 성수역, 그리고 서울숲역이다. 비슷한 듯 다른 점도 많기에 나눠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하철 2호선은 시내에서 한양대를 지나면서 바깥이 시원하게 보이는 지상 구간으로 달린다. 파리 6호선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개선문에서 시작해 에펠탑이 있는 비르아켐 역과 캉브론, 몽파르나스 등 주요 지역을 지나는 동안 고가 선로 구간이 많아 파리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는 노선이다. 뚝섬역에서 내려 8번 출구로 나간다. 200m도 지나지 않아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이 보인다. 소셜벤처, 사회적 경제 기업, 스타트업과 투자기관이 입주해 있는 곳으로 성수동 권역에서는 두 번째 건물이다. 최형욱 대표는 이 건물에 입주한 라이프스퀘어, 퓨처디자이너스의 CEO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 다녀오자마자 다시 중국 선전으로 출장을 떠났다. 해마다 8월 마지막 일주일 동안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열리는 전위적이고 창조적인 축제인 버닝맨 페스티벌에도 참석할 정도로 변화와 혁신의 최전선에서 살고 있다. 여의도에 있던 사무실을 지난해 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왜 뚝섬과 성수동 지역인가? “저희 업무는 이노베이션 캐털리스트, 즉 혁신 촉매자입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리서치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비즈니스의 최종적인 실행 단계까지 복잡한 업무입니다. 뚝섬과 성수동 지역은 옛것과 새로운 문화가 만나고, 도시재생 현장이며 또한 소셜 이노베이션의 허브입니다. 혁신에서 ‘연대’는 매우 중요한데, 이곳에서는 그게 가능합니다. 특히 젊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곳이지요.” 때마침 점심시간이다. 최형욱 대표를 따라 건물 뒷골목으로 향했다. 원래 숯불갈비 거리로 유명했던 곳이 점차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로 바뀌고 있었다. 한 군데씩 다녀도 한 달 동안 다 들르기 쉽지 않을 정도라 한다. 디자인은 첨단인데 ‘장미식탁’처럼 예스러운 이름이 혼합되어 있다. 요즘 말하는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말)의 현장이다. 서울숲6길에 있는 ‘소년식당’에 들어갔다. 정식이나 카레덮밥이 주메뉴인데 깔끔한 실내 디자인과 1인용 쟁반에 담겨 나오는 음식, 한눈에 젊은 취향임을 느끼게 한다. 모호함이 아닌, 계산과 선이 분명한 것을 선호하는 시대다. 서울숲4길에 있는 ‘카페성수’는 이 골목의 랜드마크 격이다. 양옥집을 카페로 개조한 곳인데 그림이 걸려 있고 롱테이블과 개성 있는 의자까지 요즘의 대세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작은 화분에 담겨 나오는 빵도 독특한데, 실내에서 유리창 밖으로 바라보는 붉은 벽돌 건물 풍경이 운치가 있다. 주변과의 조화와 균형은 골목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이다. 이 골목에서는 일하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골목길은 젊은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도시재생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최 대표는 ‘아케이드’ 개념을 꼽았다.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한다는 점에서는 발터 베냐민이 말한 아케이드와 얼핏 비슷하지만 그 관점은 다르다. “성수동·익선동 등 요즘 뜨는 골목은 아케이드로서 기능을 발휘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아케이드의 역할이지요. 이곳도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젊은 직장인의 유입이 많다는 점은 앞으로도 더 규모가 커질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국 고급 커피인 블루보틀이 뚝섬역 1번 출구 방향에 들어와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평범한 외관과 달리 블루보틀 실내는 마치 뉴욕의 브루클린에 온 느낌이다. 이제는 커피 그 자체뿐 아니라 공간을 소비하고, 서비스하는 접객 마인드도 중요한 시대다. 그런 점에서 혁신이란 낯설고, 경계지역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성수역 방향에 제화거리가 보인다. 동화에서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신분 상승을 상징한다면, 21세기 성수동의 구두는 무엇을 의미할까? 장인정신일까, 디자인일까, 물신일까? 원조 성수동 골목길을 향해 걷는다. 글·사진 손관승 작가
반면 플라뇌르를 문화적 행위로 파악하여 세계 지식인 사회에 유행시킨 사람은 20세기 초반 독일의 문화평론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이었다. 그는 미완으로 끝난 명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산책자인 플라뇌르에게 ‘구경꾼’ 개념과 구분하여 적극적인 관찰자의 의미를 둔다. 느릿하게 걸으면서 이제 막 근대 도시로 형성되기 시작한 파리의 모습을 상품, 유행, 진열, 소비, 패션, 광고, 건축 등의 개념으로 나눠 바라본다. 여기서 ‘아케이드’란 산업자본주의의 틀이 확립되던 시기에 과거에 없었던 상품의 세계로 인도하는 백화점 같은 곳으로, 소비문화를 뜻하는 은유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유럽 작가들이 취했던 플라뇌르로서의 시선은 도시재생 작업이 한창인 21세기 서울과 소비문화를 바라보는 데도 여전히 유효하다. 느린 보폭으로 서울이란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는 자세다. 여기서 ‘골목길’이란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면서 도시의 이면을 말한다. 오늘 돌아볼 곳은 도시재생에서도 가장 핫플레이스라 불리는 성수동 지역이다. 규격화되고 무미건조한 프랜차이즈 상품과 서비스와 달리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작은 공방, 개성 만점인 음식점, 공장을 복합공간으로 바꾼 이국적인 카페 등이 몰려 있는 곳이다. 성수동이라 크게 뭉뚱그려 말하지만, 지하철로는 세 권역으로 나뉜다. 뚝섬역과 성수역, 그리고 서울숲역이다. 비슷한 듯 다른 점도 많기에 나눠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하철 2호선은 시내에서 한양대를 지나면서 바깥이 시원하게 보이는 지상 구간으로 달린다. 파리 6호선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개선문에서 시작해 에펠탑이 있는 비르아켐 역과 캉브론, 몽파르나스 등 주요 지역을 지나는 동안 고가 선로 구간이 많아 파리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는 노선이다. 뚝섬역에서 내려 8번 출구로 나간다. 200m도 지나지 않아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이 보인다. 소셜벤처, 사회적 경제 기업, 스타트업과 투자기관이 입주해 있는 곳으로 성수동 권역에서는 두 번째 건물이다. 최형욱 대표는 이 건물에 입주한 라이프스퀘어, 퓨처디자이너스의 CEO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에 다녀오자마자 다시 중국 선전으로 출장을 떠났다. 해마다 8월 마지막 일주일 동안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열리는 전위적이고 창조적인 축제인 버닝맨 페스티벌에도 참석할 정도로 변화와 혁신의 최전선에서 살고 있다. 여의도에 있던 사무실을 지난해 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왜 뚝섬과 성수동 지역인가? “저희 업무는 이노베이션 캐털리스트, 즉 혁신 촉매자입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리서치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비즈니스의 최종적인 실행 단계까지 복잡한 업무입니다. 뚝섬과 성수동 지역은 옛것과 새로운 문화가 만나고, 도시재생 현장이며 또한 소셜 이노베이션의 허브입니다. 혁신에서 ‘연대’는 매우 중요한데, 이곳에서는 그게 가능합니다. 특히 젊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곳이지요.” 때마침 점심시간이다. 최형욱 대표를 따라 건물 뒷골목으로 향했다. 원래 숯불갈비 거리로 유명했던 곳이 점차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로 바뀌고 있었다. 한 군데씩 다녀도 한 달 동안 다 들르기 쉽지 않을 정도라 한다. 디자인은 첨단인데 ‘장미식탁’처럼 예스러운 이름이 혼합되어 있다. 요즘 말하는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말)의 현장이다. 서울숲6길에 있는 ‘소년식당’에 들어갔다. 정식이나 카레덮밥이 주메뉴인데 깔끔한 실내 디자인과 1인용 쟁반에 담겨 나오는 음식, 한눈에 젊은 취향임을 느끼게 한다. 모호함이 아닌, 계산과 선이 분명한 것을 선호하는 시대다. 서울숲4길에 있는 ‘카페성수’는 이 골목의 랜드마크 격이다. 양옥집을 카페로 개조한 곳인데 그림이 걸려 있고 롱테이블과 개성 있는 의자까지 요즘의 대세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작은 화분에 담겨 나오는 빵도 독특한데, 실내에서 유리창 밖으로 바라보는 붉은 벽돌 건물 풍경이 운치가 있다. 주변과의 조화와 균형은 골목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조건이다. 이 골목에서는 일하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골목길은 젊은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도시재생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최 대표는 ‘아케이드’ 개념을 꼽았다.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한다는 점에서는 발터 베냐민이 말한 아케이드와 얼핏 비슷하지만 그 관점은 다르다. “성수동·익선동 등 요즘 뜨는 골목은 아케이드로서 기능을 발휘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아케이드의 역할이지요. 이곳도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젊은 직장인의 유입이 많다는 점은 앞으로도 더 규모가 커질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국 고급 커피인 블루보틀이 뚝섬역 1번 출구 방향에 들어와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평범한 외관과 달리 블루보틀 실내는 마치 뉴욕의 브루클린에 온 느낌이다. 이제는 커피 그 자체뿐 아니라 공간을 소비하고, 서비스하는 접객 마인드도 중요한 시대다. 그런 점에서 혁신이란 낯설고, 경계지역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성수역 방향에 제화거리가 보인다. 동화에서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신분 상승을 상징한다면, 21세기 성수동의 구두는 무엇을 의미할까? 장인정신일까, 디자인일까, 물신일까? 원조 성수동 골목길을 향해 걷는다. 글·사진 손관승 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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