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연 주요 소품 전시…순간의 예술을 영원으로

서울의 작은 박물관 ㉒ 중구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등록 : 2020-02-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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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창립 첫 공연인 ‘원술랑’ 등

초기의 연극·무용 등 기억 모아둔 곳

무대 위는 물론 무대 뒤 이야기 담아

화려한 무대의상, 사람인 듯 손님 맞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은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연예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순간의 예술, 공연예술. 그 빛나는 순간들을 모아놓은 곳이 공연예술박물관이다.

공연예술의 뿌리를 찾아서


1950년 4월30일부터 5월6일까지 7일 동안 무대에 오른 <원술랑>을 본 관객이 5만 명이 넘었다. 신라 김유신 장군의 아들 원술의 이야기를 담은 <원술랑>은 1950년 4월29일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본관)에서 문을 연 국립극장 개관 기념 공연이었다.

2009년 12월 개관한 공연예술박물관은 국립극장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 자료를 소장해 그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1950년부터 무대에 오른 공연물 포스터가 관람객의 발길을 인도한다. 그 첫머리에 <원술랑> 포스터가 걸렸다.

국립무용단 제73회 정기공연 무용극<오셀로>에 등장했던 소품, 말.

계단 중간에 말 조형물이 있다. 국립무용단 제73회 정기공연 무용극 <오셀로>에 등장했던 소품이다. 가로 70㎝, 세로 235㎝, 높이 214㎝의 거대한 말 조형물이다.

관람 동선은 공연예술의 뿌리를 찾아가는 전시물과 안내글로 이어진다. 안내글은 공연의 뿌리를 기원전 기원의 의례에 있다고 설명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옛 그림에 나타난 공연 장면을 볼 수 있다.

영혼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불교 그림인 감로탱화에서 쌍줄타기, 탈춤, 무당춤, 솟대타기, 방울받기, 사당들의 춤 등 다양한 공연 그림이 보인다. 안악제3호분의 안악행렬도, 팔청리고분벽화의 전통연희 장면, 무용총의 무용도 등 고분벽화는 당시의 공연예술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그림에서도 공연예술을 볼 수 있다. 같은 시대에 인기를 누린 산대놀이, 꼭두각시놀이, 가면극, 판소리 등은 근대 공연예술의 기틀을 마련했다.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무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1902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극장인 협률사에 대한 안내글이 보인다. 고종 황제 등극 40주년 기념행사장으로 만들어졌으나 기근과 콜레라 때문에 본래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광대와 기생 등의 춤과 판소리가 공연되면서 민간 주도의 공연장이 됐다고 적혔다. 협률사는 1908년에는 이인직이 인수하면서 원각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국 최초의 연기자 훈련 강습소인 조선배우학교에 대한 설명도 보인다. 1924년 설립된 학교로 미학, 비평, 무용, 분장술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기생, 최고의 종합예술인

전시실 한쪽에 모아놓은 ‘기생엽서’에 눈이 간다. 기생은 조선의 궁중공연예술과 민속의 전통을 잇던 당대 최고의 종합예술인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 공연뿐만 아니라 서양의 공연예술도 무대에 올렸다. 뛰어난 가무 솜씨로 단박에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27년 경성방송국이 생기고 라디오가 보급되면서 기생들의 인기는 전파를 타고 더 많은 사람 속으로 파고들었다. 음반을 녹음하고 화보를 찍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최고의 스타였던 기생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축음기가 보인다. 1930년대 콜롬비아사에서 제작한 이동이 가능한 축음기다. 1930년대 음반과 음반 보관함도 볼 수 있다. 옛 노래와 연극 대사를 들을 수 있는 장치도 있다. 듣고 싶은 음원 번호를 누른 뒤 손잡이를 돌리면 소리가 나온다. ‘사의 찬미’ ‘노들강변’ ‘춘향가’ 중 ‘천자뒤풀이’ ‘능수버들’ ‘강산타령’ ‘황성의 적’ 등 노래 일부를 들을 수 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대사도 들을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셰익스피어 번역본 <햄릿>.

극예술연구회의 제4회 공연 <무기와 인간> 1933년 공연 사진도 전시됐다. 1923년 박문서관에서 출판된 한국 최초의 셰익스피어 번역본 <햄릿>도 볼 수 있다. 1954년 위문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와 <춘향전>에 출연한 배우 백성희의 기념사진이 인상적이다.

전쟁이 끝난 뒤 서울로 돌아온 예술인들은 폐허가 된 명동에서 예술의 꽃을 피운다. 국립극장도 1957년 명동의 시공관 건물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국립극장 환도 기념공연으로 카를 쇤헤어의 작품 <신앙과 고향>을 무대에 올렸다. 전시실에 그 대본이 전시됐다. 제1회 국립극장 희곡 현상공모 당선작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 공연되기도 했다. 그 집필 노트와 프로그램도 볼 수 있다. 이후 1962년 국립극장을 새롭게 단장했다.

작가의 방

국립극장은 명동 시대를 끝내고 1973년 10월에 지금의 자리인 남산으로 이전한다. 명동 시절 무대보다 여덟 배 넓은 400평의 대극장 무대에 대형 사극과 총체극 같은 대규모 작품을 올린다. 개관 기념공연은 <성웅 이순신>이었다. 240여 명이 출연한, 당시 한국 연극사상 최대 규모 작품이었다.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이 미국에서 취입한 첫 가야금곡 앨범이 눈에 띈다. 국립창극단 <흥부가> 공연 음원이 담긴 릴 테이프도 볼 수 있다.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에서 막달라 마리아 역을 맡았던 박명숙 선생이 입었던 의상과 홍신자 선생이 뉴욕 라마마 극장에서 초연한 공연 <웃는 여자>에서 입었던 의상도 전시됐다. <에쿠우스>에서 사용했던 말 가면은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안경호씨가 기증한 1970년대 국립극장 입장권이 전시됐다. 국립극장 시대별 소식지도 볼 수 있다.

연극의 방.

관람 동선은 전시실 중앙을 지나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다. 그 첫머리에 있는 ‘연극의 방’ 앞에서 한참 머문다. 서항석·이근삼·허규 등 근현대 연극의 기틀을 다진 극작가들이 생전에 연극 작업을 위해 사용한 애장품과 자료 등으로 극작가의 방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고 한다. 1940년대부터 활동했던 국악 창작 작곡가를 중심으로 기증받은 악기와 육필 악보, 육필 원고, 음반, 서적 같은 유품과 자료로 ‘음악의 방’도 연출했다. ‘무용의 방’도 있다.

‘무용의 방’ 앞을 지나면 ‘무대 뒤 이야기’라는 주제로 만든 공간이 나온다. 하나의 무대가 탄생하는 과정을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무대디자인 작업실, 소품실, 의상실, 분장실의 공간을 연출했다.

분장실을 재현한 공간.

연극<노이즈 오프>의 무대 미니어처.

무대 미니어처도 있다. 실제 무대를 정확하게 제작하기 위해 미니어처를 만든다고 한다. 무대 미술가가 디자인한 뒤 일정한 비율로 축소해서 만든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많은 분야에서 사용된다. 연극 <노이즈 오프>, 한국 무용 <공자>, 창극 <청>, 뮤지컬 <카미유 클로델> 등의 무대 미니어처를 볼 수 있다.

국립극단 제176회 정기공연<파우스트>에 사용했던 마녀탈.

분장실을 재현한 공간에서 무대 뒤의 현장감을 느낀다. 국립무용단 제62회 정기공연 <우리 춤·우리의 맥>에서 사용했던 처용탈, 국립무용단 제75회 공연 <한국 천년의 춤>에서 썼던 금관, <심청전> 등 무용과 창극에서 사용했던 연꽃관, <로미오와 줄리엣> 등 셰익스피어 작품 공연에서 자주 사용했던 모자, 국립창극단 어린이 창극 <흥부 놀부>에서 사용했던 도깨비방망이, 국립극단 제176회 정기공연 <파우스트>에서 사용했던 마녀탈 등 전시된 소품에서 관객의 박수갈채가 들리는 듯하다. 공연에서 입었던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은 마네킹의 배웅을 받으며 전시실을 나선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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