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고립됐지만, 도전하는 자세로 한발 앞으로…”

매듭·라탄·도예·왕골 등 혼자 작업하는 2~10년차 공인들 이야기

등록 : 2020-04-09 14:11 수정 : 2020-04-0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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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이수자 이선행씨

못했던 색채 공부 위해 온라인대 입학

라탄공예가 권나애씨

“수강생에 숙제 왕창 내도 금세 완성해”

왕골공예가 장지영씨

무상임대 전시장에서 첫 개인전 열어

매듭 이수자 이선행씨. 다회틀 앞에 앉아 ‘다회 치는’(실을 짜는) 작업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이씨가 작업한 삼작노리개는 주로 전통복식 단장이나 가구 꾸밈 등에 쓰인다.

“바스락바스락….” 강서구 골목 속 다세대 가구 작은 주차장. 중년 여인이 틀 앞에 앉았다. 얼추 사람 키 다섯 배가 넘는 명주실을 엮고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스마트폰 경보 알람만 날카롭게 울려대던 3월20일이었다. 매듭 이수자 이선행(49)씨가 말했다.


“늘 하는 작업이에요. 실 엮는 작업은 한번 손에 잡으면 끝날 때까지 중단할 수 없어요. 중간에 손을 놓으면 실이 튕겨나가 버리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거든요.”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이 바뀌어가는 가운데 변치 않고 자신의 세계를 일구는 이들이 있다. 서너 평 공방에 자신을 가둔 채 해가 뜨면 어김없이 주어진 일을 하는 공인들이다.

이들은 ‘오랜 고립의 일상화’가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를 담담히 견디는 지혜가 됐다고 말했다. 실을 염색하고, 끓는 물에 찌고, 엮고, 꼬고, 묶고…. 꼬박 두 달 동안의 수작업을 거친 ‘3봉술 단장 노리개’를 꺼내 선보이는 이씨가 말했다.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은 때를 뭔가 해볼 기회로 본달까요. 그동안 매듭 만들기의 전통성에 집중해 정신없이 작업해왔다면, 요즘엔 매듭의 현대적 쓰임새를 연구해보고, 못했던 공부를 하려고 색채와 복식을 가르치는 온라인 대학에 입학해 수강하고 있어요. 어제도 새벽 4시까지 수업을 듣고 잤어요.”

이선행씨 배우자는 소목장 김영상씨다. 젊은 날 여행사를 다니다가 2003년 사스(SARS) 사태에 직장을 정리하는 등 아픔을 겪고, 오랫동안 취미로 해오던 목공에 집중했다고 한다. 온전히 본인의 세계를 갖춘 오늘날 먹감나무를 기막히게 다뤄서 찾는 구매자가 많다. “제가 쓰는 다회틀 등 크고 작은 기계들을 모두 남편이 만들어줬어요. 매듭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남편의 권유였고요. 삼십대 후반 산후우울증에 좋아했던 뜨개질마저 놓고 있었는데, 일찍이 역경을 기회 삼아 먼저 도약했던 남편이 작가의 길을 권했지요.” 10년 넘게 꾸준히 매듭을 엮어온 이씨는 지난해 8월 열린 서울시무형문화재 이수자 자격시험에서 최종 합격했다. 매듭장 송리 김은영 선생으로부터 이수받았다.

손가락이 퉁퉁 붓고 손목과 어깨 등 관절이 삐걱거리는 직업병에 시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문래동과 누하동에서 각각 라탄공방과 도예공방을 운영하는 청년작가 권나애(26), 김은지(29)씨, 그리고 왕골공예가 장지영(39)씨처럼 말이다.

라탄공예가 권나애씨. 라탄공예가 권나애씨는 평안한 봄을 기다리며 지난 두 달 틈틈 엮었다는 소풍바구니를 선보였다.

라탄공예는 탄성 좋은 등나무로 가구와 생활소품 등을 만드는 작업이다. 라탄공예가 권나애씨는 부은 손을 수줍어했다. “뭐라 표현 못할 만큼 재밌어요. 한번 앉아 엮어나가기 시작하면 5~6시간 금방 가요. 집에서 할 수 있는 쉬운 취미고요.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정규과목 들으시는 분들에게 숙제를 왕창 드리는데 모두 금방 완성하세요.(웃음)” 평균 컵받침 하나에 30여 분, 식탁 등 가구는 2~3개월 소요된다. “이처럼 빈 시간을 이용해 손에 쥐는 결과물로 바꿔나가는 행위가 라탄공예의 매력 아닐까요?”

도자 작가 김은지씨가 백토로 도자 형태를 잡고 있다.

도자 작가 김은지씨는 물기 마를 새 없는 손에 습진이 가시지 않는다며 힘 있게 백토 덩어리를 주물렀다. “도예를 배우려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남녀노소 다양하거든요. 어린 시절 흙을 주무르던 때를 생각해보면 도예는 친숙한 행위잖아요. 수강생들에게 물레를 치기 앞서서 손으로 흙 만지는 시간을 가능한 한 오래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형태감을 먼저 익히면 훗날 물레 앞에 앉을 때도 나만의 도자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서요.” 김씨는 온라인 쇼룸에서 제작 주문을 받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바깥세상과의 교류에도 공들여 시간을 쓰고 있다.

왕골공예가 장지영씨. 부지런히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왕골로 엮은 공예품들은 풀 냄새가 살아 숨 쉰다.

문래동 예술촌 골목 속 세평 복합문화공간은 코로나19로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았지만, 5년 차 왕골공예가 장지영씨는 아예 이곳을 임시 전시장 겸 작업실로 쓰며 다음 작품을 준비했다. 왕골로 짠 모자, 가방, 함 등 왕골공예품이 햇볕 아래 옹기종기 늘어섰다. “무상임대한 전시장에서 첫 개인전까지 열어봤으니, 저는 지금이 잊을 수 없는 시간이죠.(웃음)” 장씨는 동네 분들이나 간간이 지나가는 이들에게 왕골의 세계를 소개하는 일이 기쁘다고 했다. 장씨는 완초장 이상재 선생의 전수조교 유선옥씨에게서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재료 자체가 도전이에요. 특유의 풀 냄새가 매력적이고 머릿속 문양을 비슷하게나마 구현하는 과정이 재밌어요. 왕골 엮는 작업에 빠졌을 땐 2년 동안 잠자고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온종일 했죠. 그 덕에 손도 상하고 목과 허리 통증을 달고 사는데, 숙련공 선배들에 비하면 멀었어요. 고립된 일상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도전하는 하루하루에 빠져 있습니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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