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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이 살던 집터
화려한 명동 거리 빌딩 모퉁이 은성주점 터를 알리는 표지석에서 박인환 시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명동에 예술가들은 모여들었고 그중에 박인환도 있었다. 통속의 거리에서 건져 올린 그의 시편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를 손에 들고 명동에서 종로3가와 원서동을 지나 세종대로 교보빌딩에서 걸음을 멈춘다.
은성주점
소공동 롯데영플라자 맞은편 명동 거리로 들어선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리에 생기가 돈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치에 작은 비석이 보인다. ‘은성주점’이 있던 곳을 알리는 표지석이다.(원래 은성주점은 표지석이 있는 곳 10m 전에 있었다.)
은성주점은 195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운영했던 술집이다. 50년대와 60년대에는 시인, 소설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다. 이봉구, 변영로, 전혜린, 임만섭 등과 함께 박인환도 은성주점에 드나들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표지석을 뒤로하고 명동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길 왼쪽에 명동예술극장이 보인다. 박인환이 명동을 활보할 때에는 국립극장이었다. 서울의 중심에 세워진 문화예술 공연의 전당이었다. 70년대 중반 문을 닫았고 2000년대 후반에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옛 동방싸롱
명동예술극장을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명동관광정보센터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볼 수 있다. 이정표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이 골목에 문화예술인들이 모이던 명동의 터줏대감 ‘동방싸롱’이 있었다. 2006년 예옥 출판사에서 펴낸 박인환 전집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에 한국전쟁 중 서울 수복 이후 동방싸롱 주변에서 찍은 박인환의 사진이 실려 있다.
명동 거리에 남아 있는 박인환의 일화 중 하나는 그의 시 ‘세월이 가면’과 얽힌 이야기다. ‘세월이 가면’은 그가 죽은 해에 완성됐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세월이 가면’ 일부. 박인환 전집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에서 발췌.)
<명동백작>(2004년 일빛 출판사 발행)을 쓴 이봉구는 ‘명동백작’으로 불리던 사람인데, 그는 책에서 당시를 이렇게 적고 있다.
“1956년 이른 봄 명동 한복판 빈대떡집 깨진 유리창 안에서 새로운 사랑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중략)/ 박인환이 작사를 하고, 이진섭이 작곡을 하고, 임만섭이 노래를 부르고, 첫 발표회나 다름없는 모임이 동방싸롱 앞 빈대떡집에서 열리게 되었다.”
옛 마리서사 서점
마리서사
명동의 뒷골목을 빠져나와 KEB하나은행 건물 앞을 지난다. 을지로2가 사거리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걷는다. 청계천 삼일교를 건너서 종로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탑골공원 정문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대한보청기 간판이 보인다. 이 건물 부근에 박인환이 운영했던 서점 ‘마리서사’가 있었다. 마리서사에는 구하기 힘든 외국 서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이 마리서사의 단골이 됐다. 김수영 시인은 그의 글 ‘마리서사’에 김기림, 김광균, 이시우, 오장환, 배인철 등의 문인들이 자주 얼굴을 보였다고 적고 있다.
마리서사를 운영하던 박인환은 1946년에 ‘거리’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마리서사는 1948년에 문을 닫는다.
박인환 묘 입구 비석
박인환의 마지막 거처
낙원상가 방향으로 걷는다. 낙원상가와 운현궁을 차례로 지난다. 안국역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우회전한다. 창덕궁 담장과 현대원서공원 사잇길로 올라간다. 용수산 식당 뒤 작은 주차장 안쪽이 박인환이 살던 집터다. 강원도 인제에서 살던 박인환은 1936년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그 첫 집이 이곳이다. 이후 같은 원서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1948년까지 산다. 원서동 집터에서 나와 용수산 식당을 끼고 우회전, 재동초등학교를 지나서 경복궁 담장길로 접어든다. 광화문 앞을 지나 세종대로 교보빌딩에 도착한다.
교보빌딩 뒤편 주차장 입구 한쪽에 박인환이 살던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박인환이 살던 집터가 지금의 교보빌딩 자리였다. 박인환은 이곳에서 1948년부터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사람은 가고 시만 남아 그를 기억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목마와 숙녀’ 일부. 박인환 전집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에서 발췌.)
1956년 봄에 세상을 떠난 박인환은 망우리공원에 묻혔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