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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탓에 어려워진 해외여행 대신
독서 모임 ‘트레바리 안국아지트’ 찾아
멀리 제주에서도 참가한 열정들 모여
돈화문로·안국동을 뜨겁게 달구었다
마음으로 지식으로 여행을 떠난 당신
코로나에 지지 않은 모습, 정말 예쁘다
6월이 왔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이 그 치명적 바이러스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윌리엄 헬름라이시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미국 뉴욕시립대학에서 사회학과 유대교를 가르쳤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뉴욕>(The New York Nobody Knows)이라는 책을 쓴 전설적인 골목길 여행자였기 때문이다.
소년 시절 유럽에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에 건너온 뒤 주말마다 뉴욕의 골목길을 걷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12만1천 개 블록과 6163마일(대략 1만㎞)을 걸었다고 하니 뉴욕의 거의 모든 구석을 누빈 것이다. 맨해튼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골목길만 걸은 것이 아니라 조직폭력배들이 설치는 브롱크스의 으스스한 골목길에도 들어가 대화를 시도한 강단 있는 골목길 여행자였다. 나치의 탄압에도 살아남았고 살벌한 갱단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뉴욕이 아닌 서울 골목길 여행자로서 내가 열두 번째로 향하는 곳은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 3호선, 5호선 등 세 노선이 겹치는 환승역으로, 어느 출구로 나오느냐에 따라 너무도 상이한 풍경을 보여주며 개발과 보존이란 두 가치가 극심하게 충돌하는 지역이다. 나는 7번 출구로 나와 걷기로 했다. 정면인 북쪽으로 창덕궁까지 길게 뻗은 길이 돈화문로다. 지하철역에서 창덕궁 삼거리까지 637m. 도보로는 약 10분 거리다.
소년 시절 유럽에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에 건너온 뒤 주말마다 뉴욕의 골목길을 걷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12만1천 개 블록과 6163마일(대략 1만㎞)을 걸었다고 하니 뉴욕의 거의 모든 구석을 누빈 것이다. 맨해튼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골목길만 걸은 것이 아니라 조직폭력배들이 설치는 브롱크스의 으스스한 골목길에도 들어가 대화를 시도한 강단 있는 골목길 여행자였다. 나치의 탄압에도 살아남았고 살벌한 갱단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뉴욕이 아닌 서울 골목길 여행자로서 내가 열두 번째로 향하는 곳은 지하철 종로3가역. 1호선, 3호선, 5호선 등 세 노선이 겹치는 환승역으로, 어느 출구로 나오느냐에 따라 너무도 상이한 풍경을 보여주며 개발과 보존이란 두 가치가 극심하게 충돌하는 지역이다. 나는 7번 출구로 나와 걷기로 했다. 정면인 북쪽으로 창덕궁까지 길게 뻗은 길이 돈화문로다. 지하철역에서 창덕궁 삼거리까지 637m. 도보로는 약 10분 거리다.
종로3가역 5~6번 출구 심야 포장마차 거리
돈화문로 건너 서쪽에 6번 출구가 있고 그 부근이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익선동 ‘갈매기살 골목’이다. 재래식 한옥이 멋진 오브제로 작용하지만 실제로는 ‘먹마즐’, 즉 먹고 마시고 즐기기에 좋은 골목이다. 익선동은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돈화문로를 중심으로 동쪽 골목이 주 탐색 대상이다. 종묘가 있는 담장 방향으로는 종로주얼리타운, 귀금속 거리가 있다. 도금과 가공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협업과 분업을 담당하는 작은 공방들이 촘촘히 연결된 국내 최대의 귀금속 네트워크다. 골목 어귀를 나오는데 광고 문구가 눈길을 유혹한다.
“오늘은 당신이 제일 예쁘다.”
울타리 호스텔
이곳에서 북쪽 창덕궁 방향의 돈화문로는 익선동과 달리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이 지배하는 곳, 걷기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 권할 만한 길이다. 떡박물관 같은 전통음식 관련 시설 안내표가 보이는 도로 양옆으로 서예와 화랑, 대각사라는 이름의 사찰, 그리고 팬시한 카페와 작은 호텔들이 눈에 뜨인다. 그 중간쯤 우측 사잇길로 들어가 여기저기 좁은 골목길을 둘러보다가 고강 유료주차장 부근에서 율곡로10길로 들어섰다. 울타리 호스텔, 루프탑 테라스, 한옥 게스트하우스 같은 이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 내가 목표로 한 곳은 이 골목의 노스테라스 카페가 있는 건물, 그곳에 트레바리 안국아지트가 있다.
트레바리는 책을 읽고 쓰고 대화하며 친해지는 커뮤니티. 나는 ‘여행의 기술(記述)'이란 모임의 클럽장 자격으로 이곳에 처음 가는 길이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같은 여행 고전을 읽고 글쓰기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보자는 취지다. 마침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과 원거리 이동이 어려운 지금 책을 통해 내실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나면 설레지만, 그 설렘의 감정이란 것이 너무도 휘발성이 강해서 금방 증발해버리곤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허무해지는 이유이며, 그래서 새로운 풍경을 찍는 것보다 새로운 관점을 얻어오는 것이 더 간절하다.
주말의 귀중한 시간에 어떤 사람들이 참석할까 사실 궁금했다. 스타트업 대표, 대기업 전직 임원, 고등학교 교사, 공공기관 간부, 디자이너, 기자, 심리상담사, 도서관 사서 등 참석자들 면면은 실로 다채로웠다. 더 놀란 것은 이 모임을 위해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온 참석자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어떤 갈증을 말한다. 낯선 곳에 대한 갈증, 지식에 대한 갈증, 자유를 원하지만 동시에 취향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연결에 대한 갈증이었다.
돈화문 앞 서울우리소리 박물관
대화 분위기가 뜨거워져 자연스레 뒤풀이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 골목길을 나와 인근에 있는 창덕궁 돈화문 앞쪽으로 향했다. 과거 전국 도로망의 기준점이 바로 이 돈화문 앞이었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가 가장 많았던 곳인 반면 1910년 대한제국이 막을 내린 국치의 장소였고, 동시에 1919년 3·1독립선언을 외친 곳이기도 하다. 창덕궁 부근은 역사 도심 활성화로 지정된 곳답게 최근 주변 정비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돈화문 건너편으로 외적 방어와 국가 정책을 논의하던 관아인 비변사 터 표석이 있고 뒤편으로는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영혼이 서려 있는 ‘공간’ 빌딩과 현대건설 건너편을 지나 안국역 방향으로 걸었다. 종로경찰서 옆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가 작은 주점에서 여행과 골목길을 주제로 열띤 대화가 이어졌다. 건축학도 출신의 한 참석자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좁은 골목길에 있다가 넓은 공간을 만났죠? 그때의 마음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스트레스와 그 이후의 카타르시스 개념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마치 봇물이 터지듯 참석자들은 공간과 책에 대해, 여행에 대해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축제와 소셜미디어, 독서모임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을 들고 촬영하는 것이 축제의 목적이 아니듯,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진가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송해 선생 동상
지하철이 끊기기 전 낙원동 악기상가와 아귀찜 거리를 지나 다시 종로3가역으로 왔다. 그 앞 돈화문로11길은 밤이면 노상 포장마차 촌으로 변하는 곳이다. 코로나 때문에 불야성 같던 이전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5번 출구 앞에는 송해 선생 동상과 송해길 안내판이 보인다. 요즘 나이 든 여인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남편상이라는 바로 그 이름이다. 그렇다. 평생 현역,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하자면 그는 100세 시대의 뉴노멀, 새로운 표준이다. 내 성에 그의 이름을 합하니 ‘손해’다. 그래도 도전해봐야겠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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