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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한권의 서점’이 마을 안내소 역할
서촌 곳곳을 즐긴 뒤 저녁 6시 체크인
“감수성 잘 보존된 동네에 깊이 머물기”
‘지역과 상생’ 새 주거 문화 고민 결과
여행자 김은하(36)씨는 7월 초 주말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북 스테이 한옥 공간 ‘일독일박’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일독일박’ 전경
일독일박은 공간·숙소 큐레이션 플랫폼 ‘스테이폴리오’(booking.stayfolio.com/)가 운영 중인 서촌의 한옥형 숙소다. 서촌의 빈 점포, 한옥 등을 소유주와 상의한 뒤 공간의 특색을 살려 재생 건축해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재탄생시켰다. 이상묵 스테이폴리오 대표는 “그동안 서촌의 버려진 여러 한옥을 전세·대여해 문화 재생적 방향으로 재건축했다”며 “한옥을 보존하면서 여행자로 하여금 서촌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집주인도 언제든지 돌아와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다. 토박이와 이방인이 어우러진 공유의 공간인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재해석해낸 서촌의 한옥형 숙소는 저마다 다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예로 ‘일독일박’은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북 테라피 하우스’다. 또 다른 한옥형 숙소인 ‘아담한옥’은 지하에 요가·명상 공간이 있어 복잡한 도심에서 나만의 동굴을 찾아 들어가고 싶을 때 찾는 공간으로 꾸몄다. 체크인 시각도 남다르다. ‘일독일박’의 경우 오후 2~3시인 일반 호텔과 다르게 저녁 6시에 입실할 수 있다. ‘숙소가 위치한 서촌을 충분히 즐기고 들어오라’는 뜻에서 정한 시각이라고 한다.
그가 재해석해낸 서촌의 한옥형 숙소는 저마다 다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예로 ‘일독일박’은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북 테라피 하우스’다. 또 다른 한옥형 숙소인 ‘아담한옥’은 지하에 요가·명상 공간이 있어 복잡한 도심에서 나만의 동굴을 찾아 들어가고 싶을 때 찾는 공간으로 꾸몄다. 체크인 시각도 남다르다. ‘일독일박’의 경우 오후 2~3시인 일반 호텔과 다르게 저녁 6시에 입실할 수 있다. ‘숙소가 위치한 서촌을 충분히 즐기고 들어오라’는 뜻에서 정한 시각이라고 한다.
‘한권의 서점’
낮 시간대에 서촌에 도착한 은하씨는 숙소 인근에 있는 ‘한권의 서점’을 먼저 찾았다. 한 달에 오직 한 권의 책만 판매하는 작은 동네서점이다. 얼핏 보면 독특한 콘셉트의 서점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서촌이라는 한 마을을 소개하는 안내소 구실을 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를테면 서촌의 한옥형 숙소(일독일박, 누와, 서촌영락재, 서촌도감, 아담한옥, 썸웨어 등)를 예약한 손님이 입실 당일 이곳에 오면 숙면을 위한 잠옷과 책이 제공된다.
‘영락재’
한옥형 숙소 ‘누와’
이 밖에도 여행자가 머무는 숙소를 기점으로 ‘식사는 어디서 하면 좋을지’ ‘갈 만한 카페와 상점은 어디에 있는지’ 등 서촌 곳곳의 흥미로운 공간을 설명해준다. 동네서점이 ‘호텔 콘시어지’(쇼핑명소·맛집·공연정보 등 현지 관광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 일을 하는 셈이다.
이 서점을 운영 중인 이상묵 대표는 “굳이 고급 호텔에 가지 않아도 서촌이라는 마을의 골목마다 숨어 있는 좋은 식당, 카페 등을 퍼즐 맞추듯 찾아 나가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고층건물인 호텔을 수직으로 오고 가며 이용하는 행위에서 벗어나 마을 곳곳을 수평적으로 돌아다니며 경험하고 즐기는 ‘수평호텔’ 식의 여가 문화로 전환하는 게 그의 목표다.
이날 은하씨는 한권의 서점에서 이달 소개하는 책 (아 무샹,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보낸 45일)을 샀다. 허남훈 감독과 김모아 작가의 에세이집으로, ‘다음을 만들면 돼’ ‘그러니 그저 네가 갖고 있는 것을 가져’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나이 들 수 있을까’ 등 생에 대한 질문이 담겼다. 매달 오로지 한 권의 책만 소개하는 이유는 여행자가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질문에 대해 여유롭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권의 서점을 나선 은하씨는 본격적으로 서촌의 골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경복궁의 서쪽 문을 뜻하는 영추문이 있는 경복궁 서편과 인왕산 사이의 동네를 일컫는 ‘서촌’은 종로구 청운동, 효자동, 창성동, 통의동, 신교동, 통인동, 옥인동,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사직동 등 작은 동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다. 이 일대는 과거 조선시대 양반과 중인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하다. 자연적으로는 수성동 계곡으로부터 내려온 옥류동천의 흐름에 따라 동네의 골목이 혈관처럼 굽이굽이 형성됐다.
누상동을 향하던 은하씨는 서촌의 토박이가 운영하는 가정식 식당 ‘누하동주스바’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비건 화장품 디아이와이(DIY) 체험 공간 ‘비비엘하우스’로 발걸음을 향했다. 천연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코로나19 대처용 천연 소독제는 덤이다. 옥인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박노수미술관과 수성동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촌은 예로부터 예술가의 동네로도 유명했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시인 이상과 윤동주, 화가 박노수와 이중섭 등이 이 일대에 기거하며 유의미한 작품을 만들었다. 예술의 기운이 머무는 동네답게 이곳 토박이들은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여겨, 설령 개발하더라도 본래 있었던 길을 파괴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도시로 개발된 서울에서 이렇게 오래된 터전을 지킨 동네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이 대표는 힘주어 말한다.
박노수미술관에서 근현대사 미술을 감상하고 수성동 계곡의 자연을 만끽하다보니 입이 심심해진다. 수성동 계곡 초입에 있는 카페 ‘알카미아’에서 쑥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하고 통인시장에서 과일을 사다보니 어느덧 체크인 시간이 가까워졌다. 숙소 ‘일독일박’으로 입실하자 고즈넉한 한옥 분위기에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북 테라피 하우스’라는 별칭답게, 한옥 곳곳에 인생을 되돌아보는 에세이집 등 읽을거리가 배치돼 있다. 이곳의 드립커피 원두는 서촌 자하문로에 있는 ‘착한커피공장’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마당에서 족욕을 하며 은하씨는 “멀리 관광지나 고급 호텔로 갈 필요 없이 서촌처럼 동네 특유의 감수성을 잘 보존한 한 동네에만 깊숙이 머무는 로컬(지역) 심층 여행을 할 수 있어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구불구불한 서촌의 골목길을 엘리베이터 삼아 동네서점에서 체크인하고 지역 맛집에서 식사한 뒤 고즈넉한 한옥에서 잠을 청하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은하씨는 도시의 소란스러움과 바쁜 일상에서 모처럼 잠시 ‘멈춤’을 경험했다.
수평적 호텔에 대한 정보 누리집 ‘서촌유희’(yoohee.kr)에서는 좀더 자세한 서촌 여행 정보가 게재돼 있다. ‘7개의 수평적 엘리베이터’(동네 이용 방법)에서부터 각 상점 등에 대한 에세이, 역사 등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도심 숲에서 우리 대부분은 빌딩에서 살고 수직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다. 고급 호텔에서 층층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당, 객실을 이용하는 것도 근사하지만, 서촌이라는 마을의 골목과 골목을 수평적으로 여행하면서 한 지역의 깊이와 진정성이 느껴지는 공간을 경험해보는 건 어떨까.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좋은 도시는 산책하는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서촌의 내재된 힘도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걷고 싶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머무르는 것 자체로 여행이 되는 ‘수평호텔’ 식의 여가 라이프가 서촌에서 시작되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스테이폴리오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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