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사회적기업 ‘안녕 서울’의 대표 윤인주 씨가 서울역을 중심으로 약현성당, 충정각, 손기정기념관 등을 걸어서 돌아보는 ‘걷다보니 서울여행’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시가 개발이 아닌 ‘재생’을 변화 방향으로 잡고 ‘살기 좋고 걷기 좋은 도시’를 표방하면서 다양한 사업들이 펼쳐지고 있다. 도시 관광이나 전통시장 등 지역 산업 특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나 사업체도 생겨난다. 서울역 고가를 걷는 길로 바꾸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서울역 도보투어를 상품화해 최근 창업한 청년기업 ‘안녕 서울’도 그중 하나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직원 2명을 데리고 창업한 사람은 28살의 윤인주 씨다. 건축을 전공하고 서울시 시민협력단체인 ‘고가 산책단’에서 활동하다가 사업가로 변신했다. 청년 실업이 전 사회적 과제인 시절에 취업 대신 아예 회사를 차려 버린 겁없는(?) 젊은이의 꿈과 생각이 궁금했다.
-창업한 지 석 달째라고 들었다. ‘안녕 서울’이란 회사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메인 콘텐츠는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시작한 ‘걷다보니 서울여행: 서울역 도보투어’ 등 도시 여행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와 유관기관, 민간기업 등이 펼치는 도시활성화 프로젝트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가하고 싶다. 지역 조사, 연구 용역, 교육 등이 그 방법이 될 것 같다.”
-창업하게 된 계기는?
“서울역 고가 산책단에서 시민 대상의 산책버스를 운영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독립해서 내 사업으로 해 보면 어떨까 싶어 용기를 냈다.”
윤 대표는 2013년 인천대 도시건축학부를 졸업했다. 친구들과 건축 관련 팟캐스트 만드는 일을 하다가 건축연구소에 들어갔다. 그때 서울시 고가 산책단을 알았고 사업을 시작하는 인연이 되었다. “사회에 나와 보니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 너무 달랐다. 건축은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 주는 일이 아니라 있는 사람에게 더 지어 주는 서비스업이었다. 건축가라는 게 원래 자기 의지가 없는 직업인가 싶었다. 그때 시민활동을 하는 선배에게 건축의 사회적 의미를 추구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도시설계를 전공한 내가 가 볼 만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건축과 도시설계 분야는 다른가? “건축이 건물을 짓는 일이라면 도시설계는 도시 공간과 환경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일이다.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를 종합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역 고가길 개통을 전제로 생각하고 있는 지역활성화 사업은? “서울역 뒤쪽이 서계동과 중림동이다. 서계동은 남대문시장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봉제공장이 많고, 중림동 전통시장은 조선 후기 서울의 대표적인 난전인 칠패시장의 명맥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런 특성을 살려 지역을 활성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업자는 당국과 주민 사이의 매개자이다. 예를 들어 하반기부터는 주민을 상대로 여행 안내인 양성 사업을 시작한다. 2~3년 후에는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다는 계획이다.” -그럼 윤 대표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한 지역에 계속 있어서는 우리도 발전이 없다. 도시는 거주 주민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우린 물꼬를 터 주는 일을 한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영리사업이라기보다는 공공사업 성격이 강하게 느껴진다. 수익성이 있을까? “사실 그게 가장 약점이다.(웃음) 지금은 나와 직원들이 공부하고 경험을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도시의 방향성을 현장에서 연습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는 돈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스스로 자신을 사업가로 생각하나, 시민활동가로 생각하나? “이 분야에서 보니까 시의 지원에 너무 의존하거나 운동적 의미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개인사업자 등록을 냈다. 수입 구조를 바탕으로 일해 보고 싶다. 모토가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벌자’이다. 갈 길도 멀고, 잘 될지도 모르겠지만.” -젊은이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 일자리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어떻게 보나? “그냥 일자리 수만 늘리는 정책은 조삼모사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삶의 의미, 개인의 행복, 이런 걸 중시한다. 취업도 문제지만 회사 구조를 못 견디고 그만두는 선배, 친구들도 많다.” -본인은 지금 상태를 취업했다고 보나? “창업은 취업이 아닌가?(웃음) 우리 세대는 한 직장에 뼈를 묻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은 계속 바뀔 수 있다. 나 역시도 3년 후, 5년 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반대도 많았을 텐데? “아직 나이도 어리고, 두려움도 컸는데 형제들이 많이 응원해 줬다. 스물여덟에 시작하는 게 서른여덟에 시작하는 것보다 낫다, 딸린 식구도 없으니 망해도 지금 망해 보는 게 낫다고 그랬다.” -부모님은 걱정 안 하시던가? “회사를 차린다니까 아버지께서 한숨을 쉬셨다. 어느 날 술 마시고 저를 앉혀놓고 그러셨다. 사장이 힘들면 직원은 더 힘든 법이다. 절대로 월급 밀리지 않게 해라.” 윤 대표의 아버지는 아이엠프(외환 위기) 때 사업을 접었는데, 직원들 퇴직금과 월급 챙겨 주고 나니 수중에 300만 원이 남았다고 했다. 부모는 그때 고향에 내려가 식당을 차려 재기했다고 한다. -직원도 해 보고 사장도 해 본다. 다른 점은? “월급 줄 날이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더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인터뷰 자리 건너편에 앉아 있는 직원을 바라보며 “이런 얘기는 직원이 안 들을 때 해야 하는데” 하며 까르르 웃었다. -결혼 생각은? “대부분 또래들이 적령기로 30대 초반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남자 친구가 오빠뻘 되면 솔직히 부담된다. 나는 아직인데 저쪽은 결혼하려고 만날 거라고 생각하면.” -서울의 안녕을 바라는 도시설계 전공자로서 서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요소는? “역시 한강이 아닐까. 서울이 품고 있는 한강과 산들은 도시설계자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매력적인 자원이다.” -불만은?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이 산다. 자기 땅, 자기 권리라고 너무 많은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익만 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짓고 너무 쉽게 허문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윤 대표는 2013년 인천대 도시건축학부를 졸업했다. 친구들과 건축 관련 팟캐스트 만드는 일을 하다가 건축연구소에 들어갔다. 그때 서울시 고가 산책단을 알았고 사업을 시작하는 인연이 되었다. “사회에 나와 보니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 너무 달랐다. 건축은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 주는 일이 아니라 있는 사람에게 더 지어 주는 서비스업이었다. 건축가라는 게 원래 자기 의지가 없는 직업인가 싶었다. 그때 시민활동을 하는 선배에게 건축의 사회적 의미를 추구해 보라는 조언을 듣고 도시설계를 전공한 내가 가 볼 만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건축과 도시설계 분야는 다른가? “건축이 건물을 짓는 일이라면 도시설계는 도시 공간과 환경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일이다.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를 종합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역 고가길 개통을 전제로 생각하고 있는 지역활성화 사업은? “서울역 뒤쪽이 서계동과 중림동이다. 서계동은 남대문시장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봉제공장이 많고, 중림동 전통시장은 조선 후기 서울의 대표적인 난전인 칠패시장의 명맥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런 특성을 살려 지역을 활성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업자는 당국과 주민 사이의 매개자이다. 예를 들어 하반기부터는 주민을 상대로 여행 안내인 양성 사업을 시작한다. 2~3년 후에는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다는 계획이다.” -그럼 윤 대표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한 지역에 계속 있어서는 우리도 발전이 없다. 도시는 거주 주민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우린 물꼬를 터 주는 일을 한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영리사업이라기보다는 공공사업 성격이 강하게 느껴진다. 수익성이 있을까? “사실 그게 가장 약점이다.(웃음) 지금은 나와 직원들이 공부하고 경험을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추구하는 도시의 방향성을 현장에서 연습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는 돈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스스로 자신을 사업가로 생각하나, 시민활동가로 생각하나? “이 분야에서 보니까 시의 지원에 너무 의존하거나 운동적 의미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개인사업자 등록을 냈다. 수입 구조를 바탕으로 일해 보고 싶다. 모토가 ‘좋은 일 하면서 돈도 벌자’이다. 갈 길도 멀고, 잘 될지도 모르겠지만.” -젊은이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 일자리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어떻게 보나? “그냥 일자리 수만 늘리는 정책은 조삼모사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삶의 의미, 개인의 행복, 이런 걸 중시한다. 취업도 문제지만 회사 구조를 못 견디고 그만두는 선배, 친구들도 많다.” -본인은 지금 상태를 취업했다고 보나? “창업은 취업이 아닌가?(웃음) 우리 세대는 한 직장에 뼈를 묻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은 계속 바뀔 수 있다. 나 역시도 3년 후, 5년 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반대도 많았을 텐데? “아직 나이도 어리고, 두려움도 컸는데 형제들이 많이 응원해 줬다. 스물여덟에 시작하는 게 서른여덟에 시작하는 것보다 낫다, 딸린 식구도 없으니 망해도 지금 망해 보는 게 낫다고 그랬다.” -부모님은 걱정 안 하시던가? “회사를 차린다니까 아버지께서 한숨을 쉬셨다. 어느 날 술 마시고 저를 앉혀놓고 그러셨다. 사장이 힘들면 직원은 더 힘든 법이다. 절대로 월급 밀리지 않게 해라.” 윤 대표의 아버지는 아이엠프(외환 위기) 때 사업을 접었는데, 직원들 퇴직금과 월급 챙겨 주고 나니 수중에 300만 원이 남았다고 했다. 부모는 그때 고향에 내려가 식당을 차려 재기했다고 한다. -직원도 해 보고 사장도 해 본다. 다른 점은? “월급 줄 날이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더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인터뷰 자리 건너편에 앉아 있는 직원을 바라보며 “이런 얘기는 직원이 안 들을 때 해야 하는데” 하며 까르르 웃었다. -결혼 생각은? “대부분 또래들이 적령기로 30대 초반을 생각하는 것 같다. 남자 친구가 오빠뻘 되면 솔직히 부담된다. 나는 아직인데 저쪽은 결혼하려고 만날 거라고 생각하면.” -서울의 안녕을 바라는 도시설계 전공자로서 서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요소는? “역시 한강이 아닐까. 서울이 품고 있는 한강과 산들은 도시설계자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매력적인 자원이다.” -불만은?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이 산다. 자기 땅, 자기 권리라고 너무 많은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익만 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짓고 너무 쉽게 허문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