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대신 예술 들어갑니다"

서울 사용설명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등록 : 2016-06-30 15:17 수정 : 2016-07-0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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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커스를 배우는 강승우(오른쪽) 씨가, 지난달 21일 오후 광진구 광장동 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전문가 양성 과정에 함께 참여한 동생 은나 씨의 자세를 살펴보고 있다. 장철규 기자

“회전할 때는 자기 체중을 먼저 보낸다고 생각하고, 위쪽 손에 70% 아래쪽 손에 30% 정도로 힘을 주고 천을 쥐어야 미끄러지지 않아요.” 공중곡예 ‘실크’ 기초과정을 지도하는 차정호 강사가 3층 높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늘어진 실크천을 오르느라 안간힘을 쓰는 교육생들에게 연신 요령을 일러 준다.  

거리예술창작센터 ‘서커스 전문가 양성과정 Jumping UP’ 워크숍 모습이다. 무용,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교육생 12명은 서커스 기술을 배우느라 열심이다. 무용을 전공해 몸이 유연한 참가자도 처음에는 요령이 부족해 천에서 떨어지기 일쑤였다. 쓰지 않던 근육을 쓰다 보니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강사의 지도와 시범을 곧잘 따라 하는 교육생이 생겨나고, 간간이 웃음과 격려가 섞여 조금은 여유를 찾은 모습이다. 직업과 나이, 성별은 제각각이지만 교육에 임하는 이들의 자세와 눈빛은 하나같았다.

취수장 시설을 그대로 사용

연극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하는 강승우 씨는 지난해 ‘거리예술창작센터’ 워크숍에서 현대 서커스를 처음 알게 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교육에 참가한 그는 “서커스를 하면서 제가 느끼는 신체의 한계를 벗어난 자유로움을 관객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현대 서커스의 매력을 말한다. 그는 서커스를 전문적으로 배우려고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물 대신 예술 들어갑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과거 40년간 서울 시민에게 물을 공급하던 구의취수장에서 지난해 4월 태어났다. 서울 시민이 거리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공연을 계발하고, 그 중심이 되는 전문 예술인을 길러내는 것이 센터의 목표다. 센터가 지금 하는 일은 거리예술과 서커스 제작부터 연습, 교육, 배급 등 창작부터 유통까지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거리예술창작센터는 취수장의 시설과 공간을 그대로 살려 활용하고 있다. 총면적 5만㎡에 높이가 15m에 이르는 제1취수장은 대형 작품 연습과 세트를 제작할 수 있는 메인 홀로 쓰인다. 실내 연습실과 교육 공간, 영상제작실은 제2취수장에 마련했다. 야외 공연 리허설을 할 수 있는 야외 마당도 있다. 염소(CI) 투입실은 목·철공실 등 제작소로, 기존 관사 시설은 예술가 레지던시 시설로 꾸밀 예정이다.  

개관 첫해인 지난해에는 창작지원사업, 전문가 양성, 국제 교류와 네트워크, 시민 대상 예술 교육 같은 사업을 벌여 예술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올해에는 지원 사업 분야에 서커스를 추가했다. 작품들을 공모하고 선정해서, 거리예술 창작 7개, 서커스 창작 2개를 지원하고 있다. 하반기에 할 ‘2016 거리예술 비평 아카데미’는 국내 첫 비평가 양성 프로그램으로 짜였다. 8~10월에 열 아카데미의 교육 내용은 △거리예술 장르의 이해와 분석 △비평적 글쓰기와 현장 학습 △매체 활용과 자료집 발간 △거리예술 비평가와 전문가의 멘토링 등으로 구성했다. 장기적으로 비평을 통해 거리 예술의 품격과 질을 높인다는 계획 아래 탄생한 프로그램이다.    

거리예술에 반드시 필요한 거점 기관  

거리예술창작센터의 출발점은 2010년 하이서울페스티벌이다. 당시 첫선을 보인 거리예술 공연에 서울시가 관심을 가졌고 2012년 4월 프로젝트가 시작돼 개관까지 3년이 걸렸다. 거리예술창작센터 조동희 팀장은 “해외 축제에 가 보면 거리예술 공연을 준비하는 거점 공간이 반드시 있어요. 프랑스는 80년대 거리예술 축제가 많이 생기고, 중앙·지방 정부의 문화정책, 축제와 예술단체의 요구가 맞물려 90년대에 이런 공간들이 많이 생겼어요. 해외에서는 거리예술과 서커스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하고, 공공에서 충분히 지원할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큰 흐름이에요”라며 거리예술창작센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거리예술 축제가 생겨났다. 올해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서울거리예술축제’로 이름을 바꿀 만큼 성장하고 있지만, 거리예술 창작을 위한 환경이나 시설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구의취수장을 성공적으로 탈바꿈시킨 거리예술창작센터는 앞으로 축제에서 시민과 만날 거리예술 작품의 베이스캠프로서 단단히 몫을 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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