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봄은 이 맛과 함께 온다

땅과 바다의 환상궁합 '도다리쑥국' 제철

등록 : 2016-03-31 11:02 수정 : 2016-03-3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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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
욕지도 선착장에 옷가방 하나 달랑 들고 우리 가족이 내리니 해질녘이었다. 우리를 보고 할머니 한 분께서 다가오셨다. “자고 갈려?” “저녁은?” “도다리쑥국 먹어볼려?” 세 마디 만에 낚여 그날 밤 옛날 선술집에서나 나옴직한 동그란 양은상에 도다리쑥국 한 상을 받았다. 할아버지께서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오시는 동안 할머니는 바다, 마을, 밭, 산으로 분할된 섬 중 마을과 밭 경계쯤에서 쑥을 캐오셨단다. 그날은 운이 좋아 도다리를 잡으셨다고 좋아하셨다.

아직 찬바람이 겨울의 꼬리를 붙들고 있는 요맘때쯤이었다. 향긋한 쑥 향기와 함께 연한 도다리살을 아이들 입에 발라주며 “여보, 이런 삶도 괜찮겠다. 당신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나는 쑥을 캐고 우리 은퇴하고 여기 와서 살까?” 철없는 우리의 대화에 낚싯대를 손질하시던 할아버지의 어이없는 실소가 기억이 난다.

 

통영의 봄은 도다리쑥국으로 시작된다. 봄철 남녘에서는 1시간쯤 차를 타고 나가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갓 잡아온 도다리와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을 갓 캐와 끓여낸 욕지도 할머니의 도다리쑥국은 아무리 소문난 맛집이라도 흉내낼 수 없을 터이다. 왜 그 맛이 아니냐고 타박하며 올해도 어김없이 도다리쑥국 노래를 부르는 남편을 위해 수산시장에 가 보지만 모든 어류가 그러하듯 진짜 봄도다리를 구별하는 건 쉽지 않다.

 

도다리는 몸 모양이 납작하고 마름모꼴에 가까운 가자미과에 속하는 물고기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출현하고 도다리 하면 통영이라는 연관검색어가 있을 정도로 남해안에서 많이 잡힌다. 겨우내 산란을 끝낸 도다리가 한창 살이 오를 3~4월이 도다리의 제철이며 5월이 넘어가면 회로 즐기는 경우가 많다. 광어(넙치과)와의 구별이 쉽지 않아 광어로 속여서 판다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광어는 70~80%가 양식이고 도다리는 성장하는 데 3~4년이 걸려 양식이 쉽지 않아 자연산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도 옛날얘기고 지금은 중국산 양식 돌가자미가 봄도다리라는 이름으로 미식가들의 눈을 속이고 있다. 광어와의 구분은 좌광우도다. 말 그대로 입을 기준으로 광어는 눈이 왼쪽으로 몰렸고 도다리는 눈이 오른쪽으로 몰렸다는 말이다. 또다른 구별법은 광어는 입이 크고 이빨이 있고 도다리는 입이 작고 이빨이 없다.

 


도다리 하면 쑥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거의 같은 시기에 제철을 만난 땅과 바다의 최고의 궁합이다. 쑥은 13세기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단군신화에 등장하며 우리 민족과 가장 오래 함께한 나물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폐허가 된 도시에 가장 먼저 자란 것도 쑥이었다. ‘쑥쑥 자란다’는 말처럼 쑥의 강인하고 놀라운 생명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쑥을 이용한 음식이나 생활용품은 무궁무진하다. 봄이면 새순으로 쑥국, 쑥떡, 쑥밥, 쑥버무리를 만들어 먹고 말려서는 쑥환, 쑥좌욕, 쑥사우나, 쑥비누 등 미용이나 약용으로 사용한다.

 

도다리는 여느 흰살생선과 마찬가지로 담백한 맛을 지닌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다. 타우린과 비타민A, 칼륨이 풍부한 생선으로 소화가 잘돼 환자식으로 인기가 높다. 쑥은 한방에서 강장, 이뇨, 해열, 진통, 해독, 소염, 월경불순 등에 탁월하다 하며 여성질환과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또한 다른 나물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고 비타민A가 특히 풍부한 알칼리 식품이다. 땅과 바다로 극명하게 나누어진 두 가지의 음식 재료가 이렇게 비슷할 수도 있다. 선조들의 탁월한 음식궁합에 찬사를 보낸다.

 

왠지 나른한 봄, 뜨끈한 도다리쑥국 한 그릇은 몸 안 가득 땅의 기운과 바다의 기운을 충만하게 해줄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봄이다.

손연정 아이쿱 공식 블로그 ‘협동으로 랄랄라’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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