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 문학기행

서른두 살 짧은 생애, 숱한 노래로 마음을 적시고…

배재학당~남산~왕십리로 이어진 김소월 시인의 길

등록 : 2016-07-21 15:55 수정 : 2016-07-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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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서른두 해 짧은 인생, 그중 10여 년 동안 시인으로 살았던 김소월. 그가 생활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해 남산과 왕십리에 세워진 시비를 돌아본다. 장맛비 내리는 날 왕십리역 앞을 달려가는 사람들의 일상 앞에 소월의 시가 있었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김소월은 1902년에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1934년에 세상을 뜬다. 짧았던 그의 생애만큼 서울에서 살았던 날도 짧다. 소월은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1923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관동대지진을 겪은 뒤 서울로 돌아온다. 서울에서 몇 달 지내다 1924년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1925년 그의 첫 시집인 <진달래꽃>을 낸다.  

짧았던 서울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서울시 중구 정동의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이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은 1916년에 준공되어, 1984년 배재중·고등학교가 강동구 고덕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동교사(東校舍)로 쓰였다. 소월이 1922년 배재고등보통학교로 편입했으니까 그가 학교를 다닐 때도 있었던 건물이다.  

박물관 전시실에 1920~1930년대 배재학당 학생들이 실제로 쓰던 책상이 있다. 책상 옆에는 ‘소월의 방’이라는 문패를 붙이고 작은 공간을 꾸몄다. 창문 앞에 놓인 책상과 의자가 전부지만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학생 김소월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으로 나뉜 느낌이다.  

소월은 배재고등보통학교로 편입하기 전 1920년에 ‘낭인의 봄’ ‘그리워’ 등을 잡지 <창조>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쓴 시 중 7편을 교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서민들 마음을 위로하는 시  

배재학당역사박물관 한쪽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책이 한 권 진열됐다. 1925년 매문사에서 간행한 소월의 첫 시집이다. 표지에는 ‘진달내꽃’이라고 제목을 적고 그 아래 꽃을 그려 넣었다.  

소월의 시를 읽으면 가슴속 깊은 곳이 뜨거워진다. 나도 모르게 참고 있었던, 억눌렸던 감정이 가슴을 녹이며 역류한다. 그렇게 한바탕 뒤집어진 마음은 쟁기로 갈아엎은 논밭, 객토 끝난 새 땅이 된다. 그래야 녹록지 않은 세상, 사는 일을 견디며 사람처럼 살 수 있겠다.  

시대가 변해도 그의 시는 서민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시를 잘 모르는 사람,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그의 시 한 편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노래로 만들어진 그의 시가 한두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이야기 들어라//나는 어쩌면 생겨나와/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랴?” -김소월의 시 ‘부모’ 전문

   

유주용을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부른 ‘부모’를 비롯해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으로 시작하는 ‘엄마야 누나야’,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면은…’으로 시작하는 ‘옛이야기’,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여진 이름이어…’의 ‘초혼’,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의 ‘못잊어’,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의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귀로 들었노라…’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그리고 유명한 ‘산유화’ ‘진달래꽃’ 등 김소월의 많은 시가 노래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작 김소월은 자신의 시에 위로 받지 못했나 보다. 1926년 고향에 <동아일보> 지국을 냈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 뒤로도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했다. 시와도 멀어지게 된다. 결국 1934년 그는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소월이 남긴 시 가운데 서울에 관련된 ‘서울 밤’이라는 시가 있다. 그는 이 시에서도 슬픈 정서를 드러낸다. 남들은 서울의 밤이 좋고 밤 거리가 좋다고 하는데 정작 시 속 화자의 마음속에서는 밤거리의 푸른 전등, 붉은 전등이 흐느껴 울고 있다.  

김소월의 시비  

그가 떠난 세상, 그가 잠시 살았던 서울에 후세 사람들은 그의 시비를 세웠다. 남산도서관 옆에 그의 시 ‘산유화’를 새긴 시비가 있다. 시비 주변에는 꽃이 피어난다. 그의 시에서처럼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지 않고 ‘봄 여름 가을 없이’ 꽃이 피어난다.  

왕십리역 6-1번 출구 앞 광장에도 그의 시비가 있다. 그의 시 ‘왕십리’를 새긴 시비 옆에 흉상도 있다. 지하철 2호선, 경의중앙선, 분당선이 교차하는 왕십리역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 붐빈다.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노래가 된 소월의 시 한 구절을 마음속으로라도 흥얼거리며 지나쳤을 것 같다. ※ 글에 실린 김소월의 시 구절들은 2012년 작가세계에서 펴낸 시집 <진달래꽃>에서 발췌했습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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