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서울역의 폐주차램프, 20년 만에 ‘예술의 날개’ 단다

서울시, 7개의 공공미술 작품 품은 ‘도킹 서울’ 프로젝트 발표

등록 : 2022-03-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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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만들어져 2004년 서울역 민자역사 이전과 함께 사용되지 않는 옛 서울역 주차램프가 지난해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은 미술관’ 중 ‘지역단위 공공미술 작품 구현’ 사업에 선정됐다. 이에 따라 이 폐주차램프는 오는 6월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라이트아트, 메타버스가 결합한 새로운 공공미술 명소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1989년 옥상주차장 이용 위해 만들어

이중 나선형으로 분리된 독특한 구조

2004년 민자역사 문 열면서 폐쇄된 뒤

‘서울은 미술관’ 사업의 하나로 변신 중

천문·물리학자 참여, 작가 상상력 넓혀

설치미술, 라이트아트, 메타버스 결합

시민과 함께 만드는 ‘참여형 작품’ 포함


“만리동-서울역 축 문화예술 중심 될 것”

20년 가까이 쓰이지 않던 옛 서울역 주차램프가 7개의 공공미술 작품을 품고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시작한다.

서울시는 지난 2월24일 “서울역 주차램프를 공공미술 작품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며 “이는 서울시가 2016년부터 추진 중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 중 ‘지역단위 공공미술 작품 구현’ 사업의 하나”라고 밝혔다. ‘지역단위 공공미술 작품 구현’ 사업은 특정 지역에 있는 소외된 도시자원을 대상으로 지역밀착형 작품 전시와 프로그램 운영을 함으로써,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히는 사업이다. 2017년 선정된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사업이 출발점이었다.

옛 서울역 주차램프는 1989년부터 서울역 옥상주차장으로 차량을 이동시키기 위해 만든 시설이다. 당시 서울시는 심각한 주차난을 겪고 있었다. 1987년 말 현재 서울시 자동차대수는 60만 대를 넘은 상태이며, 1989년에는 99만 대로 100만 대에 육박했다. 하지만 1987년 현재 서울시 주차시설은 19만여 대에 불과했으며, 특히 도심 주차시설은 4만여 대에 그쳤다. 이는 당시 서울시가 추정한 도심 필요주차구역 5만2천 대보다 1만2천 대나 작은 수치였다. 이에 따라 ‘골목길까지 차량 ‘점령’, 소방차 출동 막힐 판, 몇 바퀴 맴돌다 아예 거리에 세워놓기도’(<동아일보> 1987년 10월1일치) 등 주차난 기사가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서울역 주차램프는 이런 배경을 안고 탄생했지만, 이후 서울 시내 주차 공간이 확대되고 2004년 서울역 민자역사가 개장하면서 더는 사용하지 않고 폐쇄된 채 현재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2020년 서울역과 만리동, 서울역사의 동선을 연결하는 공중보행교와 옥상공원을 조성하면서 발견한 이 시설을 지역일대를 연결하는 예술공간으로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주차난 해소를 위해 설치된 서울역 주차램프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시설이다. 무엇보다 주차램프는 안전이 제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차램프는 법률로 규정한 ‘안전 조건’들에 맞게 만들어졌다. 주차램프의 물리적 특징을 규정해놓은 ‘주차장법 시행규칙’ 제6조를 보면 곡선 부분은 자동차가 6m 이상의 내변반경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경사로의 차로 너비는 곡선형인 경우에는 3.6m 이상으로 하며 경사로의 종단경사도는 직선 부분에서는 17%를 초과하여서는 아니 되며, 곡선 부분에서는 14%를 초과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술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공학적 숫자들로 이루어진 느낌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지역단위 공공미술 작품구현’ 프로젝트는 이런 ‘숫자 덩어리 시설물’ 등을 멋진 예술작품으로 탈바꿈시켜왔다. 첫 작품인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은 면적 2100평의 낡은 지하철 역사를 지하 1층 메인홀은 ‘빛’, 지하 4층 대합실은 ‘숲’, 지하 5층 승강장은 ‘땅’을 주제로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면서, 시민들에게 일상 속 휴식을 주는 정원으로 재탄생시켰다.

두 번째 작품인 ‘홍제유연’도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유진상가의 지하 250m 구간에 8개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50년간 버려졌던 공간을 시민의 예술놀이터로 승화시켰다.

세 번째 작품인 ‘달빛노들’은 한강 노들섬에 방치돼 있던 선착장에 보름달 모양 12m 원형 구조물을 세움으로써, 사람들이 찾지 않던 장소를 예술공간으로 변신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버려진 옛 서울역 주차램프 또한 지난해 서울시의 네 번째 ‘지역단위 공공미술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오르고 내리는 두 개의 나선형 동선이 약 20m 깊이로 감싸 안은 폐주차램프의 독특한 공간 분위기에 다양한 분야 아티스트의 상상력을 더할 것”이라며 “오는 6월 설치미술, 미디어아트, 라이트아트, 메타버스가 결합한 새로운 공공미술 명소를 완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는 시민들의 쾌적한 관람환경 조성을 위해 3월부터 본격적인 현장정비를 하고, 6월까지 전체 작품설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현장정비는 지금 램프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최소화하고, 현재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램프의 동선을 연결해 현장을 찾은 시민들이 양쪽 램프를 고루 감상할 수 있도록 관람 동선을 정비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을 ‘도킹 서울’로 정했다. ‘도킹 서울’은 외지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사람을 맞이하는 접점인 서울역의 특성을 살리면서, 20년간 잠자고 있던 주차램프가 가상현실을 포함한 공공미술 작품들을 만나 ‘새로운 우주’로 연결된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도킹은 우주선이나 배 등의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다.

‘도킹 서울’에서 도킹의 의미는 현실과 가상, 서울과 우주, 예술과 공간의 경계가 만나면서 예술 플랫폼의 의미로 확장된다.

모두 7개 작품이 포함된 ‘도킹 서울’ 프로젝트는 전시 기획과 작품 구체화 과정에 천문학자와 물리학자가 함께 참여해 작가들의 상상지평을 넓혔다는 점도 큰 특징을 이룬다. 이를 통해 물리학적 원리와 천문학적 개념을 작품에 녹임으로써,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완성된 작품을 구현할 예정이다. ‘도킹 서울’에는 또 현장에 설치되는 작품뿐 아니라 현장과 닮은 가상세계인 메타버스 갤러리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도킹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7개 작품 중 하나인 ‘나의 우주색’ 적용 예. 이 프로젝트는 시민들이 바라본 하늘의 모습을 찍어 ‘나의 우주색 이름’과 함께 보내면, 작가가 그 속에 담긴 다양한 하늘의 색을 추출해 라이트아트 작품으로 완성하게 된다.

특히 7개 작품 중 하나인 ‘나의 우주색’은 시민과 함께 만드는 참여형 작품이다. 시민들이 바라본 하늘의 모습을 찍어 ‘나의 우주색 이름’과 함께 보내면, 작가는 그 속에 담긴 다양한 하늘의 색을 추출해 시민과 만든 ‘우리의 우주 빛깔’을 라이트아트 작품으로 완성해 전시할 예정이다.

시민들이 보내준 우주의 이름 중 80개를 선정해 참여한 시민의 아이디와 함께 작명한 우주색 이름을 작품에 새긴다. 작가가 추출한 빛깔들은 라이트아트 작품으로 구성돼 램프 속 35m 나선형 길을 따라 구현될 예정이다.

‘나의 우주색’ 시민참여 프로그램은 3월 한달간 진행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내 손 안에 서울’과 ‘서울시 문화포털’을 비롯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서울은 미술관’을 검색해 ‘도킹 서울’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서울시 소통포털 ‘내 손안에 서울’에 올라온 ‘나의 우주색’ 시민참여 프로그램 포스터. 이밖에도 ‘서울시 문화포털’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서울은 미술관’을 검색해 ‘도킹 서울’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한편, 서울역 뒤편 만리동 일대에는 ‘서울은 미술관’ 사업으로 조성된 공공미술 작품 ‘윤슬’과 ‘서울로미디어캔버스’가 있다. 시는 이번 ‘도킹 서울’ 작품과 주변 일대 예술작품들이 연결되면서 만리동 일대가 걸어서 감상할 수 있는 문화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리동 광장과 서울로7017, 서울역을 잇는 중심 공간으로 밤과 낮 모두 문화예술 장소로서 서울역 일대가 열린 미술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주용태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도킹 서울은 지역의 새로운 예술 명소로, 디지털과 다양한 공공미술 장르가 결합한 새로운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시민과 함께하는 공공미술 작품이 완성도 있게 선보일 수 있도록 공모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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