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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의 가야금, 북한의 가야금, 남한의 가야금을 몸으로 익힌 유일한 가야금 연주자인 박순아 연주자가 오는 9일 인사동에 있는 카페 ‘열시꽃’에 초대받았다. 박 연주자는 ‘열시꽃’이 새로 시작하는 ‘아주 특별한 베트남 식탁’(아특식)에 문화 손님으로 참여해 조선 시대 사랑방에 울렸던 가야금 연주를 관객 15명에게 들려줄 계획이다. 사진은 박연주자가 지난해 9월29일 돈화문국악당에서 열린 공연 ‘세개의 선물’에서 25현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 박순아 제공
‘북한 가야금’과 ‘남한 가야금’ 함께 익힌
소수자로 살아온 재일동포 3세 연주자
베트남 평화활동가들의 꿈을 담은 카페
열시꽃의 ‘아주 특별한 식탁’에 초대돼
15명 관객만 참석하는 한옥 관훈재는
확성기 없는 ‘사랑방 공연’ 같은 현장
옛사람들 느꼈을 가야금 음감 느끼며
디아스포라 감성에 ‘평화 메시지’도 담아 ‘가장 작은 공연장에서 가장 큰 꿈을 연주한다.’ 오는 9일 저녁 인사동에 위치한 카페 ‘열시꽃’에서 열리는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54)씨의 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박 연주자는 이날 열시꽃이 자리잡은 한옥 관훈재 2층에서 모두 15명의 관객을 위해 연주한다. 관훈재는 2012년 서울 사대문 안에 처음으로 지어진 2층 한옥이다. 열시꽃은 이 관훈재에서 쑥차 등 전통차와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 등을 함께 제공하는 카페 겸 문화공간이다. 전통을 지키되 새로움을 더했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 등 베트남 평화운동을 해온 이들이 함께 만든 열시꽃은 이번에 ‘아주 특별한 베트남 식탁’(아특식)이라는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었다. 베트남에서 직접 공수해온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나누면서, 좋은 문화공연을 공유하고 함께 ‘평화의 꿈’을 키워가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그 첫 번째 ‘문화 손님’이 박순아 연주자다. 재일동포 3세인 박 연주자는 국내 최고 수준의 가야금 연주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박 연주자는 2019년 연말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 ‘노쓰코리아 가야금’ 등을 비롯해 국내외의 많은 무대공연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런 그가 열시꽃이라는 작은 카페 겸 문화공간을 찾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오롯이 “가야금의 음악 세계를 넓힐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넓힘은 다시 ‘가야금 음 체험의 넓힘’과 ‘가야금 연주가 전하는 메시지의 넓힘’으로 나뉜다. 사실 박 연주자는 이미 ‘어떤 가야금 연주자도 경험하지 못한 풍부한 가야금 음을 경험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민족학교에 다니던 10살 때 학교 소조활동으로 처음 가야금과 만났다. 일본에서 차별받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던 그는 금세 이 ‘민족악기’가 내는 소리에 빠져버렸다. 그는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2학년 때인 1985년 ‘통신교육생’으로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진학했다. 통신교육생은 학기 중에는 ‘통신’으로 수업을 듣다가, 방학 때면 평양을 방문해 대면교육을 받는 제도다. 박 연주자가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북한에서 개량한 ‘21현 가야금’이다. 21현 가야금은 한국 전통의 5음계 음을 내던 ‘12현 가야금’을 현대 음악의 바탕인 7음계 음을 낼 수 있도록 만든 악기다. 북한은 이를 통해 ‘왕과 귀족을 위한 악기였던 가야금을 인민을 위한 악기로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박 연주자는 이후 일본에서 도쿄 조선대학교를 마친 뒤 금강산가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2006년 한국 국적을 얻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전통예술원에서 공부했다. 일반 대학원의 석사에 해당하는 과정이다. 한국 국적을 얻기 이전까지 그는 ‘조선적’이었다. ‘조선적’은 사실 무국적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식민지배의 편의를 위해 붙여놓은 것으로 ‘식민지 조선 출신’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대만적’은 ‘식민지 대만 출신’을 뜻한다. 박 연주자와 그 가족이 무국적인 이 ‘조선적’을 유지했던 것은 ‘통일된 조국의 국적을 갖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연주자는 그 소망을 접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더 큰 열망 때문이다. 바로 한국 전통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박 연주자는 북한의 개량 가야금은 ‘인민화’에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전통 가야금이 가진 ‘농현’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왼손으로 가야금 줄을 짚고 강약을 조절하며 본래의 음 이외에 여러 가지 음을 내는 농현은 12줄 전통 가야금 연주의 고갱이다. 박 연주자는 이 농현이 살아 있는 전통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한국 국적을 얻고 한국을 찾았다. 그에게 ‘먼 미래의 민족 통일’보다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남북 가야금 소리의 통합’이라는 꿈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재일의 가야금, 북한의 가야금, 남한의 가야금을 몸으로 익힌 유일한 연주자가 됐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택한 ‘작은 통일’이 이후 ‘큰 통일’을 이루는 데 하나의 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열시꽃 공연은 그런 그에게 가야금 체험의 확장을 다시 ‘유혹’했다고 한다. “열시꽃 공연이 ‘이제는 경험하기 힘든 조선시대 사랑방 연주에 가깝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재의 가야금 연주는 큰 무대에서 좋은 음향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관객이 체감하는 음은 조선시대 사랑방에서 음향시설 없이 이루어졌던 가야금 연주의 음과는 또 다르다. 조선시대 남성들의 공간이었던 사랑방에서는 바깥주인이 손님을 청하여 음식과 술을 대접하며 담소를 즐기는 ‘곡회’(曲會)가 자주 열렸다. 이 곡회에서 주인이나 손님이 가야금을 타는 일 또한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예전 사랑방에서 진행됐던 연주처럼, 연주자의 호흡까지 느끼면서 가야금의 자연 소리를 듣는 경험은 참 신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열시꽃이 위치한 관훈재는 한옥입니다. 나무로 지은 관훈재가 살아 숨 쉬는 공기를 내뱉어 가야금 음을 더욱 살아 숨 쉬게 만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관객에게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가야금 체험’을 선사하는 일이고, 박 연주자 자신도 관객과 호흡하면서 그 ‘체험의 새로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감성에 ‘평화 메시지’도 담아 ‘가장 작은 공연장에서 가장 큰 꿈을 연주한다.’ 오는 9일 저녁 인사동에 위치한 카페 ‘열시꽃’에서 열리는 가야금 연주자 박순아(54)씨의 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박 연주자는 이날 열시꽃이 자리잡은 한옥 관훈재 2층에서 모두 15명의 관객을 위해 연주한다. 관훈재는 2012년 서울 사대문 안에 처음으로 지어진 2층 한옥이다. 열시꽃은 이 관훈재에서 쑥차 등 전통차와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 등을 함께 제공하는 카페 겸 문화공간이다. 전통을 지키되 새로움을 더했다.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 등 베트남 평화운동을 해온 이들이 함께 만든 열시꽃은 이번에 ‘아주 특별한 베트남 식탁’(아특식)이라는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었다. 베트남에서 직접 공수해온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나누면서, 좋은 문화공연을 공유하고 함께 ‘평화의 꿈’을 키워가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그 첫 번째 ‘문화 손님’이 박순아 연주자다. 재일동포 3세인 박 연주자는 국내 최고 수준의 가야금 연주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박 연주자는 2019년 연말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린 ‘노쓰코리아 가야금’ 등을 비롯해 국내외의 많은 무대공연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런 그가 열시꽃이라는 작은 카페 겸 문화공간을 찾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오롯이 “가야금의 음악 세계를 넓힐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넓힘은 다시 ‘가야금 음 체험의 넓힘’과 ‘가야금 연주가 전하는 메시지의 넓힘’으로 나뉜다. 사실 박 연주자는 이미 ‘어떤 가야금 연주자도 경험하지 못한 풍부한 가야금 음을 경험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민족학교에 다니던 10살 때 학교 소조활동으로 처음 가야금과 만났다. 일본에서 차별받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던 그는 금세 이 ‘민족악기’가 내는 소리에 빠져버렸다. 그는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2학년 때인 1985년 ‘통신교육생’으로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진학했다. 통신교육생은 학기 중에는 ‘통신’으로 수업을 듣다가, 방학 때면 평양을 방문해 대면교육을 받는 제도다. 박 연주자가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북한에서 개량한 ‘21현 가야금’이다. 21현 가야금은 한국 전통의 5음계 음을 내던 ‘12현 가야금’을 현대 음악의 바탕인 7음계 음을 낼 수 있도록 만든 악기다. 북한은 이를 통해 ‘왕과 귀족을 위한 악기였던 가야금을 인민을 위한 악기로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박 연주자는 이후 일본에서 도쿄 조선대학교를 마친 뒤 금강산가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2006년 한국 국적을 얻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전통예술원에서 공부했다. 일반 대학원의 석사에 해당하는 과정이다. 한국 국적을 얻기 이전까지 그는 ‘조선적’이었다. ‘조선적’은 사실 무국적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식민지배의 편의를 위해 붙여놓은 것으로 ‘식민지 조선 출신’이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대만적’은 ‘식민지 대만 출신’을 뜻한다. 박 연주자와 그 가족이 무국적인 이 ‘조선적’을 유지했던 것은 ‘통일된 조국의 국적을 갖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연주자는 그 소망을 접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더 큰 열망 때문이다. 바로 한국 전통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박 연주자는 북한의 개량 가야금은 ‘인민화’에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전통 가야금이 가진 ‘농현’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왼손으로 가야금 줄을 짚고 강약을 조절하며 본래의 음 이외에 여러 가지 음을 내는 농현은 12줄 전통 가야금 연주의 고갱이다. 박 연주자는 이 농현이 살아 있는 전통 가야금을 배우기 위해 한국 국적을 얻고 한국을 찾았다. 그에게 ‘먼 미래의 민족 통일’보다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남북 가야금 소리의 통합’이라는 꿈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재일의 가야금, 북한의 가야금, 남한의 가야금을 몸으로 익힌 유일한 연주자가 됐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택한 ‘작은 통일’이 이후 ‘큰 통일’을 이루는 데 하나의 거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열시꽃 공연은 그런 그에게 가야금 체험의 확장을 다시 ‘유혹’했다고 한다. “열시꽃 공연이 ‘이제는 경험하기 힘든 조선시대 사랑방 연주에 가깝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재의 가야금 연주는 큰 무대에서 좋은 음향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관객이 체감하는 음은 조선시대 사랑방에서 음향시설 없이 이루어졌던 가야금 연주의 음과는 또 다르다. 조선시대 남성들의 공간이었던 사랑방에서는 바깥주인이 손님을 청하여 음식과 술을 대접하며 담소를 즐기는 ‘곡회’(曲會)가 자주 열렸다. 이 곡회에서 주인이나 손님이 가야금을 타는 일 또한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예전 사랑방에서 진행됐던 연주처럼, 연주자의 호흡까지 느끼면서 가야금의 자연 소리를 듣는 경험은 참 신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열시꽃이 위치한 관훈재는 한옥입니다. 나무로 지은 관훈재가 살아 숨 쉬는 공기를 내뱉어 가야금 음을 더욱 살아 숨 쉬게 만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관객에게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가야금 체험’을 선사하는 일이고, 박 연주자 자신도 관객과 호흡하면서 그 ‘체험의 새로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박순아 연주자가 지난 5월29일 베트남 평화운동을 해온 이들이 함께 만든 ‘열시꽃’이 자리잡은 ‘2층 한옥 관훈재’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박 연주자는 이번 열시꽃 공연을 통해 “앞으로 디아스포라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평화 메시지를 전하는 데 더욱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하지만 박 연주자가 이번 공연에서 더욱 애착을 가진 것은 ‘음악이 주는 메시지의 넓힘’이다. 박 연주자는 2006년 남한에 온 이후, 2개의 음반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2012년에 내놓은 <인터비잉>과 2019년에 선보인 <노쓰코리아 가야금>이 그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함께 존재함(Inter Being)’”이라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열쇳말로 한 <인터비잉>에서 그는 소외되지 않은 삶을 꿈꿨고, <노쓰코리아 가야금>에서는 북한에서 가야금을 배우던 시절에 많이 불렸던 북한 음악을 가야금으로 연주했다. 그 속에 남북을 모두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곳에서 속하지 못하는 ‘디아스포라 박순아의 삶’을 담았다.
박 연주자는 이번 열시꽃 공연을 통해 앞으로 “이런 디아스포라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더욱 힘쓸 것”이라고 말한다.
“가야금 연주는 연주자가 경험했던 삶의 이야기를 가야금 선율로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은 그 소리에 묻어나는 연주자의 삶을 느끼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상상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저도 한 음을 내더라도 항상 제 삶에 바탕을 두면서 ‘책임과 도전의식’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념에 의한 전쟁을 경험한 나라’, 그리고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쟁 중 민간인 학살을 경험한 나라’ 베트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아특식’ 자리이기에 그가 전하고자 하는 ‘디아스포라적 감수성’이 주는 울림은 더욱 커질 것 같다.
박 연주자는 이날 30분 동안 4~5곡을 선사할 예정이다. 우선 12현 가야금으로 판소리 ‘적벽가’ 중 한 부분을 들려주고, 이어 25현 가야금으로 전통 산조 가락을 ‘박순아식’으로 다시 해석한 ‘흐트러진 가락’을 연주한다.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이 사랑하는 평화의 노래 ‘어머니’를 가야금 노래로 편곡해 전해준다.
관객은 그날 작은 한옥을 가득 채우는 ‘평화의 전도사 박순아’라는 커다란 꿈을, 가야금 선율 속에서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 같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