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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잡러로 일하는 박초롱(왼쪽), 이다혜씨가 5월19일 마포구 동교동 공유 오피스에서 팟캐스트 진행안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혜씨, 기획사일과 잡지 제작, 책 출간
초롱씨, 출판사 열고 ‘딴짓매거진’ 펴내
에세이집도 여러 권 내고 작가로 활동
수입보다는 일하는 방식 맞아서 택해
‘일하는 시간·공간·양 조절 가능’ 장점
“예전 방식으로 다시 못 돌아갈 것 같아”
엔잡러 힘들게 하는 현실엔 안타까움
원고료 안 오르고 사회보험 등도 안 돼 “개인 사업자에 대한 이해 높아졌으면” ‘엔(N)잡’, 그리고 ‘엔잡러’는 어떻게 사용되는 말일까? 요즘 언론에서 쓰는 것을 보면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코로나 이후 ‘엔잡’ 증가, 일자리 불안정성 문제 심각”과 같은 식이다. 이때의 ‘엔잡’은 소득이 부족해서 불가피하게 하는 부업이라는 뜻이다. ‘투잡 뛴다’고 흔히 표현하던 것이 ‘스리잡’으로 늘었다가 ‘엔잡’으로 통칭되는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17년 <한겨레>에 실렸던 ‘N잡의 기술’(제현주)이라는 칼럼을 보면 엔잡러를 ‘스스로 일들의 조합을 만들어내 자신의 직업을 창조하려는 이들’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소개한다. 한동안 그와 같은 긍정적 의미로 쓰였으나 언젠가부터 부정적 의미가 덧붙여졌다.
원고료 안 오르고 사회보험 등도 안 돼 “개인 사업자에 대한 이해 높아졌으면” ‘엔(N)잡’, 그리고 ‘엔잡러’는 어떻게 사용되는 말일까? 요즘 언론에서 쓰는 것을 보면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코로나 이후 ‘엔잡’ 증가, 일자리 불안정성 문제 심각”과 같은 식이다. 이때의 ‘엔잡’은 소득이 부족해서 불가피하게 하는 부업이라는 뜻이다. ‘투잡 뛴다’고 흔히 표현하던 것이 ‘스리잡’으로 늘었다가 ‘엔잡’으로 통칭되는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17년 <한겨레>에 실렸던 ‘N잡의 기술’(제현주)이라는 칼럼을 보면 엔잡러를 ‘스스로 일들의 조합을 만들어내 자신의 직업을 창조하려는 이들’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소개한다. 한동안 그와 같은 긍정적 의미로 쓰였으나 언젠가부터 부정적 의미가 덧붙여졌다.
두 사람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가 팟빵 추천 팟캐스트로 선정됐던 2020년 1월 마포구 서교동 팟빵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의미의 엔잡러, 그러니까 능동적으로 자기 일을 만들어내고 자율적으로 일한다는 의미의 엔잡러는 여전히 존재할까?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팟빵으로 연재되는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의 두 진행자 이다혜(37), 박초롱(35)씨가 엔잡러임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다. 이들은 어떤 연유로, 어떤 방식으로 엔잡러로 일하는지 5월19일 마포구 동교동 플랫폼 피(P) 공유오피스에서 만나 들어봤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이제 5년쯤 됐다는데 신기할 정도로 닮은 점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을 각각 알던 한 지인이 ‘굉장히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소개해서 만나봤다가 너무 잘 통해서 ‘절친’이 된 사이였다.
둘 다 한때는 안정된 직장에 다녔으나 ‘힘들게 일해도 나만의 것이 쌓이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에 퇴사했다. 다혜씨는 1인기업인 ‘더스토리B’를 만들어 콘텐츠 제작을 대행하는 한편 <프리낫프리>라는 프리랜서를 위한 잡지를 만든다. 최근에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법>이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초롱씨는 퇴사 직후 친구 둘과 함께 ‘딴짓출판사’를 차려서 <딴짓매거진>을 발행해왔다. ‘밥벌이만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는 잡지로 지금까지 15권을 펴냈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단골바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 <야망 있는 여자들의 사교 클럽> 등 에세이집 여러 권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팟캐스트 진행 모습.
팟캐스트 진행 모습.
이렇게 공통점이 많은 둘이 의기투합해서 2019년 시작한 팟캐스트는 처음에는 ‘여성, 일, 프리랜서’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다뤘지만 점점 주제가 넓어졌다. “지금은 그냥 우리 또래 여성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며 초롱씨는 “처음에는 ‘일’에 더 초점을 맞췄는데, 일이라는 게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자연히 주제가 삶 전체로 확장되더라고요”라고 했다.
두 사람의 ‘엔잡’ 개수는 사실 더 많다. 다혜씨 회사의 업종인 ‘콘텐츠 제작’은 상당히 포괄적인 표현으로, 문화 행사 기획과 운영 일까지 포괄한다. 초롱씨는 문화예술 관련 컨설팅, 각종 글쓰기 관련 일도 한다. 초롱씨는 자신이 하는 일의 개수를 세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잠시 들여다봤는데 엑셀 시트에 정리한, 지난 한 해 동안 수행한 일의 개수가 120여 개에 달한다고 했다. 세무사를 쓰지 않고서는 정산이 힘들 정도다.
이와 같은 ‘엔잡’은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까? 요즘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일로 충분한 소득을 벌지 못하니까 불가피하게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된 측면도 있는지 물었다. 다혜씨는 “수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훨씬 잘 맞아서 선택한 것”이라고 답했다.
“조직에서는 납득이 안 되는 일을 맡게 될 때도 있고 꼭 제가 아니어도 되는 일을 하게 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도 저는 적당히 할 줄을 모르는 편이어서 금방 번아웃이 오곤 했어요. 지금은 일하는 시간과 공간, 일하는 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예전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아요.”
초롱씨도 “불안정성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첫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겠죠”라면서 “제가 경험한 직장생활은 웬만하면 잘리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것이었지만 저는 거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라고 했다.
물론 엔잡러이자 프리랜서로 일하는 데 따른 어려움은 분명히 있다. 초롱씨는 “누구나 이런 방식이 맞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욕심껏 일을 맡다보면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때의 해법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라고 했다. 업계 안에 능력 있는 동료가 많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다혜씨를 보면서 “내가 너무 힘들면 나눠서 해줄 거잖아”라며 웃기도 했다.
두 사람이 각각 펴낸 잡지 <딴짓매거진>과 <프리낫프리>, 그리고 에세이집들.
다혜씨는 스스로 원칙을 정해서 안정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되도록 오전 9시에 일을 시작하고 해가 떠 있는 동안에 마치려 한다. 공공기관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9~12월에 일이 몰리는데, 그렇더라도 밤 9시를 넘겨 일하지 않는다. 바쁜 일이 끝나면 일정 기간은 휴식을 취하면서 취미생활을 즐긴다.
그에 비해서 초롱씨는 ‘저녁형 인간’이고 ‘느닷없이 일을 시작하는’ 스타일이지만 자기만의 리듬을 잡아보려고는 한다. 그러면서도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행복”이라고 덧붙였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들 주위에 비슷한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일례로 초롱씨와 함께 <딴짓매거진>을 펴내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플로리스트이고 다른 한 명은 언론사에서 일한다. 다혜씨도 다른 엔잡러를 아느냐고 묻자 ‘그래픽 디자이너이면서 바리스타인 미술 작가’ 등 여러 명을 바로 떠올렸다.
엔잡러를 힘들게 하는 현실도 있다고 했다. 다혜씨가 강조한 문제는 ‘물가는 오르는데 원고료와 강의료는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직 노동자로 하든 개인사업자로 하든 다 일하는 사람들일 뿐인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이해나 존중이 없다”고 지적했다.
초롱씨는 요즘 플랫폼 노동을 비롯해서 불안정한 일자리가 많아지는데 일부 사례만 보고 “각자 원하는 대로 일한다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시각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했다. 실업급여 등 조직 노동자에 준하는 사회적 보호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전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과 이야기하며 내내 들었던 생각은 ‘엔잡’을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의 일만을 조직 안에서 할 때의 장점을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자기만의 일과 삶을 만들어가겠다는 도전이자 노력일 뿐이다. 굳이 부정적인 면을 꼽자면, 두 사람 말처럼 사회 제도의 틀이 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부정적인 것은 일일까 아니면 이 사회일까, 다시 묻고 싶어진다.
글 황세원 일인(in)연구소 대표
사진 황세원 일인(in)연구소 대표, 박초롱·이다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