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야, 놀자

노는 모습 보면 아이 생각이 보인다

등록 : 2016-04-06 18:19 수정 : 2016-05-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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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어떻게 놀까. 얼핏 보면 그네, 시소, 미끄럼틀, 구름사다리, 철봉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끊임없이 뭔가를 한다. 그런데 이 ‘뭔가’가 뭘까.  

아이들은 놀이터에 놀러 오지만 어른들은 어쩔 수 없이 보호자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한 시간이 1분 같고 어른들은 1분이 한 시간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른들은 재미없는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는 학생 같다.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그나마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아이들이 안전하게 노는지 힐끔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다시 이야기에 몰입한다. 혼자일 경우 아이가 어리다면 같이 놀아주다 슬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눈으로는 아이들을 보고 있지만 ‘오늘 저녁은 뭘 먹나’, ‘빨리 가서 빨래 개야 하는데’ 등등 온갖 걱정거리가 종횡무진 머리를 누빈다. 아이가 큰 경우 아이는 놀고 어른은 적당한 곳에 앉아 스마트폰에 푹 빠져 고개를 들지 않는다.  

그런데 어른들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아이들은 그 ‘뭔가’를 하고 있다. 어른들이 이 ‘뭔가’를 알수록 지루한 놀이터가 조금씩 달라져 보인다. 이때 ‘뭔가’를 보기 위해 필요한 건 딱 하나, 바로 ‘잠깐의 멈춤’이다.  

시소에서 치과놀이를 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눈여겨보면 아이들의 생각까지 읽을 수 있다.
이 사진은 아이들이 시소에서 뭔가를 하는 장면이다. 힐끔 봤다면 ‘아이들 뭔가 하고 있네’ 정도로 생각한다. 여기서 잠깐 하던 걸 멈추고 대화를 듣는다면 시소를 병원 침대 삼아 썩은 이를 치료하는 병원놀이를 한다는 걸 눈치챈다. “입 벌려 보세요. 마취할 거예요, 아파도 참아야 해요.” 좀 더 지켜본다면 아이들이 이 치료를 받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뭐가 두려웠는지 알 수 있다.  

잠깐 멈추면 아이들이 보인다. 잠깐 이야기를 멈추면 열 가지가 넘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그네를 타는 아이들을 만난다. 짜증나는 집안일로 복잡해진 머리를 잠시 멈추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걸 보면 흥분한 아이들이 내딛는 힘찬 발소리를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 손과 눈을 떼고 역할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본다면 눈앞에서 영화제 주연상 후보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이뿐만 아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심판자 신분을 잠시 멈추면 우는 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아, 그래서 서운했구나.” 놀이를 교육으로만 보는 입장을 멈춘다면 그저 노는 게 즐거워 깔깔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보호자 역할을 잠깐 멈추면 넘어지고 떨어진 아이들을 격려할 여유가 생긴다. 놀이터는 아이들만 노는 곳이라는 상식을 멈춘다면 아이와 즐겁게 노는 나를 만난다. 놀이는 놀이터에서만 한다는 판단을 멈추면 온 세상이 놀이터로 변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잠깐 멈춘다면 ‘뭔가’가 보인다.


글·사진 박찬희 자유기고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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