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남산타워와 오랜 집 어울림 표현했죠”

‘필동에서 남산과 전통을 그리다’ 그림대회 대상 받은 박혜영씨

등록 : 2023-11-30 15:26

크게 작게

박혜영씨가 11월21일 그림을 배우고 있는 중구 퇴계로 화실에서 자신의 그림을 넣은 상패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박씨는 지난 10월 말 중구와 필동주민자치위원회가 개최한 ‘필동에서 남산과 전통을 그리다’ 그림대회에서 파스텔화 ‘필동에서’로 대상을 받았다.

여행업 하다 코로나 때 그림 배워 ‘위안’

“남산·필동 따뜻하게 잘 표현” 평가받아

남산 고도제한 완화로 사라질 풍경들

중구, ‘2025년까지 공모전’ 수상작 전시

11월21일 중구 퇴계로에 있는 한 화실을 찾았다. 작은 건물 4층에 자리잡은 화실은 아담했다. 다양한 형태의 그림들 사이에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박혜영(62)씨가 뒤를 돌아봤다.

“좋은 상을 준 중구청과 필동주민자치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에게도 감사드려요. 미술 활동하는 데 큰 힘을 얻었습니다.” 중구와 필동주민자치위원회는 10월30일 남산 한옥마을에서 ‘필동에서 남산과 전통을 그리다’ 그림대회를 열었다. 지난 6월30일 서울시가 발표한 ‘신 고도지구 구상(안)’으로 남산 고도제한이 완화될 것에 대비해 현재 모습을 기억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필동에서'로 대상을 받았는데, 11월7일 시상식에서 자신의 그림을 넣어 만든 상패를 받았다. 이번 대회에서 박씨를 비롯해 금상 2명, 은상 3명, 입선 20명 등 모두 26명의 작품이 선정됐다. 박씨는 “뜻깊은 행사라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며 “운 좋게 큰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필동에서'는 한옥마을에서 남산 쪽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다. “중구의 변해가는 모습을 담았어요. 600년 된 나무와 숲,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현대식 건물과 오래된 집들의 어울림을 표현했습니다.” 박씨는 이날 파스텔로 그림을 그렸는데, 프랑스 화가 에드가르 드가가 발레리나를 그린 ‘무대 위의 무희' 등이 파스텔화로 잘 알려져 있다. “유화나 수채화는 칠하고 마르는 과정이 필요한데 파스텔은 그런 과정이 없죠. 그래서 유화나 수채화보다 더 빨리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박씨는 “이날, 순간순간 생각난 것을 가장 빠르게 그릴 수 있는 파스텔화를 선택했다”고 했다.


“실제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잘 표현했어요. 대회 의도를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파스텔이 가진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가장 좋았습니다.” ‘필동에서’는 심사위원들로부터 ‘남산과 필동의 전경을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구는 수상작들을 모아 11월6일부터 20일까지 중구청 1층 로비에서 ‘필동에서 남산과 전통을 그리다’ 전시회를 열었다. 앞으로 1년 동안 필동 주민센터 내 필인갤러리, 중구 내 여러 갤러리를 돌며 전시할 예정이다. 2025년에는 3년 동안 수상한 작품을 모아 남산 일대의 변화된 모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관광 가이드 겸 여행사 대표인 박씨는 지난해 1월 퇴계로에 있는 화실에 나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했죠.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줄어 여행업은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박씨는 “말 못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일거리가 줄어 고민하던 터에 한 그림 관련 유튜브가 박씨 눈에 띄었다. “신석주 교수의 유튜브 ‘그림은 그리움이다’를 우연히 봤죠.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 정서 안정에도 도움이 되고 삶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도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씨는 “그렇게 해서 화실에 와보니 저와 같은 연령대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고 했다.

박씨는 그림을 그린 이후 다섯 차례 수상 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박씨는 이처럼 짧은 기간에 대상을 받은 건 어릴 때부터 가졌던 그림에 대한 흥미와 관심 때문일 거라고 했다. “어릴 때 그림을 좋아했는데, 공부하라는 어머니 성화에 그림을 접었죠.” 박씨는 “언젠가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지만, 일이 바빠 제대로 시간을 낼 수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수채화와 파스텔화를 배웠다. 지금은 주 1회 화실에 나오지만, 12월부터는 주 2회 나와 유화도 배울 생각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은 없어요. 되도록 많은 것을 그리고 싶어요. 풍경, 정물, 인물 등 갈 길이 멀죠.” 박씨는 “그러다 마음에 꽂히는 대상이 있으면 그것만 그릴 수도 있을 것”이라며 “아직은 그런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 행복해요. 그림이 잘 나오면 또 흐뭇하죠.” 박씨는 “그림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서 좋은 그림에는 정답이 없다”며 “그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내가 보기에 아름답고 감동받으면 된다”고 했다.

“집에서 혼자 그리는 것보다 화실에 나와서 동료들과 함께 그리면 많이 늘어요.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계속하다 보면 ‘어, 나도 되네’ 할 때가 있죠. 그러니 너무 어렵게 생각 말고 도전하면,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잘 그리더라고요.” 박씨는 소질이 있고 없고를 떠나 꾸준히 그림을 그리다보면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못 그려도 그림은 그림이죠. 꼭 잘 그려야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그림을 그리다보면 어느 날 재미있게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어요.” 박씨는 “중년 이후 추천할 만한 취미로 그림만한 게 없다”며 “앞으로 특정 분야나 소재에 얽매이지 않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