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등재 신청에 재조명받는 씨간장

‘겹장’ 이용해 대대로 이어지는 한국만의 문화…시간보다 중요한 건 다른 간장의 종자로서 ‘맛’

등록 : 2022-09-0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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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힌 진간장 중 가장 맛이 좋은 간장을 골라 보관해두면서 새로 담근 햇간장을 섞는 겹장을 통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간장을 ‘씨간장’이라고 한다.

2017년 한-미 정상회담 만찬 메인요리

씨간장으로 만든 소스 사용해 ‘눈길’

‘맛의 씨’ 역할 하는 가장 맛좋은 간장

좋은 씨간장은 시간보다 ‘맛’이 중요

씨간장은 ‘두장 문화권’ 나라 가운데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차별화된 문화


‘장 담그기 유네스코 등재’ 2년 뒤 결정

“우리부터 우리 장에 ‘올바른 관심’ 중요”


#지난달 19일 한국방송(KBS2)에서 방영된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선 한식 전문가 한윤주 콩두 대표가 출연해 2017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만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당시 청와대에서는 음식에 메시지를 담아라, 미국 대통령의 입맛에 맞춰라, 한식의 틀을 지켜달라는 세 가지 요청을 했다”고 한다. 이에 한 대표가 메인요리로 준비한 것은 한우갈비구이. 소스는 360년 된 씨간장으로 만들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선 “미국의 역사보다 오래된 간장이 트럼프의 한국 메뉴에 나왔다”며 주목했다.

#미국의 유명 햄버거 브랜드 ‘쉐이크쉑’이 지난달 한국 론칭 6주년을 기념해 ‘코리안 헤리티지’(Korean Heritage)를 주제로 한정판 메뉴를 내놨다. 햄버거 ‘더 헤리티지 370’ 메뉴에는 들깨 진장 아이올리소스로 버무린 궁채 장아찌가 담겼다. 이 진장은 370년 전통을 이어온 기순도 명인 가문의 씨간장을 첨장한 것으로, 미국 전통 음식에 한국 전통의 장 문화를 반영했다는 평을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최근 문화재청과 협업해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씨간장 문화가 조명받고 있다. 케이(K)-팝, K-드라마에 이은 K-푸드의 세계적 위상을 고려할 때 이번 유네스크 등재는 무난히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관세청에 따르면, 2021년 우리 장류 중 대표 격인 간장, 고추장, 된장 등 3개 품목의 수출액은 8237만달러로, 2018년 6043만9천달러에 비해 약 36%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 장 중에서 특히 간장은 특유의 감칠맛을 비롯해 단맛, 신맛 등 다채로운 맛으로 음식에 풍미를 더한다. 발효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짠맛과는 다른 복합적인 맛이다.

간장은 종류도 다양하다. 발효 기간에 따라 이름도 용도도 다르다. 막 담근 새 간장은 햇간장, 1~2년 숙성시킨 간장은 청간장, 3~4년 된 간장은 중간장, 5년 이상 묵힌 간장은 진간장이라고 부른다. 간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이 짙어지고 풍미가 깊어지기 때문에 미역국 등 맑은 국물 요리에는 햇간장을 쓴다. 반면, 중간장은 잘 달여서 맑게 거른 다음, 나물이나 찌개 등의 반찬을 만드는 데 쓴다. 5년 이상 숙성시킨 진간장은 갈비찜이나 불고기, 각종 조림 등 어두운색이 입맛을 돋우는 요리에 쓰인다.

맛도 영양도 뛰어난 ‘약이 되는 장’

이렇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간장 외에 맛과 영양 가치가 뛰어난 간장이 있다. 바로 ‘씨간장’이다. 씨간장은 오래 묵힌 진간장 중 가장 맛이 좋은 간장을 골라 오랫동안 유지해온 간장을 말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맛의 씨’가 되는 역할을 한다. 색은 진한 흑색을 띠며 부드럽고 강한 풍미와 단맛, 감칠맛을 자랑한다. 맛이 뛰어난 씨간장을 잘 보관해뒀다가 새로 담근 햇간장을 섞는 것을 ‘겹장’이라 하는데, 이 겹장을 통해 씨간장은 대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이탈리아의 일부 발사믹 식초가 이런 ‘겹장’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두장(豆醬) 문화권에 있는 중국·일본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이면서 차별화된 우리만의 문화다. 맛의 씨가 되는 중요한 원료인 만큼 그 가치는 옛날부터 높게 평가됐다. ‘좋은 씨간장은 옹기째 훔쳐간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우리 선조는 장맛이 조금 떨어지면 손맛이 좋기로 소문난 집의 씨간장을 조금 얻어다가 섞어 먹곤 했다. 또 집에 손님이 오면 간장을 먼저 대접하기도 했다. 상 위에 올라온 간장을 찍어 먹으면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맛이 뛰어난 씨간장은 짠맛이 아닌 풍미가 가득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면서 침샘을 확 자극한다. 이에 따라 유명 한정식집 중에서는 첫 코스로 씨간장을 내놓는 곳도 있다.

맛뿐만 아니라 씨간장은 버릴 것이 없는 효자 식품이기도 하다. 씨간장독 아래 가라앉은 소금 결정체를 건져내 여러 번 씻고 말려 사용하면, 일반 소금보다 나트륨은 적고 감칠맛과 단맛, 짠맛이 조화로운 천연조미료가 된다. 또 씨간장은 양질의 단백질과 풍부한 지방을 함유해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에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도 뛰어나다. 특히 스님들은 소화가 잘 안 되거나 속이 안 좋을 때 천연 소화제 용도로 간장차를 마신다고 한다. 간장 숙성 과정에서 각종 유기산·핵산·젖산 등 유익균이 생겨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몸에 좋은 유효 발효균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씨간장을 약이 되는 장, ‘약장’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씨간장에 대한 오해…‘시간’보다 ‘맛’이 중요

이런 씨간장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단순히 오래된 간장이 씨간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몇 대째 이어온 100년 된 씨간장, 200년 된 씨간장 등이 대중매체에 소개되면서 담근 지 오래되면 씨간장이라 오해할 수도 있다. 이런 오해로 인해 씨간장은 수백 년 된 종갓집이나 고택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요즘 엠제트(MZ)세대 중에는 ‘씨간장’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도 많다. 하지만 씨간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간장의 종자가 되는 개념이다. 단순히 오래되기만 하고 풍미는 떨어진다면 그것은 씨간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 씨간장은 얼마나 오래됐느냐가 아닌, 다른 간장의 종자가 될 수 있을 만큼 맛있어야 한다. 맛있는 진간장을 골라 옹기에 5년, 10년 동안 잘 숙성시켰다면, 그것 역시 훌륭한 씨간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등재 여부는 2024년 연말에 결정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우리 장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따라서 우리 스스로도 우리 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사진 청주 문화 류씨 시랑공파 8대 김종희 종부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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