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보존’의 상생, 공평15·16지구 유적전시관

우동선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l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등록 : 2024-02-29 15:25 수정 : 2024-02-2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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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보존의 상생을 이룬 첫 사례로 꼽히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26 지하 1층 소재)의 내부.

서울은 2000년 역사도시를 표명할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이다. 특히, 1394년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국가의 중심으로서 수많은 우리 조상이 살아갔던 소중한 땅이다. 여러 발굴에서 확인되는 켜켜이 쌓인 주거 유적들이 그것을 실증해준다. 한편,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인구밀집지역으로 현실적인 토지 개발 수요가 첨예한 땅이기도 하다. 이 첨예한 수요는 소중한 땅속 문화유산의 보존과 개발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이유다.

21세기 들어서 서울의 사대문 안 중심가로 중 하나인 종로를 축으로 대규모 도심재개발이 연이어 이루어졌다. 당시 공사 전 발굴조사 과정에서 지하층에 남아 있던 도시 주거유적이 잇달아 발견됐지만 극히 일부만 보존 조치돼 현재도 피맛골 주변 빌딩 여기저기에 산재돼 있다. 개발을 이유로 옛 유적의 편린(片鱗)만 남겨진 현실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러한 문제의 보완과 함께, 보존과 개발을 조화시키고자 서울시는 유연하면서도 적극적인 문화재 보존을 위해 2가지 정책를 추진해왔다. 우선, 2010년부터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민간 개발사업자의 의무였던 문화재 지표조사를 서울시 차원에서 시내 전역에 실시해 매장문화재의 유존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표시·공개해오고 있다. 필지별로 매장문화재 조사가 필요한 지역을 사전에 알려서 개발 시에 미리 참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음으로 도심 개발의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땅속에서 출토된 도시 주거유적을 광범위하게 현지 보존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종각역 부근에 있는 ‘공평유적전시관’이다. 도심 속 고층빌딩 아래에 조선시대 한 마을 정도 되는 규모의 집터들과 그 사이사이 핏줄처럼 이어지는 골목길들이 오롯이 보존됐다. 다년간 문화재위원회에서 활동해왔던 필자도 서울 도심에서 이렇게 큰 규모로 남겨진 도시유적을 보게 돼 감회가 새로웠다. 집터와 함께 출토된 유물도 유적전시관과 함께 모두 서울시에서 보존·관리하면서 상당량을 현장에 전시할 수 있게 됐고, 전시관은 당시 도시 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생생함을 담을 수 있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의 외부.

2021년, 공평유적전시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인사동 초입의 공평 제15·16지구 발굴 현장에서 또 조선시대의 대규모 주거유적이 드러났다.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각종의 생활유물과 함께, 현존 최고(最古)의 한글 금속활자, ‘일성정시의’라는 천문시계, 그리고 물시계 부품 등이 최초로 출토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 도심 발굴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 이 유적의 주요 유물들은 발 빠르게 발굴 성과를 소개하는 기획전시, 학술대회를 통해 역사적 가치가 조명됐고, 그 일부는 국립고궁박물관의 상설전시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이 주거유적 또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처럼, 2026년 새로이 들어서는 25층 규모 고층빌딩의 지하에 조성될 전시관에서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발굴된 유적을 그대로 보존했다가 빌딩 지하층의 원위치에 다시 복원할 계획이다. 이는 이 집터와 출토유물이 가진 역사적 장소성을 보존하고 그 가치를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렇기에 2026년 서울 도심 속 최대의 유적전시관이 될 이 전시관에는 ‘터’뿐만 아니라 터의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유물’이 현장에 함께 전시돼야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당시의 보도 기사들을 보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인사동 출토 주요 유물의 출토 상황과 장소가 모두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함께 현장에서 이 미스터리를 풀어볼 수 있도록, 출토 유물이 현장으로 돌아와 진정한 현지 보존의 의미를 살린 유적전시관이 되기를 바란다.

우동선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l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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