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독립운동가 정신 MZ세대에 전달”

문화·교육으로 여성항일운동기념사업회 이끄는 양혜경 이사장과 정원식 연구소장

등록 : 2024-08-0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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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중구 정동 배재어린이공원에서 양혜경 여성항일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오른쪽)과 정원식 사업회 산하 여성항일운동연구소장이 ‘항일독립운동여성상’ 앞에서 사업회의 활동 계획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2019년 10월 사업회가 제작해 설치한 ‘여성상’은 과거 시대의 선배 여성 독립운동가가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여학생한테 등불을 비춰주는 것을 형상화했다

2014년 출범, 여성독립운동 조명 힘써

넋전춤 춤꾼 양 이사장 문화 활용 중시

“젊은 예술가 주축 ‘번개단’ 구성 뒤 활동”

국제관계학 박사 정 소장 교육에 관심

여성 독립운동사 강사 양성에 힘 쏟아

“젊은세대가 여성 독립운동 알게 노력””



“후손들이 잘되기를 바랐던 여성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젊은 세대들에게 문화와 교육을 통해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지난달 16일 중구 정동 배재어린이공원에서 만난 양혜경(61) 여성항일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정원식(53) 사업회 산하 여성항일운동연구소장이 함께 힘주어 강조한 말이다. 두 사람은 다짐의 말을 마친 뒤 공원 안에 있는 ‘항일독립운동여성상’을 바라봤다. 한 여학생은 등불을 비춰주고 다른 여학생은 독립선언서를 찍어내는 모습의 여성상은 사업회가 2019년 10월 제작해 설치한 것이다.

2014년 출범한 기념사업회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거의 잊혔던 여성 항일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기억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애초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 기준조차 없는 상황에서 출범한 기념사업회의 활동 등에 힘입어 국가보훈위원회는 2018년 여성 독립운동가 서훈 기준을 개선하기 위해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방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2023년 10월 현재 서훈을 받은 전체 1만7848명 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653명으로 3.66%에 머문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이사장과 연구소장에 취임한 두 사람은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과 여성 독립운동가 정신 전파를 위해 문화와 교육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지난 7월5일 열린 사업회 제11차 총회에서 ‘문화예술창작사업단’ 구성안을 통과시켰다. ‘번개단’이라는 이름의 사업단은 총회 다음날인 7월6일 첫 번째 회의를 열고 앞으로의 활동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랩이나 영상 등 젊은 세대에 익숙한 문화 장르를 통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소망’을 전파해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양 이사장은 “엠제트(MZ)세대 예술가 등으로 구성된 ‘번개단’의 첫 회의에서 ‘성소수자 문제까지 끌어안아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며 “모든 젊은이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 여성 독립운동가의 정신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양 이사장은 “그래도 ‘교도소에 가기 직전까지만 하라’고 덧붙였다”며 밝게 웃었다.

양 이사장의 이런 개방성은 그 자신이 ‘실천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양 이사장은 민속학자인 고 심우성(1934~2018) 선생으로부터 넋전춤을 전수한 춤꾼이다. 넋전은 ‘죽은 이의 넋을 담아 오린 종이인형’이다. 한지를 오린 것을 ‘전’이라고 한다. 가령 복을 담아 오리면 ‘복전’이다. 넋전춤은 넋을 담은 종이인형을 들고 추는 춤이다.

양 이사장은 지난해 9월3일 일본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서 올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추모 위령제’에서 넋전춤으로 학살된 조선인들을 위령한 것을 비롯해 세월호 희생자,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등을 위한 위령의 춤을 추어왔다.

이에 따라 2015년 사업회와 인연을 맺은 양 이사장은 지난 8년 동안 사업회가 진행한 문화행사에 관여해왔다. 2018년과 2019년에는 ‘랩으로 되살아나는 여성 항일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중고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랩 대회를 열었다. 또 2020년에는 역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2020년 하반기에는 공모전 수상 작품들을 가지고 워싱턴 등 미국 3개 도시 순회 전시회도 열었다.

한편 정원식 연구소장은 젊은 세대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정신을 전파하는 데 특히 교육을 중심에 놓고 실천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2008)와 국제관계학 박사(2017) 학위를 취득한 정 소장은 애초 일제강점기 역사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10년 베이징대학 한국대학원생 유학생회 제3대 학생회장에 당선됐을 때 중국 허베이성 한단시에 있는 ‘태항산 항일무장투쟁 유적지’ 탐방을 베이징대학 한국 유학생과 중국 공청단원들이 합동으로 최초 진행토록 해 크게 주목받았다. 태항산은 일제에 맞서 중국 팔로군(현 중국 인민해방군 전신)과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조선의용대(군)가 함께 싸운 곳이다.

그러나 정 박사가 독립운동 중에서도 특히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전남 영광군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정 소장은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 지역 중 영광군의 경우 여성이 가장 많이 희생된 곳”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기간 중인 1952년 3월 만들어진 이승만 정부의 6·25전쟁 피살자 명부에 따르면, 영광군의 피학살자가 2만1225명이고, 그중 여성 7914명이 영광이라는 조그마한 지역에서 좌익빨치산과 군경토벌대라는 양대 세력에 의해 학살당했습니다. 현재 민간인 학살 전문연구자들은 3만5천여 명까지 추산하고 있습니다.”

정 소장은 “그 뒤 민간 전문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여성 희생자 수도 축소된 것이라고 지적한다”며 “여성들의 희생과 아픔이라는 동질성에서 자연스럽게 여성 항일독립운동가들에게 관심이 갔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정 박사는 연구소장 취임 뒤 여성 항일독립운동사 강사를 길러내는 일에 힘을 쏟았다. 정 박사는 지난해 하반기 ‘1기 항일여성독립운동 강사 양성 교육’을 해 그해 10월13일 8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정 박사는 특히 “독립운동에 대해 교육할 사람은 많지만 여성 항일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교육할 사람은 없는 형편”이라며 “특히 일제강점기 역사를 단순 일국사관이 아닌, 전세계사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해설할 수 있도록 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이사장은 “지금 젊은이들이 8·15를 ‘팔일오’라고 읽지 않고, ‘팔점일오’라고 읽는 등 광복절에 대한 인식조차 엷어지고 있다”며 “이렇게 여성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이 옅은 엠제트세대가 다시금 여성 항일독립운동 역사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더욱 다양한 문화적 노력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박사도 “앞으로도 항일여성독립운동 강사 양성 교육에 더욱 힘써 보다 많은 젊은이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이끄는 여성항일운동기념사업회가 앞으로 어떤 문화·교육활동을 벌일지 기대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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