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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태료 카드 납부 어렵죠? 우리가 찾아갈게요”

서울 첫 ‘찾아가는 과태료 수납 서비스’ 광진구 교통과징팀

등록 : 2017-04-1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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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처음으로 ‘찾아가는 수납 서비스’를 시작한 광진구의 최은자 교통과징팀장(왼쪽)과 박헌순 주무관이 무선 카드단말기를 보여주고 있다. 광진구 제공
지난해 7월 말 최은자 광진구 교통과징팀장은 충북 제천시에 사는 60대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 앞으로 광진구의 주·정차 위반 과태료 체납고지서가 해마다 무더기로 오는데, 받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이 사업이 어려워 과태료가 잔뜩 밀린 걸 다른 주민이 알면 동네 창피하다며 빨리 내고 싶다 했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인터넷뱅킹은 고사하고, 고지서 뭉치를 갖고 은행에 가서 납부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여러 납부 방법을 안내하던 최 팀장은 결국 제천시까지 직접 찾아가겠다고 자청했다. “과태료는 모두 14건에 97만원 남짓에 불과했지만, 낼 의사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 갈 수가 있겠어요. 단 10만원이라도 내겠다는 납세자가 있다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시간이나 걸려 제천에 가서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현금 없이 신용카드 한 장만 갖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은행, 농협, 우체국 등을 찾아다녔지만, 해당 금융기관의 현금카드가 아니면 수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동응답전화(ARS)를 이용하기로 했다. 19자리 전자납부번호와 16자리 신용카드번호를 누르는데, 숫자를 하나라도 잘못 누르면 처음부터 그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14건의 과태료를 처리하는 데 무려 1시간이 걸렸다.

“직접 해보니 젊은 사람도 이렇게 어려운데, 나이 드신 분들은 어떨까 싶더군요. 노인들은 안내 음성에 따라 화면의 숫자를 누르는 걸 특히 어려워해요. 잘못 누르면 경고 음성이 나오는데, 못 듣고 계속 누르다 화를 내시며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최 팀장이 떠올린 게, 음식점 배달 직원이 갖고 다니는 무선 카드단말기였다. 단말기만 있다면 몇 분이면 끝날 일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최 팀장은 무선 카드단말기를 앞서 이용하고 있는 관공서를 찾았지만, 서울 25개 자치구 어디에서도 쓰는 곳이 없었다. 박헌순 주무관은 “서울의 관공서 가운데 처음으로 무선 카드단말기를 계약하는 경우라 단말기 업체들도 당황할 정도였다. 처음에 업체에 전화하면 ‘자영업자냐’, ‘어떤 업종이냐’부터 물으며 인감증명서와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하는데, 관공서라고 하면 어떤 서류를 받아야 할지 몰라 했다”고 한다. 여러 업체들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에야 무선 카드단말기를 이용한 ‘찾아가는 수납 서비스’를 지난 3월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작하면서도 과태료를 받으러 공무원이 현장까지 찾아가는 것에 대해 납세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 많았다. 실제로 교통과징팀 직원들은 아침 9시부터 고함과 욕설이 섞인 전화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시간도 4명이 교대를 하며 항의 전화를 받는 실정이다. 심한 욕설을 들은 신입 여직원이 눈물을 쏟은 일도 있다. 이런 상황이라 현장에서 납세자와 시비가 붙거나, 납세자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달 9일 박 주무관이 처음으로 ‘찾아가는 수납 서비스’를 나갈 때, 교통과징팀 모든 직원은 초긴장 상태였다. 납세자는 인천시 남동구의 재개발 공사장에서 일하는 60대 남자였다. 150여만원을 체납했는데, 광진구청까지 갈 여유가 없다며 ‘찾아가는 수납 서비스’를 신청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박 주무관이 납세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걱정하고 있을 팀장과 직원들이 떠올랐다.

10분 뒤에야 전화를 받은 납세자는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나타났다. 박 주무관이 미리 준비한 서류를 보여주며 수납 절차를 안내한 뒤 무선 카드단말기로 간단히 결제를 마쳤다. 납세자는 “공사장 주변에 은행이나 편의점이 없어 가산금만 올라가고 체납액만 늘어났는데 멀리까지 와줘서 정말 고맙다. 당장 목돈이 없는데 5개월 무이자 할부로 결제했다”며 좋아했다.


지난 4일까지 20여일 동안 5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해 840여만원의 체납금을 냈는데, 우려와 달리 모두 흔쾌히 결제했다. 다른 구청에서도 ‘찾아가는 수납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 행정자치부, 서울시 38기동대, 창원시 등 전국에서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최 팀장은 “우리가 성과를 내면 비슷한 서비스가 다른 관공서로 빨리 확산될 것”이라며 “앞으로 전단을 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해 체납액을 줄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광진구에서 100만원 이상 과태료가 밀린 고액 상습체납자는 917명이다. 이들이 체납한 과태료는 모두 20억원에 이른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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