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충전 제한의 필요성

이항구│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

등록 : 2024-08-15 15:07 수정 : 2024-08-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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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의 자동차산업 역사 동안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 주요국 정부는 자동차관리법을 제·개정하고 리콜을 강화하는 등 시민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런 규제는 산업 혁신 촉진과 시민 안전 제고에 기여했다.

전기동력차는 산업 태동기에도 등장했으나 성능, 전력 공급, 충전 등 다양한 문제로 상용화에 실패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에너지 및 기후 위기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전기가 주목받자, 2009년에 일본 기업 주도로 다시 등장했다. 세계 신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전기차 판매 비중이 1%를 넘어선 2017년을 시작으로 수요가 급증했으며, 자동차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전기차 개발에 착수했다. 지난해 중국 기업이 1천만 대 이상의 전기차를 생산하는 등 전기차 수요는 과거 디젤차의 인기를 넘어섰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화재 문제가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전기차는 한번 불이 붙으면 열폭주 현상에 따라 화재 진압이 어려워 시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있었던 인천 주차장 화재와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 화재 사례가 이를 잘 나타낸다. 전기차 화재 문제 해결을 위해 연관된 산학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러나 상용화된 지 100년이 넘은 내연기관차에서도 아직 다양한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하듯이, 전기차 화재 문제 해결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인천 화재 사태를 계기로 서울시는 신속히 전기차 화재를 방지할 방안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다소 불편을 느끼더라도 9월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들어갈 수 있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또한 10월까지 ‘서울시 건축물 심의 기준’을 개정해 신축시설은 충전소를 지상에 설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지하 주차장은 최상층에 설치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전용 주차구역은 3대 이하로 격리 방화벽을 구획하고, 물막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서울시의 이러한 조치에 자동차업체와 전기차 보유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으나, 미국에서도 차량 화재 발생 가능성이 높은 모델에 대해서는 주차장 밖 도로에 주차하도록 계도하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콘도미니엄은 입주자들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이동수단을 사전 등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는 공영주차장 등의 공공시설에 설치된 급속충전기를 사용할 때 80%로 충전을 제한할 방침이다. 국외에서도 정부와 전기차업체들이 80% 충전을 기준으로 충전 소요 시간을 제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서울시는 전기차 제조사에 내구성능 안전 마진율, 즉 실제 배터리 용량과 차량 충전 계기판에 표시되는 격차를 현재 3~5%에서 10%로 확대하도록 제안했다. 이러한 서울시의 조치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전기차 소유자들이 차량 내부의 배터리 설정 메뉴에서 최대 충전율을 낮게 설정하는 것이다.


전기차 화재 요인은 매우 다양해 이번 서울시의 조치가 전기차 화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수의 전기차와 공동주택을 보유한 서울시로서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전기차 보유자가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전기차 화재를 사전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전기차 제조사와 배터리업체들이 화재에 취약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배터리와 열폭주를 방지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할 때까지 정부는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 이번 정책을 과도한 규제로 보기보다는 시민의 안전과 새로운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지렛대로 평가해야 한다. 서울시의 조치가 시민들의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감을 완화하고 전기차 산업에 새로운 혁신을 촉진하길 기대해본다. 아울러 성공적인 정책이 되기 위해 공동주택 관계자, 차량 제조사 등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서울시가 만반의 준비를 하여 추진하기를 바란다.

세계 신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전기차 비중(막대그래프) 및 화재 건수(점선). 자료: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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