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공무원은 늦었지만 열정만은 뒤지지 않는다

만 44살에 임용된 ‘늦깎이’ 김경섭 양천구청 주거복지팀 주무관

등록 : 2017-04-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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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섭(43·맨 오른쪽) 양천구청 주거복지팀 주무관이 지난 11일 양천구 신정4동 청년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을 양천구청 직원들과 함께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월세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입주 청년들이 대화를 통해서 입주 생활의 규범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점도 좋은 것 같아요.”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 신정4동청년협동조합형 공공주택에 입주한 강민지(35)씨는 입주 생활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들의 주거난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전용면적 22.34~29.1㎡(6.7~8.8평)의 주거공간을 시중가의 3분의 1 정도(월세 11만1000~14만3000원, 보증금 849만4000~1092만4000원)에 살 수 있는데다, 입주자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주거공간을 운영해 입주자들의 자치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 있다.

청년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은 지난해 양천구가 SH 서울주택도시공사의 협력을 얻어, 주거안정사업의 하나로 양천구의 주거 취약계층에 공급한 주택이다. 올해는 신혼부부 전용 공공주택, 2018년 여성 안심형 공공주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 11일 밤 이 공간 커뮤니티실에서 청년협동 공공주택의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강민지씨는 양천구에서 공공임대주택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김경섭(46) 주택과 주거복지팀 주무관과 커뮤니티실 이용과 관련한 운영지침 협약식을 맺었다.

갑과 을의 일방적인 계약관계가 아니라, 구청과 협동조합 간 대등한 지점에서 커뮤니티실 운용지침 작성에 합의했다. 강씨는 운용지침 작성 과정에서 담당 김 주무관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나이 어린 사람이 주무관이었다면 어려운 점이 많았을 거예요. 김 주무관이 중간에서 조정하며 협동조합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갈등을 줄였습니다.”

김 주무관은 2015년 70 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지방직 9급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만 44살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3년 차 늦깎이 공무원이다. 30대 초반인 동기들보다 많게는 19살 차이 나는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됐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은 오히려 남다르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자신의 청년주택 지원 업무에 대해 “치솟는 전셋값과 높은 월세 때문에 주거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 취약계층 시민들에게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숨어 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14년간 애니메이션 작화 프리랜서로 일해온 김씨는 원청회사의 임금 체불 문제로 지방노동청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노동청의 도움으로 체불 임금의 3분의 2가량을 돌려받았습니다. 그때 ‘공무원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보람된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공무원 나이 제한이 있어서 곧바로 도전하지 못했지만, 나이 제한이 풀린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따로 학원에도 등록하지 않고 집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2년간 준비한 끝에 합격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위계질서가 뚜렷한 공무원 세계에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 않으냐는 질문에 김 주무관은 “아무래도 젊은 동기에 비해서는 체력이 많이 달린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모르는 규정이나 기존 일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선배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데 잘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이날 취재에 동행한 양천구 황광선 홍보정책과 팀장은 “밖에서 보면 공무원 세계가 서열 위주의 조직인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처럼 딱딱하게 막힌 직장은 아니다. 김 주무관처럼 늦깎이 주무관들도 드물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늦은 나이에 공직 세계에 도전하는 것은 단순히 안정된 직장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김 주무관은 말했다.

“마흔이 넘는 나이에 공무원이 되고 보니 일에 대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곳이 공직이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뭘 바라지 말고 공직이 끝날 때까지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자신과 같은 늦깎이 공무원 도전자들에게 전하는 김 주무관의 당부다.

글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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