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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수요일이 결혼기념일이다. 무려25주년, 은혼식이다. 부모님과 29년을 살았고 남편과 25년을 살았으니, 생각이든 언어든 내 인생의 절반은 남편과 주고받은 산물이다. 좋아서 만났지만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종교부터 경제관, 교육관까지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게 더 많아 노력 없이 죽이 척척 맞는 일은 없었다.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25년을 함께 살며 굵직한 희로애락을 겪고 보니 지금은 이 사람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서울시 구로구 항동은 내가 신혼을 보낸 곳이다. 애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거기 살았다. 그때만 해도 지인들을 집으로 부르면 ‘구로구 항동’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작은 동네다. 내가 살던 빌라는 유한대학교와 담벼락을 사이에 두었는데, 유한대학교까지가 경기도 부천이고 우리 빌라부터는 서울시에 들어갔다. 말하자면 항동은 부천과 서울의 경계에 있는 그린벨트 지역이었다. 경인국도를 따라 부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 휙 지나치기 쉬워 오류동은 알아도 그 옆에 붙은 항동은 모르는 이가 많았다.
푸른수목원
와보면 모두가 무척 신기해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 그도 그럴 것이 집 주변이 온통 논밭에다가 저수지에선 아이들이 겨울에 썰매를 지쳤고, 토마토며 가지같은 직접 키운 채소를 농가에서 사다 먹을 수 있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그때도 여기에 수목원이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설 거라는 말은 돌았다. 돼야 되나보다 할 뿐 개발은 먼일인 줄 알았는데 정말 수목원이 생겼다. 하긴,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아직도 안 생겼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정이 많이 들었던 동네라 이사 나오고 나서도 몇 번 가보긴 했는데, 상전벽해가 되고나서는 이번이 첫 방문이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기찻길은 그대로 있을까? 고향 집을 방문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푸른수목원’을 찾았다.
보통 ‘푸른수목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7호선 천왕역에 내려서 정문 쪽으로 걸어가는 길을 택하지만, 나는 내가 살던 집을 둘러보고 싶어 1호선 온수역에 내려 성공회대학교를 지나 수목원 후문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성공회대학교는 내가 자주 오던 곳이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없던 시절 우체국을 이용할 때나 문구류를 살 때 대학을 이용했다. 무엇보다 입구에 자리한 서양식 근대건축물이 아름다워 산책 삼아 자주 들렀다.
성공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서 헌신한 굿윈 신부의 이름을 따 ‘구두인 하우스’로 불리는 건물인데, 원래는 고 유일한 박사의 자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리모델링해 구로마을대학과 청년들의 창업지원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외관은 여전히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옛철길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더니, 천왕산과 항동저수지를 제외하고는 예전 모습이 하나도 없다. 내가 알던 논과 밭은 다 어디로 갔는지 기억을 살려낼 수 없을 만큼 동네는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했고,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도 자리를 옮겨 깨끗한 새 건물에 들어섰다. 사람 손이 타지않은 자연 그대로의 예전 느낌도 좋았지만, 동네 주민들에겐 개발이 필요했다. 이제 11년차에 들어선 푸른수목원은 나무도 제법 자랐고 무엇보다 저수지를 끼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서울시 1호 공립 수목원이라고 하는데, 입장료도 없고 반려견 동반도 가능해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푸른수목원에서 내가 제일 좋았던 건 청량한 새소리다. 푸른수목원의 깨끗한 환경이 이름 모를 새들까지 불러들였나보다. 어디선가 새소리를 듣고 술래잡기하듯 나무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처음 보는 신기한 새들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다니!’ 전에 우리 집을 찾아온 지인들이 했던 말이 이제 내 입에서 나온다. 우리 가족의 역사가 태동한 곳 구로구 항동. 지나온 25년은 남편이나 나나 둘 다 젊었고, 아이들도 있었고 할 일도 많았다. 이제부터 걸어갈 25년은 공감과 연민이 필요한, 우리 둘의 시간이다. 지난 25년을 갓 담은 생김치의 맛으로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잘익은 김치의 깊은 맛으로 살아갈 차례다. 발효의 시간 또한 잘 살아내길 기대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해로합시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푸른수목원에서 내가 제일 좋았던 건 청량한 새소리다. 푸른수목원의 깨끗한 환경이 이름 모를 새들까지 불러들였나보다. 어디선가 새소리를 듣고 술래잡기하듯 나무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처음 보는 신기한 새들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다니!’ 전에 우리 집을 찾아온 지인들이 했던 말이 이제 내 입에서 나온다. 우리 가족의 역사가 태동한 곳 구로구 항동. 지나온 25년은 남편이나 나나 둘 다 젊었고, 아이들도 있었고 할 일도 많았다. 이제부터 걸어갈 25년은 공감과 연민이 필요한, 우리 둘의 시간이다. 지난 25년을 갓 담은 생김치의 맛으로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잘익은 김치의 깊은 맛으로 살아갈 차례다. 발효의 시간 또한 잘 살아내길 기대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해로합시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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