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예술 한 스푼,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이곳 l 용산구

등록 : 2025-01-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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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학교 운동장에서 우연히 돌멩이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때 한창 역사를 배울 때여서 그랬는지 내 눈엔 그 돌멩이가 영락없이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처럼 보였다. 집에 와서 구석기 시대 유물을 발견했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아이들 한창 키울 때는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해서 박물관에 데리고 다녔는데, 외려 애들보다 내가 더 좋아했던 모양이다. 지금은 아이들 없이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을 종종 방문한다. 전시된 주먹도끼를 보면서, ‘저걸로 어떻게 사냥을 했지? 그럼 동물 껍질을 벗기는 데 썼을까? 열매를 자르는 데 썼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관람하다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공부해야 할 나이도 아니니 굳이 외우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하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식이 차곡차곡 절로 쌓인다.

거울못에서 바라본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을 즐기는 나만의 원칙이 있다. 그건 바로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자원봉사 해설사에 따르면 국립중앙박물관 전체를 다 둘러보는 데 12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12시간으로 어림도 없다. 하루에 전시관 한두 곳 정도만 천천히 본다 생각하면 최소 12번은 다녀가야 하지 않을까?

전에 프랑스 갔을 때 루브르-오르세 패키지를 끊어놓고 하루에 다 본다고 주마간산으로 전시관을 휩쓸고 다닌 끝에 얻은 교훈이다. 너무 많은 곳을 보기보다는 한두 곳 전시관을 천천히 관람할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시간을 맞춰 자원봉사 해설사의 설명을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남산 타워가 보이는 인기 포토존

국립중앙박물관은 건축물 자체로도 아름답다. ‘거울못’에서 박물관 쪽을 바라보면 가운데 뻥 뚫린 공간으로 남산타워가 보인다.우리 전통의 대청마루 개념을 박물관 건축에 도입했다고 하는데,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실 2관이, 왼쪽에 특별전시실 1관이 있다. 상설전시관은 3층까지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실이 구분돼 있고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특별전시실에서는 때마다 다양한 전시가 열리는데, 요즘은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 전시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등의 전시가 진행돼 방문객이 많다.

경천사지10층석탑


요즘 케이(K) 콘텐츠가 전세계에서 인기를 끄는 걸 보면서 우리 민족이 참 문화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와서 우리의 범종이나 불상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민족의 감각과 솜씨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한·중·일이 같은 유교 문화권이면서도 ‘의궤’가 우리나라에만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면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절로 차오른다. 어쩜 이렇게 정교할 수 있단 말인가. 대체 이 좁은 땅에 어쩜 이리도 솜씨 좋은 예인이 많이 살았던 걸까 신기할 따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공간은 기념품을 살 수 있는 ‘뮤지엄숍’이다. 고려청자 모양의 키링, 달항아리 모양의 식탁 매트, 신사임당 ‘초충도’를 그려놓은 에코백, 자개로 만든 휴대전화 케이스 등 사고 싶은 물건이 너무 많다. 기념품이 예뻐봤자 얼마나 예쁘겠냐는 선입견일랑 버려도 좋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리고 고급스럽고 감각적인 생활용품을 사고 싶다면 분명 만족스러운 쇼핑이 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야외전시도 무척 아름답다. ‘보신각종’이 있는 곳까지 쭉 걸어가다보면 오솔길을 따라 탑과 석상, 석비 등이 즐비한데, 이렇게 많은 역사유물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우리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임을 실감하게 된다. 큰 전쟁들을 거치며 그토록 많은 유물과 유적들이 소실됐는데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 처음 본 유물이 이렇게나 많다니 볼 때마다 감탄한다.

용산가족공원 가는 길

박물관 야외전시를 관람하고 오솔길을 쭉 따라가다보면 용산가족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다. 겨울철인데도 푸른 대나무가 싱그러운 오솔길을 걷노라면 차갑고도 향긋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가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명품은 디테일의 차이라고 한다. 수천년 세월을 버텨온 우리 민족의 예술과 서사가 공존하는 곳,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안목과 감각을 키워보길 추천한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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