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복합적 사회위험 대응 복지체계 구축해야

등록 : 2025-01-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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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 A씨는 월 생계급여비 70여만원으로 생활한다. 동 주민센터에서 쌀 10㎏을 2500원에 사서 김치나 라면을 반찬 삼아끼니를 때우고, 전기세, 수도세 등 필수생활비를 뺀 나머지는 술값으로 허비한다. 반찬을 만들거나 사는 건 언감생심, 영양을 보충할 길은 없다. 술 사러 잠깐 외출할 뿐이라 만나거나 마주칠 사람도 딱히 없다. 외롭다고 말할 사람도 없어 고독하다.

2023년 우리나라 1인가구는 600만 가구 이상으로 전체 가구 수의 30%를 넘는다. 작년 12월에는 노인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양극화, 저출산, 경제불황까지 겹쳐 사회안전망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회위험이 커질수록 사회적 약자의 삶은 더 힘들어지고 사회적 비용은 증가한다.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란 의미다.

핵가족화, 1인가구 급증으로 사회적 약자가 현실적으로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정부다.그러나 정부의 역할이 커지고 다양해진 반면 정책의 세밀함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복지사업 가짓수는 늘어나고 수혜자는 적은데, 효과는 미지수인 경우가 많아졌다. 복지 사각지대는 줄어드는데 사회안전망은 느슨해지는 기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구청장에 취임한 뒤 검증된 사업,효과가 입증된 복지사업을 중심으로 역량을 집중시키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했다. 순위를 정하기에 앞서 복지 현장을 잘 아는 사회복지사와 담당 주무관들과 머리를 맞댔다. 일선 담당자들의 의견과 구청장으로 살펴보던 바가 대체로 일치했다. 도움이 필요한 주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건 의식주였다. 양천구 의식주 레벨업사업을 시작한 배경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A씨 사례와 사회위험은 우리사회의 복지 현실이 얼마나 취약하고 위험한지를 나타낸다. 사회위험에서 주민을 보호하고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구청의 역할이기에 주민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그들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정확히 진단해야 처방이 가능하듯, 주민의 요구와 가려운 곳을 알아야 속 시원하게 긁어주면서 사업의 효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주 지원에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지역사회와 연계한 의식주 레벨업사업은 그렇게 출발했다. 우선 ‘양천 반올림사업’은 지원 대상자가 구청과 협약한 반찬가게에 직접 가서 월 3만원 상당의 쿠폰으로 반찬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반찬을 사고파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이웃과 소통하고 접촉하면서 관계가 형성된다.

다음으로 ‘찾아가는 행복버블 세탁서비스사업’은 지역세탁소와 협약을 맺고 약 1천 가구에 최대 5만원의 세탁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세탁소 주인이 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빨래를 수거·세탁·배달하는 과정에서 어르신의 안부를 살피고 소통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안심주거환경 개선사업’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600가구를 대상으로 안전손잡이, 미끄럼방지매트 등의 안전시설 설치와 1:1 안전교육이 진행된다. 어르신 비의도적 사망원인 1위인 낙상사고가 주로 가정에서 발생하는데, 이를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특히 주민기술학교 수료자가 집수리를 맡기 때문에 재능기부와 취업 연계 효과도 거두고 있다.

그 결과 지원 대상자의 영양 상태와 생활위생 상태가 좋아지고 안전하면서 쾌적한 주거환경이 조성됐다. 고독사 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고 민관 협력 안전망이 구축되는 효과도 거뒀다. 그리고 지역주민, 지역상인, 기술교육 전문가, 복지 전문가 등의 네트워크 형성과 지역경제 선순환과 상생에도 도움됐다.

수많은 복지정책과 사업이 있음에도 사회안전망이 흔들리는 이유는 현 복지지원체계가 다양한 복지 수요와 높아진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연결,관계의 형성, 공동체 회복이라는 휴먼네트워크를 강화한다면 보다 견고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양천구 의식주 레벨업사업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한 생활을 지원하는 동시에 이들이 지역사회 일원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

나라는 부유한데 국민은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많은 이들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제때에 충분한 지원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의식주와 같은 기초생활 지원체계는 개인에게 지급되는 현금 및 현물지원과 함께 지역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힐 필요가 있다.

이기재 양천구청장

구에서 제공받은 이용권으로 반찬가게를 찾아 밑반찬을 구매하는 구민 모습. 양천구 제공

사진 양천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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