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고 더딘 게 자연스러운 지방자치”

사람& 유재원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등록 : 2025-03-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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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유재원 교수. 한양대에서 행정이론, 정부 간 관계, 지방자치 등을 가르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의 민주적
태도와 참여 기술이 관건”
“지방의회와 집행부는 대립보다
협의로 주민 복지 증진해야”

올해로 한국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부활한 지 30년이 됐다. 1961년 군사정권에 의해 지방의회가 해산되면서 지방자치는 사라졌다가 30년 만인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했고 1995년에는 주민들이 직접 뽑는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이 등장했다. 중앙집권적 행정 체계에서 벗어나 풀뿌리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큰 전환점이었다.

주민 삶에 직접 기여하는 풀뿌리 조직인 기초단체도 이제 성숙기를 향해 가고 있다. 서울&은 지난 17일 유재원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를 만나 지방자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중앙정부의 하향식(톱다운) 접근 방식에 의해 제도화됐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중앙 정치권 주도로 도입된 탓에 현장의 세밀한 부분까지 체계화되기가 어려웠고, 풀뿌리 민주주의로 발전하기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고 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들이 민주적 태도와 참여 기술을 익히고 그 토대 위에서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강화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지역에 애착을 갖고 지역 문제에 참여하며 지방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잘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다고 주민참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주민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갖췄다. 주민소환, 주민투표, 주민참여예산, 감사 청구권 등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잘 구축했다. 그런데도 시민참여가 저조한 것은 주민들이 지역 공동체를 단순한 생활공간으로 인식하고, 정치적 공동체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이 소수 지역 인사들에게 집중되면서 전체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시민사회도 특정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집단이 참여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지방자치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실질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중앙 정치에 비해 지역에 대한 시민 참여가 저조한 이유에 대해 유 교수는 “지방정부의 권한이 제한적이거나, 주민들이 지방정부의 의사결정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지 못하거나, 민주적 가치와 행정의 효율성이 충분히 발휘된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다수당을 다르게 선택하는 교차투표 경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권자들이 집행부와 의회 간의 견제와 균형을 고려한 투표를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정부와 의회 간 갈등이 심화하면 오히려 행정이 마비될 수 있다. 따라서 지방의회와 집행부는 대립보다는 협의를 통해 실질적인 주민 복지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당 공천이 주민 갈등을 더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정당이 없다면 무소속 후보들이 출마했을 것이고, 그러면 내부 알력도 줄었을 거다. 당 내부에서 알력을 일으키는 건 주로 당협위원장 같은 인물들이다. 정당이 존재하니 싸움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당이 개입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투표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정당이 개입하면 이슈를 만들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 투표장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지방의원들에게 공천권을 주면서 투표율이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지방자치에서 시민참여가 결정적인 성공 요소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지방의회와 단체장 중심의 구조에서는 주민들이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 기능하기보다는 방관자적 입장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제도 운영을 넘어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지역을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닌 정치적 공동체로 인식하고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아파트 단지나 동네마다 주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방을 만들어 지역 과제에 대해 소식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유 교수는 우리 지방자치가 불안정하고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제도적으로 불완전하고 운영상 문제도 있지만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발전을 이뤄왔다. 요즘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동네 문제를 구청에 알리고 개선을 요구하면 대체로 신속히 반응하고 상당 부분 해결도 해주고 있지 않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서대문구와 구 의회의 갈등에 대해서 당장은 도무지 해법을 못 찾는 갈등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단체장에게는 조정할 힘이 있다. 갈등이 몇 년 동안 계속되거나 새로운 갈등이 자꾸 발생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당장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주민들이 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갈등이 심화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거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부득이한 학습 비용이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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