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나 정치인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이야기할 때 중국의 항우와 유방의 리더십이 자주 비교된다. 우수한 자질을 가졌으나 본인의 능력과 경험을 뽐내는 것에 치중했던 항우와 달리, 많이 배우지 못하는 등 불리한 조건을 가진 유방은 전투 초·중반 지속적인 열세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사람의 책략을 경청하고 적극 수용한 유방의 군대 역량은 높아졌으며 결국 기나긴 초한전쟁의 결과, 천하를 통일해 한나라 왕이 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유방의 경청하는 리더십은 현대사회에서도 매우 중요시된다. 특히 나와 같은 구청장, 혹은 자치단체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에게 경청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경청’이란 시민의 의견을 단순히 듣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데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정치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의 존재이다. 특히 현대와 같이 고도화된 민주주의 사회는 ‘시끄러운 소수’(Vocal Minority)의 의견이 마치 다수로 보이는 오류가 자주 일어난다.
물론 소수의 건설적인 의견이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좋은 사례도 있지만 이기적인 소수가 다수인 양 포장되고, 인기와 표를 위해 정치인들이 여기에 부합하면 소수만을 위한 정책이 펼쳐지기도 한다. 올바른 리더십은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이 무엇인지 적극 확인해서 정책 결정의 오류를 줄여나가야 한다. 물론 평상시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다수의 의견을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푸는 나만의 해결책이 하나 있는데 바로 ‘우문현답’이다. 우리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해답은 바로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좀처럼 먼저 의견을 말해주지 않는 그들에게, 내가 먼저 현장으로 찾아가 의견을 듣겠다는 정공법이다.
이러한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평소 구정에 참여하기 힘든 직장인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던 ‘직장인 S.O.S, 도봉구청장과 함께’라는 사업이다. 도봉구는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대에 창동역, 도봉역 등 관내 5개 역사를 찾아 직장인뿐만 아니라 학생, 청년 등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듣고 해결해왔다.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서는 민원함을 활용하기도 했다.
처음 지하철에 나섰을 때는 몇몇 구민께서 선거운동 기간이냐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선거 기간에만 잠깐 현장을 찾았다가 당선되고 나서는 얼굴 보기도 힘든 일부 정치인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을 접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2023년부터 꾸준히 현장을 찾다보니 점차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구청장이 또 나왔냐며 반갑게 인사해주시는 분도 있고, 바쁜 아침에 전달하지 못한 의견 쪽지를 저녁 퇴근길에 전달해주시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또한 최근에는 아침 등교시간에 초등학교를 찾아 학생, 학부모와 함께 격의 없이 만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아이들과의 친근한 소통을 위해 도봉구 캐릭터인 은봉이, 학봉이도 활용하는 등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한 학부모께서 노후한 울타리, 철조망 등 보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셔서 관련 부서에서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현장을 찾으며 느끼는 것은 언제나 하나이다.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가면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시민들이 다가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현장을 찾으면 어떤 것이 마음에 안 든다, 무엇이 불만이라는 쓴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껄끄러운 과정을 피해서는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없다. 올바른 리더라면 소통함에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소수와 다수의 의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최선의 정책을 펼쳐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오언석 도봉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