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정원이 필요한 이유

서울, 이곳 l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등록 : 2025-03-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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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울꿈의숲 입구

어렸을 적 우리 집엔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 수도가 있었고, 그 바로 뒤에 시멘트로 만든 네모난 수조가 있었다. 마당엔 광도 하나 있었고, 광 위로는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자그마한 옥상에 장독도 있고 빨래도 널었다.

그땐 작은 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 개도 두 마리나 키웠고 김장 배추도 절이고 참 많은 걸 했다. 마당에서 단연 아름다운 공간은 화단이다. 작은 마당 속 더 작은 화단이니 대단치도 않은 공간이었을 텐데 엄마는 그 작은 화단에 별의별 식물을 가지런히도 심으셨다.

맨 뒷줄엔 키 큰 해바라기를, 그 앞줄에 장미 나무와 목단을, 제일 앞줄에 채송화, 중간중간 맨드라미랑 샐비어, 그리고 봉숭아도 심었다. 넓지도 않은 공간에서 일 년 내내 무언가가 피고 졌다.

그 뒤로 이사 간 집은 2층짜리 상가주택이었는데, 그곳에서도 엄마는 마당 대신 옥상 정원을 멋지게 가꾸셨다. 딸기며 토마토, 상추에 고추까지 한 치도 놀리는 땅 없이 알토란같이 가꾸셨다.

오솔길

그땐 그 작은 마당이 예쁜 줄을 몰랐다. 옥상 정원을 이렇게나 그리워할 줄 그땐 몰랐다. 그저 티브이(TV)에 나오는 부잣집 잔디마당이 부러워, 이다음에 나도 어른이 되면 잔디마당 있는 집에 살아야지 생각만 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됐지만 나는 잔디마당은커녕 어려서 우습게 알던 손바닥만 한 마당도 없는 집에 살고 있다.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긴 하지만 아파트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걸 안다. 아쉬우나마 아파트 화단, 동네 어귀 소담한 공원에서 초록빛 숨을 충전한다.

전망대 가는 길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식물이 주는 위로, 동물과의 교감이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파트에서 식물을 키우다 보면 시들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이 물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물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람이라는 걸 화분 좀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안다. 식물은 바람이 통해야 튼튼해진다. 그게 어디 식물뿐이랴. 아파트의 답답한 공기는 식물만 시들게 하는 건 아닐 거다. 시들시들해진 심신이 생기를 얻으려면 바람 통하는 마당이 필요하다. 아파트 사는 도시인들에겐 공원이 마당이다. 공원은 도시민 공동의 정원이다.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북서울꿈의숲’은 과거 드림랜드가 있던 자리다. 어린 시절을 이 지역에서 보낸 이들에게는 추억의 놀이공원이다. 놀이공원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서울시가 인수해 넓은 녹지공원으로 부활했는데, 그 크기가 서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넓다.

호수가 있는 풍경

정원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프랑스 정원과 영국 정원을 인공미와 자연미로 구분하던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곳은 주변 산을 품고 원래 지형을 그대로 살려내 자연미가 뛰어나다. 어렸을 적 작은 마당에 수도도 있고, 광도 있고, 개도 두 마리나 키웠던 것처럼, 이 너른 공원에 호수가 있고, 산이 있고, 문화공간이 있다. 계절을 따라 옷 갈아입는 나무가 있고, 사슴이 있고, 부잣집 마당보다 더 넓은 잔디밭도 있다. 그 시절 마당이 해주던 기능을 고스란히 공원이 한다.

3월 하고도 중순이 훌쩍 넘었는데 때아닌 폭설이 내렸다. 하긴 한 번도 봄이 호락호락 그냥 온 적은 없다. 꽃망울 터지는 이른 봄의 공원을 기대하고 왔건만 대신 올겨울의 마지막 설경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하련다.

전망대에 올라 보니 어디가 북한산이고 어디가 도봉산인지 모르겠지만 흡사 고산지대에라도 온 듯 산세가 우람하다. 경사형 승강기를 타고 전망대 끝까지 올라갔는데 함께 탔던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여기가 어떻게 서울이야? 강원도지.”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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