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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의 선생님들과 대화 중
“학교 현장에 오라”는 말에 ‘학교살이’
수업 10분 만에 자는 학생 눈에 띄어
선생님은 반발할까 깨우길 주저
민주성 높은 혁신고가 이런데…
고민하고 토론하는 교직원 회의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엿봐
“상벌제 폐지로 지도 어려워” 주장도
교육감으로 ‘교육살이’는 이제부터
교육감으로 ‘교육살이’는 이제부터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11월27일 일주일간의 ‘학교살이’를 진행하는 관악구 인헌동 인헌고 2학년 5반에서 ‘법과 정치 협력수업’을 주제로 수업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지난 11월26~30일 관악구 인헌고에서 일주일간 해본 ‘학교살이’ 체험기를 보내왔다. 우리나라 교육감이 관할 고등학교에서 일주일간 출퇴근하며 체험 활동을 한 첫 사례다. ‘학교 속으로, 학생 곁으로 서울 교육 심층 탐방’을 모토로 진행한 이번 체험에서 조 교육감은 점심시간에 직접 배식도 하고, 학생들에게 ‘교육감이 생각하는 10년 후의 학교’를 주제로 수업도 했다. 편집자
일주일간의 ‘학교살이’는 나 개인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감을 통틀어도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 가게 된 계기는 이랬다.
얼마 전 고등학교 혁신부장들, 특히 혁신학교의 혁신부장들이 15명 정도 교육청에 오셔서 치열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고교 교육 정상화와 고교 수준의 혁신 교육 활성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제도적 대안들이나 정책적 보완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마침 말미에 “교육감이 교육청에만 있지 말고 학교 현장으로 와 선생님들의 어려움을 느끼기라도 해봐라, 그러면 아마 생각이 훨씬 달라질 것이다. 최소한 일주일이라도 해봐라!”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현장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는 의미에서라도 바로 시행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제도적인 사안들은 해결하려면 내부 검토와 정책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에, 학교 현장 방문은 교육감의 의지만 있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어떤 분은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살이’를 연상해서 모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오해는 없으시길 빈다).
복잡한 고려 없이 일주일간 학교로 가겠다고 했지만, 여러 일정을 폐기하거나 조정해야 해서 쉽지는 않았다. 인헌고도 교육감의 방문 요청과 관련해 투표까지 거쳐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등 신중한 태도였다. 왜 안 그랬겠는가. 학교로서는 학교의 내밀한 부분까지 노출되는 측면도 있고, 일각에서는 괜히 교육감이 와서 학교만 번거롭게 하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특별히 꾸미거나 연출하거나 하지 않고 ‘학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고 결의했다 한다. 이 자리를 빌려 그 결정에 감사드린다. 어쨌든 그렇게 학교살이가 시작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인지 꾸미지 않은 학교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1학년 4반 부담임 역할로 1학년 4반 교실에서 조회와 종례 시간에 얼굴을 마주했다. 당연히 사회나 역사, 국어 시간 등에는 실제 토론에 참관하기도 하고 수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년부 교사모임, 부별 교사모임, 행정실, 급식실 등 직원모임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지난 11월26일 점심시간에 인헌고의 한 학생이 배식하고 있는 조희연 교육감에게 다가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잠자는 학생, 아픈 선생님
인헌고 일주일 학교살이를 하면서 참관수업도 했고, 협력교사가 되어 수업을 직접 하기도 하였다. 참관수업이었던 미술 수업은 특별했다. 인헌고는 미술 거점학교라서 미술 시간에 학생들은 일종의 프로젝트 수업으로 자신이 구상한 것을 첨단 기기를 활용하여 제작까지 하고 있었다. 협력교사로 진행했던 수업 중에는 대학교수 시절 내 전공인 사회학과 관련된 1학년 ‘통합 사회’ 과목과 2학년 ‘법과 정치’ 과목도 있었다.
수업 준비는 매일 늦은 시간에 할 수밖에 없었다. 학급 종례를 마치고 학교에서 퇴근하면 교육청 업무를 정리해야 했다. 다음날 수업을 위해 컴퓨터 앞에서 늦은 시간까지 수업 준비를 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고 했지만, 당일 수업은 땀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수업 시작 10분이 넘자, 여기저기서 잠을 자는 등 딴 세상에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을 가르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마지막 날 강평회 때, 한 선생님이 “교육감을 봐주어서 조금 덜 잤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평소에는 더 많은 학생이 수업 시간에 딴 세상에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자는 원인도 각양각색이다. 전날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피곤을 못 이기는 학생,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정작 학교에서는 자는 학생, 기초학력 부진이 이미 굳어져 자포자기 상태에서 자는 학생, 부적응으로 산만하게 있거나 엎드려 자는 학생 등 원인도 다양하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교사들이 이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현실을 느끼게 된 것이다.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우면 학생이 반발할까봐 교사로서의 자괴감을 가지면서도 그냥 둔다는 것이다. 만일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울 때 학생이 반발해 약간의 몸 접촉이라도 있으면, ‘폭력’으로 고발하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밤새 아르바이트로 지쳐 자는데 깨우면 “선생님이 나를 책임질 수 있느냐”고 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내가 일주일살이를 한 인헌고는 혁신고등학교다. 일반적으로 혁신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학교 운영의 민주성이라는 점에서 훨씬 수준이 높고 수업 혁신과 생활 지도 등에서 훨씬 더 열정을 갖고 학생 지도에 임하는 교사들이 많다. 어쩌면 일반고에는 인헌고보다 더 엄중한 현실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선생님들은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들
학교살이 첫날, 학교 도서관에서 ‘토론이 있는 교직원 회의’가 열렸다. 책 냄새가 나는 도서관은 언제나 매력이 넘치며, 학창 시절로 나를 소환한다. 인헌고 도서관은 사람 냄새도 나는 곳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거의 60여 명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어, 교직원 회의 등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인헌고 일주일살이 동안 본 교직원 회의 주제는 ‘상벌점제 폐지 혹은 부활 그리고 휴대폰 휴대 금지’에 관한 문제였다.
인헌고는 상벌점제를 폐지하고 올해부터 ‘성장 쪽지’ 제도로 전환했는데, 생각만큼 잘 지켜지지 않아 선생님들이 생활 지도를 하거나 수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성장 쪽지를 활용하는 방식으로는 학생들에게 주는 구속성이 없어 생활 지도에 어려움이 많으니 상벌점제를 보완해서 부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물론 상벌점제를 부활하자는 입장 또한 단순히 처벌 위주의 상벌점제를 부활하는 방식이 아니라 ‘회복적 생활 교육’과 연계해 운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반면, 성장 쪽지 제도를 유지하되 성장 쪽지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보완하는 등 현재의 길을 더욱 진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개진되었다.
또 학교에서 휴대폰 휴대에 대한 ‘자율과 규제 문제’도 논의 자리에 올라왔다. 인헌고는 2018년부터 교실에서 휴대폰 휴대를 전면 허용하고, 자율 규약에 따라 수업 시간에 위반 사례가 나오면 자율 벌칙(1일 동안 휴대를 금지하는 방안 등)으로 제한한다.
그런데 다시 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자율 방식이 적용되는 현재 수업 시간에 휴대폰이 울려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손에 휴대폰을 달고 살아 수업에 집중이 어려운 학생도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당분간 지켜보는 것으로 논의가 매듭지어졌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문제 해결 방안을 다시 논의해보겠다고 한 말이 논의 과정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교직원 회의에 참관하면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보았다. 아프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학생들을 돌아보고, 교실을 살려보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교육의 희망이자 등불이라 생각하였다. 쉽게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부디, 과거형 상벌점제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회복적 생활 교육이 가능하고, 또한 교사의 수업권을 보장해 교실 붕괴를 막는 대안적 방식이 찾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깊게 가졌다. 그리고 그 소망은 선생님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을 때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지난 11월30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나승표 인헌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명예교사 위촉장을 받고 있다.
복합방정식으로 풀어야 할 학교 현실
교실을 참관하고 또한 선생님들의 다양한 조언들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교실이 많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을 절박하게 하게 되었다. 교실과 학교를 어떻게 학습 공간으로 재정립할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날 한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교사가 어떤 수업을 해도 무기력하고 소외된 아이들이 학교 현장에 많다는 걸 절실하게, 처절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학교 현장, 교실 현장이 무너져가는 것을 알게 된 중요한 순간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인헌고 일주일살이가 준 현장의 답, 즉 ‘학교 현장은 단일방정식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방정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답이 내겐 깊은 울림과 큰 가르침이 되었다.
나는 진보교육감으로서 학교 민주주의 확대와 학생 인권을 강조하고, 학교의 자율성, 자치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교육이 당연히 가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추구하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앞으로도 이런 진보적 가치와 방향성을 견결히 지키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의 부분적 실현만으로 교실 붕괴와 학교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고 섬세한 대안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로 깨닫게 되었다.
인헌고 일주일 학교살이가 끝났다. 그러나 ‘학교살이(居)’는 끝났을지 모르나 교육감으로서 ‘교육살이(生)’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학교 현장에서 보고 들었던 무수히 많은 숙제가 노트에 한가득이다.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 업무 인력을 더 배치해야 하는 문제, 3학년 2학기 수업 정상화, 교문에서의 용의 복장 지도와 관련한 갈등 해결 방안, 학교폭력 관리 업무에서 학교의 ‘해방’ 필요성, 학생의 다양화에 대응하여 교사도 다양화될 수 있도록 임용시험을 개선하는 문제, 수업 과정에서 독서와 토론을 더욱 긴밀하게 연계하는 방안, 교원능력개발평가 문제, 민주시민 교육이나 학생자치 시간을 확대하는 문제, 혁신교육과 현행 대학입시 준비의 긴장에서 발생하는 더 많은 입시 준비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문제, 학부모든 구성원이든 ‘목소리 큰’ 한 사람의 목소리가 전체 공동체를 교란하는 경우의 해결 방안, 교사들의 회계 처리 부담을 완화하는 문제, 급식실의 대체 인력 조달 문제,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더욱 다면적인 지원 방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적힌 수첩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짐해본다.
‘일주일의 학교살이(居)가 100년의 교육살이(生)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겠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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