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 반납하면 선불 교통카드 드려요”

양천구 고령 운전자 면허증 자진반납제 서울서 첫 시행

등록 : 2019-01-1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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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양천구 신월4동주민센터에서 이양현씨가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령자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 신청서를 쓰고 있다. 양천구 제공
지난 2일 양천구 신월4동주민센터에서 이양현씨가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령자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 신청서를 쓰고 있다. 양천구 제공
240명에게 10만원 교통카드 지급

100여명 문의전화, 1주간 50여명 신청

고령자 교통사고 10년새 1.5배 증가

다른 구에서도 반납 제도 시행 관심

지난 2일 양천구 신월4동주민센터에서 이양현씨가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령자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 신청서를 쓰고 있다. 양천구 제공

지난 2일 양천구 신월4동주민센터에서 이양현씨가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령자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 신청서를 쓰고 있다. 양천구 제공

양천구 신월4동에 사는 이양현(80)씨는 동갑내기 친구 주정웅씨와 함께 새해부터 운전대를 잡지 않기로 했다. 최근 고령 운전자들의 교통사고가 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운전을 계속하면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씨는 집에 차가 있어서 지난해까지는 아주 가끔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7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감각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눈도 침침해지고 운전대를 돌리는 것도 예전 같지 않았다. “운전에 자신이 없어지던 차에 양천구의 운전면허증 반납 지원 사업 소식을 듣고 결심을 했어요.”

이들은 ‘고령자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신청하기 위해서 새해 첫 업무일인 2일 양천구청으로 향했다. 신청지가 구청이 아닌 동주민센터라는 안내를 받고 다시 신월4동주민센터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장 먼저 신청하는 것이리라 기대했는데 벌써 한 명이 신청하고 갔단다. 두 사람은 주민센터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반납 신청서를 썼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10년 새 1.5배 늘었다. 고령자 운전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대비책 마련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새해부터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75살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과 적성검사 주기는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된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반납을 유도하는 정책은 지방의 일부 자치단체가 이미 펼치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양천구가 처음으로 조례를 마련해 올해부터 시행에 나선다.

양천구는 지역 주민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인센티브로 예산 범위 안에서 선불 교통카드(10만원, 1회)를 준다. 지원 대상은 65살 이상 2만5천여 명이다. 접수 첫날부터 구청의 담당과(어르신장애인과)와 동주민센터에는 100여 통의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면허증을 반납하면 어떤 혜택이 있나’ ‘절차는 어떻게 되느냐’가 주된 내용이다. 접수 일주일 동안 50명가량이 신청했다. 대부분이 70대 후반 이상의 어르신들이다. 면허증을 반납하고 차를 처분하면 자동차 보험료·세금 등을 내지 않는 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의 운전면허증 반납 지원 사업은 주민들과 소통하다 만들어졌다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 지난해 11월 고령 친화 도시 조성을 위한 원탁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른 참석자가 부산시 사례를 전했다. 부산시는 지난해 7월부터 65살 이상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교통카드(10만원)와 음식점·목욕탕 등에서 할인받을 수 있는 ‘어르신 교통사랑 카드’를 줬다. 예상(400명)보다 10배가 넘는 4800명이 신청했고, 이 정책으로 고령 운전자가 내는 교통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주민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였다. 양천구에서도 검토하던 정책이긴 하지만 고령자 역차별, 이동권 제한이라는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100여 명의 참석자 대부분이 서울은 대중교통이 잘되어 있어 실시해볼 만하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주민 의견을 모은 뒤 구는 조례를 제정하고 예산을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18일 ‘양천구 교통안전 증진 조례’를 제정해 공포하고, 인센티브 제공을 위한 2500여 만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대상 연령은 대부분의 어르신 관련 법과 조례의 기준인 65살 이상에 따랐다. 강제가 아닌 ‘자진’ 반납이어서 연령대는 넓혀놓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동주민센터에서 신청은 상시 접수하고, 반납 처리 일자를 휴대폰 문자로 알려준다. 정해진 날짜에 면허증을 갖고 동주민센터에 가면 된다. 도로교통공단의 강서운전면허시험장 담당자가 동주민센터를 돌며 반납 처리 업무를 한다. 구는 운전면허증 졸업 제도의 의미로 운전면허 졸업증서를 참여자들에게 준다. 10만원 선불 교통카드는 추첨으로 상·하반기 각 120명에게 줄 예정이다. 차가 있는 사람에게 우선 줘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 한다.

올해 사업 효과를 살핀 뒤 양천구는 인센티브 제공 확대를 검토할 계획이다. 김수영 구청장은 “인센티브 제공으로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어르신들의 교통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다른 자치구에서도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정책에 관심이 늘고 있다. 지난 12월 도봉구의회 정례회 5분 발언에서 박진식 구의원은 부산시와 양천구의 사례를 언급하며 도봉구에서도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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