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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월 30일, 개관을 앞둔 장충 체육관 앞 눈 내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경기장 앞은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대통령 취임식이나 전당대회가 열렸고 그때마다 사람들로 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2016년 5월 20일, 2014년 새로 개장한 장충체육관의 모습. 현대식으로 지은 경기장에서 작년 5월25일 김일의 제자였던 이왕표 선수가 은퇴 경기를 했다. 서울시, 기억발전소 제공
그 옛날 거실 풍경에는 중요한 장면에서 꼭 끊기는 텔레비전과 그를 열심히 두드리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며 화면을 지켜보는 가족이 있었다. 1960~70년대는 어제 경기를 모르면 간첩 신고를 하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전 국민이 스포츠에 빠져든 시기다. 그 인기를 가능케 했던 일등공신 중 하나는 최초의 실내체육관이었던 장충체육관이다. 냉·난방 시설을 갖춘 덕에 농구, 권투, 배구 등 다양한 실내경기가 밤낮없이 열렸는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레슬링 경기 날에는 8000여 관중석이 꽉 들어찼다.
장충동 토박이 박태환(89)씨가 꼽은 최고의 레슬링 경기는 1967년 4월29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WWA 헤비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이다. 미국의 마크 루인을 상대로 전반전 고전하던 김일이 후반전 기습 박치기로 2대1로 어렵게 꺾은 날인데, 승리에 취한 친구와 체육관 후문을 나오며 박치기 흉내를 내다 서로의 이마에 큰 멍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뜨거웠던 레슬링 열기도 식고 김일 선수도 고인이 되었다. 경기가 열리던 장충체육관은 2014년 12월 새단장을 시작해 2015년 1월 현대식으로 개장했지만 기억 속 옛 모습은 사라지고 사진으로만 남았다.
박소진 기억발전소 기획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