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니 안 보이던 게 보여요” 채현일 구청장의 도보행정

공영주차장 확보·쓰레기 제때 수거·도시 미관 정비 등 효과

5월19일 영등포구 신길6동 새마을금고 옆.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우산을 쓴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이 보도 바로 옆 노상 공영주차장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20여 대의 차량이 빼곡히 주차한 이곳(길이 40m, 폭 7m, 넓이 277㎡)은 지난 2월까지만 해도 20년 넘게 쓰레기 더미가 산을 이루고 있었던 사유지였다. 땅주인이 비록 울타리를 쳐서 쓰레기 더미를 감추려고 했지만, 고약한 냄새가 흘러나와 인근 주민이나 행인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채 구청장이 지난해 11월 신길6동에서 아침 청소를 하다가 이런 내용을 확인하고, 구청 담당 부서에 이곳을 공영주차장 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담당 부서는 땅주인에게 일단 과태료 부과와 강제집행을 알리는 안내문을 발송한 뒤 쓰레기 수거와 토지 무상 사용 협약식을 거쳐 원만하게 쓰레기장을 공용주차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박래찬 영등포구 청소과장은 “쓰레기가 얼마나 많던지 청소차 12대 분량, 20톤을 수거했다”고 귀띔했다. 청소 뒤 구에서는 시멘트 포장을 하고 땅주인이 건물 신축 등을 위해 반환을 요구할 때까지 공영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현장을 다니다보면 주차 문제 때문에 난리인데, 10여 대 주차할 공영주차장을 만들려 해도 50억~70억원이 들죠. (도보 행정으로) 빈땅이나 자투리땅 등 사유지를 활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영주차장으로 활용하면 구청 재량으로 비과세 혜택을 줍니다.” 채현일 구청장은 지금까지 조성된 자투리땅 주차장은 7곳 85면이며, 이달 중 도림동 138-49 등 2곳에 26면이 추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채 구청장의 이날 현장 방문은 ‘영등포를 걷다!’라는 도보행정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해당 동장과 청소과장, 등 구청 담당자들과 함께 골목 곳곳을 누비면서 청소·쓰레기 처리 상태를 확인하고, 공영주차장으로 활용할 땅도 찾아보려는 뜻이다. 보통 3개 동을 묶어, 6~8㎞ 거리 안의 주요 현안이 있는 곳을 2시간 남짓 걷는 ‘영등포를 걷다!’ 프로그램은 3월16일 영등포 수변 둘레길 8.2㎞를 시작으로 5월19일까지 6차례 했다. 6월에는 8일(당산1동·문래동·양평1동), 15일(여의동·당산2동·양평2동) 일정이 예정돼 있다.

채 구청장은 도보행정을 하는 이유를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쓰레기 처리와 도시 미관, 주차장 확보는 도보행정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설명한다. 지난달 19일 ‘영등포를 걷다’ 행사에서도 골목 곳곳 전신주에 붙은 헌 옷 수거함을 보고 “너무 많고 모양도 칙칙하다”며 연말까지 대폭 줄이고 모양새도 작고 보기 좋게 개선할 방안을 찾도록 지시했다.

또한 영등포동의 상상어린이공원 클린하우스 쓰레기 수거함에 쓰레기가 넘쳐 있는 문제를 지적하며, 박래찬 청소과장에게 해결 방안을 찾으라고 했다.

지난달 31일 영등포구청 안에서는 ‘도림, 신길 5·6동 영등포를 걷다-현안사항 처리결과 검토보고회’가 열려 “클린하우스 주변 공간 부족으로 재활용수거함 추가 설치가 어렵기 때문에 수거 횟수를 늘리는 등 과다 배출 장소 기동반을 편성해 토·일요일 집중 수거 시스템을 개선해 운영하겠다”고 채 구청장에 보고했다.

“신길 벚꽃거리에 돌의자 61개 설치된 것 지나쳐”

누가 봐도 통행 방해

구청 검토회의서 철거키로

지난달 19일 도보행정에서는 신길6동 신길 벚꽃거리(대방천로14길) 보행로에 돌의자가 지나치게 많이 설치돼 걸림돌이 된다는 유광순 신길6동장의 보고를 받았다. 채 구청장도 2007년 폭이 좁은 보행로 350m에 정사각형 돌의자(40×40×40㎝)가 61개나 설치된 것을 보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것 같다”고 지적했다.

31일 검토보고회에서 영등포구 푸른도시과에서는 “신길6동 벚꽃길 조성 때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변경하면서 차량 통행과 주차 등의 문제로 돌의자를 설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로과는 현장 점검 결과 “돌기둥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부합하지 않은 비규격 시설물이며, 보행로의 유효 폭(2m) 또한 설치 기준에 미달하는 지역으로, 안전한 보행로 확보를 위해 철거함이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다.

초등학교 주변의 통학로 안전 확보를 위한 통학로 정비 문제도 채 구청장 도보행정의 주요 관심사다. 채 구청장은 이날 “대길초등학교 후문에 보행로 없이 아파트 담장과 차도가 바로 붙어 있어 학생들 안전을 위협한다”고 우려했다.

영등포구에서는 임시 대책으로 보행로를 만들기 위해 일방통행 시행을 검토하고, 이를 위한 주민 설문조사를 이달 중에 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인근 신길 2차우성아파트 재건축(서울시 6월 중 정비계획 시행·2023년 준공)을 계획 중인 점을 고려해 그즈음에 보행로가 설치되도록 서울시에 검토 의견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9시부터 11시 30분까지 두 시간 반쯤 다목적 배드민턴 체육관에서 보라매역까지 6.5㎞의 비 오는 길 위에서 거론된 지적 개선 검토 사항은 7가지였다. 그중에는 살레시오수녀원의 민원도 포함돼 있다. 채구청장 일행이 살레시오수녀원을 방문하자 10여 명의 수녀가 나왔다. 인근 신길12재정비촉진구역 준공(2020년 예정) 이후 소음과 사생활 침해를 대비해 방음벽 설치와 현재 살레시오 문화관의 용도를 복합시설에서 종교시설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영등포 구청장의 도보행정은 단체장이 현장의 문제점을 발로 뛰며 파악하고, 바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검토회의를 거쳐 1~2주 내 해결한다는 점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유광순 신길6동장은 “현장은 아무래도 그 동네 동장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 동장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많은데, 구청장이 와서 눈으로 확인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하니 일 처리가 빠르다”며 “구청장이 열정이 많다”고 했다.

채 구청장의 현장 중시 행정은 올 3월7일부터 매주 영등포구에 있는 동주민센터를 방문하는 프로그램 ‘찾아가는 탁트인 구청장실’에서도 확인된다. 아침 8시에서 현장을 방문해 해당 지역 직능단체장과 30분간 청소를 함께하며, 주민센터에서 온 주민과 만나기도 한다. 또 구립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고 동주민센터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소통한다.

채 구청장은 “‘탁트인 구청장실’ 행사로 해당 동의 현안을 파악한 뒤, 도보행정 때 현장을 확인하고 해결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고 말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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