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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품 50% 주민 직접 분리 배출” 은평구-녹소연 실험 눈길

등록 : 2019-11-1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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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소연 5월 ‘새 모델 제안’에 은평구 ‘거점 모아모아사업’ 실행안 만들어

갈현2동 내 10개 거점에 ‘현장 리더’ 4명씩 배치…“골목, 눈에 띄게 깨끗”

지난 4일 오후 5시 은평구와 녹색소비자연대가 공동 주최한 ‘갈현2동 재활용품 거점 모아모아사업’의 제9거점에 골목 주민들이 스스로 재활용 쓰레기를 가지고 나와 분리 배출을 하고 있다. 12월9일까지 운영되는 ‘재활용품 거점 모아모아사업’은 주민 참여율을 높인 새로운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 모델이다. 은평구는 이번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 2020년 이 모델을 은평구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예정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어, 이 화장품 용기는 안 돼요.”

지난 4일 오후 5시 은평구 갈현2동 갈현로33길. 재활용품 이동식 분리수거대 앞에서 ‘현장 총괄 리더’인 박현숙(54)씨가 주민 김유성(61)씨를 가로막았다. 김씨가 플라스틱과 유리 재질을 혼합해 만든 화장품 용기를 플라스틱 분리함에 넣으려 하자 박 총괄 리더가 말린 것이다. 두 사람 뒤 건물 벽에 붙여놓은 플래카드에는 ‘갈현2동 재활용품 거점 모아모아사업-제9거점’(은평구-녹색소비자연대 공동 주최)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사실 김씨뿐 아니라 현장에서 재활용 분리를 책임지는 총괄 리더인 박씨도 이렇게 재활용 쓰레기를 ‘종이, 우유팩, 캔, 병, 스티로폼, 페트병’ 등 9개로 세분해 배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1995년 1월1일부터 생활쓰레기를 종량제봉투에 버리게 되면서 갈현2동도 당시부터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해왔다. 하지만 하나의 큰 봉투에 모든 재활용 쓰레기를 한꺼번에 버리는 방식이었다. 아직도 많은 단독주택 밀집지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배출 방식은 재활용 쓰레기를 최종 처리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만든다. 쓰레기 수거 업체가 골목마다 돌며 집 앞에 내놓은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한 뒤, 다시 또 한 번의 선별 작업을 거쳐야만 비로소 재활용 쓰레기들이 플라스틱, 종이, 스티로폼 등 개별 재활용 업체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관상·위생상 문제도 있다. 보통 재활용 쓰레기봉투의 부피가 큰 탓에 이를 자신의 집 앞이 아니라 골목 전봇대 등에 ‘무단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활용 쓰레기 분리 처리는 우리나라 환경 차원에서 중요한 일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전체 쓰레기는 하루 41만4626t이다. 연간 1억5134만t 정도가 배출되는 셈이다. 이를 모두 10m 깊이로 구덩이를 판 뒤 묻으려면 15.1㎢의 땅이 필요하다. 2.9㎢에 이르는 여의도 면적의 5배(14.5㎢)가 넘는 규모다. 그런데 이 경우 실제 매립에 필요한 땅은 여의도의 40.6% 규모(1.18㎢)다. 쓰레기 재활용률이 2017년도 기준 86.4%에 이르기 때문이다. 쓰레기 소각률 5.8%를 제외하면 실제 매립률은 7.8%에 머문다. 우리나라 쓰레기 재활용률은 독일에 이어 세계 2위다.

이런 재활용 쓰레기 처리의 중요성 때문에 서울시에서도 2013년부터 ‘재활용 정거장’ 사업을 해오고 있다. 재활용 정거장 사업은 주민 150가구당 이동식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 한 곳씩을 설치한 뒤, ‘자원관리사’라는 이름의 관리인이 하루 한 시간 정도 재활용품의 종류별 선별작업 등을 돕는 사업이다. 현재 자원관리사 선정은 상당 부분 노인 일자리와 연계해 진행하고 있다.

재활용 정거장 사업은 2013년 성북·구로·노원·강동 4개 구 112곳으로 시작한 뒤, 2018년 21개 구 4717곳에서 운용되는 등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민원도 적지 않았다. 자원관리사들이 보통 하루 1~2시간만 관리하는 탓에 무단투기 등에 대한 불만이 계속 제기됐다. 또 재활용 정거장에 음식물 찌꺼기 등이 버려지는 등 청결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재활용 정거장 사업을 시행하다 2017년에 중지한 자치구가 생기기도 했다.

월 15만원 안팎인 재활용 정거장 관리인의 수당을 높여준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 실제로 금천구 독산4동의 경우 2016년부터 관리인 월 수당을 40만원씩 지급해왔다. 관리인의 이름도 도시에서 자원을 캐낸다는 의미에서 도시광부로 정했다. 강신환 독산4동 주민자치회장은 “도시광부가 독산4동의 59곳 재활용 정거장을 매주 화·금 오후 3~9시에 관리를 한다”며 “동네가 깨끗해졌고, 다른 동에서도 독산4동처럼 해달라는 곳이 많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산4동 모델을 확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산 탓이다. 독산4동의 경우 도시광부에게 지급되는 돈이 상당한데, 다른 4천 곳이 넘는 재활용 정거장 자원관리사에게 모두 이런 수준으로 수고비를 지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평구 불광동에 거주하는 박인례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가 지난 5월 은평구청 자원순환과를 찾았다. “현재의 재활용 정거장의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재활용 쓰레기 처리 모델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었다. 정승욱 자원순환과장은 박 공동대표의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모델의 핵심은 ‘현재 모델보다 비용은 절감하면서도, 참여율은 높이는 것’이어야 했다.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정 과장은 답답한 마음에 “재활용 정거장이 있는 골목을 비롯해 동네 골목들을 끊임없이 걸었다”고 그 당시를 회상한다.

그러다 문득 ‘50% 룰’이 떠올랐다고 한다. 주민이 자율적으로 나서 배출한 뒤 선별까지 마친 재활용 쓰레기 목표량을 100%가 아니라 50%로 상정하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정 과장은 “맞벌이 부부도 많은 상황에서 100%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과 선별을 목표로 하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며 “50% 정도를 주민들이 정확하게 분리 배출·선별할 수 있다면 재활용 쓰레기 수거 뒤 선별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활용품 배출 월요일에 집중하고 현장리더가 도와…효율 높여

오는 12월까지 10회 동안 시범 운영

서울시 ‘재활용 정거장’ 개선 가능성

“내년 구 전체 확산 여부 적극 검토”

지난 5월 ‘더 나은 재활용 쓰레기 배출·수거 사업’을 처음 제안한 박인례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왼쪽 둘째)와 이 제안을 받아 ‘재활용품 거점 모아모아사업’이라는 새 모델을 만들어낸 정승욱 은평구 자원순환과장(왼쪽 넷째)이 박현숙 제9거점 총괄 리더(맨 왼쪽) 등 현장 리더들과 함께 주민들의 재활용품 분리 배출을 돕고 있다. 정용일 기자

50%를 분리 배출해도 재활용 업체와 직접수거 계약을 체결해, 재활용 쓰레기 수거 뒤 선별에 들어가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은평구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선별 등에 50억원 정도의 예산을 쓰고 있다. 정 과장은 “이렇게 줄인 예산으로 재활용 분리 배출에 참여한 구민들에게 수고비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갈현2동에서 시행하고 있는 ‘재활용품 거점 모아모아사업’은 이렇게 탄생했다. 갈현2동에서 시범사업을 하는 것은 이 동네가 은평구의 대표적인 단독주택 밀집지역이기 때문이다. 모아모아사업은 갈현2동 안에 10개의 거점을 정한 뒤, 매주 월요일 오후 5~9시에 재활용 쓰레기를 주민들 스스로 분리 배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활용 쓰레기는 월요일에 모아 배출하되 생활쓰레기는 기존처럼 수요일과 금요일에도 배출할 수 있도록 했다. 월요일에는 거점마다 분리 배출을 돕는 현장 리더가 총 네 명으로 구성된다. 네 명 중 한 명이 총괄 리더가 돼 전체 분리 배출을 이끌어간다. 이들 현장 리더들에게는 시간당 1만원의 수고비가 지급된다. 정과장은 현장 리더를 4인 1팀으로 구성한 데 대해 “함께 하면 분리 배출의 효율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이후 마을 공동체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과장은 또 “지금은 녹색소비자연대가 현장 리더 사례비와 함께 분리 배출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종량제봉투를 제공하는 비용을 내고 있다”며 “사업이 확대되면 이 두 가지를 재활용 쓰레기 배출·선별 비용 감소분에서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용품 거점 모아모아 사업’ 참석 카드

은평구 자원순환과에서는 제도가 잘 운용될 수 있도록, 분리 배출 시간 외에 배출할 경우 단속을 강화하고, 배출 거점이 어두우면 가로등을 설치해주는 등 행정 지원도 크게 강화했다.

현재 은평구와 녹색소비자연대는 10월7일부터 12월9일까지 10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오후 5~9시 거점형 분리수거 방식을 시범실시하고 있다. 지난 4일은 이 가운데 5번째 시범실시 날이었다. 갈현2동에서 40년을 살고 있는 신만순(68)씨는 “재활용 모아모아사업을 진행한 이후 골목이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해졌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의 참여도와 반응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첫 주인 10월7일에는 150여 명이 참여했지만, 꾸준히 늘어 4주째인 10월28일에는 700여 명이 참여했다. 제9거점 총괄 리더인 박씨는 “녹색소비자연대와 은평구가 함께 새로운 모델을 만든 데 대해 주민으로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시범사업 종료 뒤 이 사업이 계속될지에 대한 우려의 마음도 드러냈다. “10번 시범실시 뒤 ‘재활용품 거점 모아모아 방식’의 분리수거를 못하고 예전으로 돌아갔을 때 주민들의 실망감은 더 커질 것 같아요.”

이에 대해 정승욱 자원순환과장은 “시범사업이 끝난 뒤 내년에 재활용품 거점 모아모아사업을 은평구 전역으로 확대할 수 있을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정 과장이 밝혔던 ‘50% 룰’을 통한 청소비용 절감은 은평구 전체로 이 모델이 확대됐을 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내용이다. 2020년 봄 은평구가 현재의 서울시 재활용 분리수거 모델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을 구 전체로 확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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