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학교 수료생들, ‘닫힌 마을’을 ‘행복 동네’로 바꾸어내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수상 후보작 ④ 강서구 방화동 ‘행복한 마을모임’

등록 : 2019-11-28 16:17 수정 : 2019-11-2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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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마을’ 같았던 영구임대아파트

일반아파트 주민과 소통 없던 그곳에

2013년 ‘도란도란 마을학교’ 시작한 뒤

수료생 중심으로 마을 변화 이끌어가


기수마다 이름 갖고 다양한 활동 벌여

화단 가꾸기, 차 나눔, 영화상영 진행

2016년엔 주민 연합모임까지 만들어


이웃 단지도 참여하는 마을 모임 ‘척척’

강서구 방화3동 방화2-1단지 에스에이치(SH)빌아파트 주민 모임들의 연합 모임인 ‘행복한 마을모임’ 회원들이 21일 단지 내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앞줄 왼쪽 넷째가 김지연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장, 다섯째가 양명숙 주민대표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8월30일 ‘행복한 마을모임’(연합모임) 단체 카톡방이 왁자지껄했다.

강서구 방화3동 방화2-1단지 에스에이치(SH)빌아파트 내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됐던 주민교육 ‘도란도란 마을학교’를 마친 7기 마을 활동가들과 기존 교육을 수료한 주민(마을 활동가)들이 함께 단합대회를 했기 때문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지만 가깝게 지내지 못했던 이웃들이 물풍선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웃고, 수박씨 뱉기 시합을 하는 등 흥겨웠던 체육대회였다.

방화2-1단지 내 주민 모임인 ‘행복한 마을모임’과 방회2종합사회복지관은 매년 어르신과 주민들을 위한 마을 잔치를 준비한다. 5월 어버이날을 전후해 한 번, 9월 추석 즈음에 한 번 등 모두 두 차례다. 서로 서먹한 주민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조금 더 가까워지고 인사라도 나누는 사이가 되기를 바랐다.

늘 단지 내 마당에서 어르신들을 모시고 잔치를 했지만, 올해 하반기는 거동이 불편한 이웃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집에 홀로 계시며 거동을 못하는 주민들에게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을 전하고 안부도 물었다. 연합모임 주민들과 올해 7기 주민교육을 수료한 주민들이 힘을 보태 모둠전을 부치고 잔치 음식을 많이 준비했다.

강서구 방화3동 방화2-1단지 아파트는 영구임대아파트로 독거노인, 노인부부, 장애인, 한부모, 조손가정 등 1563가구가 거주한다. 전체 가구의 67%가 저소득가구로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주위에 있는 일반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를 지나다니지도 않으려 했고,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꺼렸다. 아이들이 차별받는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참 미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분들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우리 단지 내 아이들 놀이터 앞에 있는 ‘5초소’에서는 대낮에도 술판이 벌어지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도박판이 벌어지며 노상 방뇨, 싸움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2013년에 우리 마을의 문제를 주민이 관심을 가지고 주민의 힘으로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 방안으로 양육자 모임 주민들과 의견을 모아 ‘아친소’(아이들과 친하게 소통하는 모임) 주민 조직을 만들었다.

우리 단지가 ‘도시의 섬’처럼 외부와 고립된 마을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왕래하는 마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더 나아가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다.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 구분 없이 가족이 모여 서로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체험 활동을 하고 함께 영화를 보는 ‘무지개 영화제’를 열었다. 또한 아이들이 경제관념을 갖도록 단지 주민과 외부 주민이 가정 단위로 참여하는 ‘아친소 벼룩시장’도 열었다. ‘오물딱 조물딱’은 아이와 엄마가 함께 참여하는 놀이와 만들기 체험 활동이고, ‘방화습지 탐방’은 우리 아파트가 위치한 지역인 강서구의 유일한 습지에서 아이들에게 환경생태계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활동이다. 이처럼 ‘아친소’가 계획하고 실행한 프로그램에 아이와 부모들이 참여해 함께 어울려 사는 이웃이라는 것을 느끼는 마을이 됐다.

2013년부터 방화2복지관에서 주민 역량 강화를 위한 주민교육 ‘도란도란 마을학교’를 시작한 것이 큰 힘이 됐는데, 해마다 주민 활동가가 생겨났다. 당시 1기 때는 처음이라 주민 조직화가 힘들 것 같아 단지 내 각 동 통반장을 주축으로 교육했는데 활동 모임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2014년 2기 교육생들이 ‘나너사랑’ 모임을 만들어 복지관 2층에서 텃밭 가꾸기를 시작했다. 복지관 1층에 있는 어린이집 화단에서는 원아들에게 채소를 심고 가꾸는 방법을 알려주며 어린이집 아이들과 세대 간 소통을 하고 있다. 또한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전을 부쳐 나누고, 가을에는 배추도 심고 수확해 김장을 손수 담가 홀몸 어르신 댁에 전하고 있다.

2015년 3기 수료 주민 모임 ‘나누리’는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문제의 5초소 앞이 밝은 곳으로 변해야 문제를 일으키는 주민들의 인식도 바뀐다는 생각을 갖고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5초소 앞에서 차 나눔을 했다. 우리 단지에 대한 외부 주민들의 생각도 달라지길 바라며 매주 마을 주민들과 안부를 묻고 있다. 또한 마을의 화제와 복지관에서 찾아내지 못한 어려운 이웃의 사례를 주민이 직접 전해주며 주민과 복지관의 소통 창구 구실도 한다.

그리고 단지 내 화단을 만들어 꽃을 가꾸며 ‘5초소’가 주민들이 예쁜 꽃을 보며 차 한잔 나누고 담소하는 주민 만남의 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에 척사대회를 기획해 주민들과 윷놀이를 하고 있다. 올해는 이웃 주민 중 가족 3대가 팀을 이루어 준우승하는 등 방화2-1단지 주민뿐만 아니라 이웃 단지 주민도 참여하는 행사가 됐다. ‘무지개 같은 하루’는 마을 어르신들이 추억을 회상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로 <미워도 다시 한번>과 같은 추억의 영화를 상영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6년 4기 주민 모임 ‘행복 초인종’은 이름에 걸맞게 집에만 계시는 우울하고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찾아 동네 공원 산책 등 외부 나들이 활동을 했다.

주민 모임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환경이 바뀌자 주민들도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됐다. 주민교육을 안 받았지만 주민 모임에 들어와 활동하는 주민이 생겼다. 이렇게 주민 모임이 활발해지자, 주민 모임끼리 서로 소통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2016년 주민 모임의 연합모임인 ‘행복한 마을모임’을 만들었다.

연합모임은 주민 모임 대표들만 모이는 소수 모임이 아니라 모든 주민 활동가가 모여 자기 의견을 내는 장이다. 모두가 생각이 같을 순 없어서 가끔 의견이 모이지 않고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하고 작은 다툼이 생기기도 하지만 연합모임에서 나온 의견으로 마을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평가한다.

연합모임은 매월 정기적으로 만나 회의하고 마을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민 리더 교육도 받고, 성공적 주민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도 탐방해 성공 사례를 우리 마을에도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5기와 6기 ‘도란도란 마을학교’ 수료 주민들은 기존 주민 모임으로 흡수됐고, 올해 수료한 7기 주민들은 ‘정다운 두리두리’ 모임을 만들어 단지 내 청소를 하며 내년부터 진행할 새로운 마을 일을 준비하고 있다.

방화2-1단지는 임대아파트 주민들이 마을 문제를 주민 스스로 힘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곳이다. 주민들이 이웃과 함께 소통하고 서로의 어려움을 해결하며 ‘나보다 더 아픈 이웃을 배려하는 행복한 동네’를 만들어가고 있다. 주민 모임에 참여하는 주민 스스로도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고 문화적으로 풍성해졌고, 이웃 간에 정이 생겨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한다.

‘행복한 마을모임’ 마을공동체는 앞으로도 방화2-1단지를 서로가 배려하며 함께하는 마을, 서로의 존중 속에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 속에서 지속 가능한 마을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2013년부터 마을 변화 위해 다양한 모임 만들어 활동

인터뷰 |양명숙 주민대표

“하루는 길을 가는데 하늘에서 소반이 떨어져 깜짝 놀랐죠.”

21일 만난 방화2-1단지 ‘행복한 마을모임’ 양명숙(51) 대표는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가다가 겪은 황당한 일에 대해 얘기해줬다. 2003년 강서구 방화동 방화2-1단지 에스에이치(SH)빌아파트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1991년 지어진 방화2-1단지는 임대아파트로 당시만 해도 단지 내에서 술판과 도박판이 벌어지며, 노상 방뇨와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학교 논술반 수업 내용을 봤더니,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이마트에서 장난감을 훔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보라’는 내용이더라고요. 학교가 이 정도면 주위 사람들 생각은 어떻겠어요.”

양 대표는 “모래내 살다가 이사 와서 보니 환경이 너무 안 좋았다”고 했다. 특히 “아이들 가슴에 임대아파트라는 낙인이 찍히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런 환경을 개선하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양 대표는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된 뒤, 다양한 주민 모임에 참여하면서 “마을이 바뀌면 어떤 모습일까” 고민했다. 이후 적극적으로 나섰더니 복지관에서 마을 모임을 제안해, 2013년 아친소(아이들과 친하게 소통하는 모임)를 만들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영화를 보는 무지개 영화제를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013년부터 아파트 단지 내 있는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도란도란 마을학교’도 진행했다. 해마다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주민 모임을 만들었다. 2기(나너사랑), 3기(나누리), 4기(행복 초인종)가 모임을 결성해 활동해오고 있고, 올해 7기(정다운 두리두리)가 모임을 결성했다.

“주민 모임끼리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죠.”

양 대표는 2016년 주민 모임의 연합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친소’와 ‘도란도란 마을학교’를 수료한 주민 모임, 그 외 자생적인 주민 모임을 연합해 ‘행복한 마을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50여 명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행복한 마을모임’ 회원들이 아파트 앞에서 바자회를 열었다. 행복한 마을모임 제공

‘행복한 마을모임’은 각 모임 대표들만 참석하는 게 아니라 모든 회원에게 열린 공간이다. 각 모임 간 정보 공유와 소통, 연합 행사의 기획부터 진행과 평가 활동을 함께 한다. ‘행복한 마을모임’은 임대주택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한 지역과 소통하는 활동을 벌이고, 공공이 하기 어려운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서 지원하고 해결하기도 한다. 그리고 환경 개선 작업과 주민 교육을 통해 주민 리더를 양성하고 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민들이 하나둘 마음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고, 어르신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죠. 또한 자녀들의 응원과 지지도 큰 힘이 돼요.”

양 대표는 12월에는 단지 내 상가를 임대해 노인들을 위한 노인장기요양 재가센터를 사회적기업 형태로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임대아파트라 안타까운 사연도 많은데, 독거 어르신들이 가장 어려움이 크죠. 그분들의 여생, 세상과의 이별이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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