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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5일 투입된 첫 수소버스 탑승
버스 오르자 우선 호흡 편하게 느껴져
달리는 공기청정기 이름 아깝지 않아
앉으니 승차감은 승용차 안 부러워
수소가 산소 만나 전기 ‘파바박’ 나면
구속에서 풀린 전자, 배터리로 흘러가
이때 공기정화 필수…강력한 정화 작용
완벽하진 않지만 친환경 기능 매력적
강동공영차고지의 수소버스들.
“이게 달리는 공기청정기래. 완전히 친환경적이래.”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설마. 전기버스도 전력 때문에 완전히 친환경은 아니라던데.”
그래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수소버스의 위용을.
내가 처음 수소버스에 탔던 12월19일만 해도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시내버스 6990대 중 수소버스는 한 대뿐이었다. 서울시 대원여객에 전화를 걸어 번호판을 확인했다. 서울시 최초로 정식 운행에 투입된 수소버스 370번의 번호판은 ‘서울74 사7284’.
서울버스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차의 동선을 확인했다. 버스는 이미 차고지를 떠나 회귀점인 충정로로 다가가고 있었다. 잡아 타지 못하면 군자역, 천호역, 강일동으로 멀어져갈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대문역 정류장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버스정보안내단말기에 정보가 떴다.
‘370 수소 4분.’
단말기는 다가오는 버스가 수소로 간다는 걸 알려줬다. 단말기 뒤 푸른 하늘에서 ‘수소 덩어리’가 눈부신 빛을 뿜어댔다. 수소 73%로 이뤄진 태양은 초당 6억t의 수소를 헬륨으로 바꿔 에너지를 발산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다.
정류장 버스정보안내단말기에 수소버스 도착 시간이 적혀 있다.
수소는 묘한 원소다. 우주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가볍지만, 반응성은 가장 크다. 그래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섞여있다. 우리 몸 같은 유기물에도 있다. 그런데 수소가 산소와 만날 때 ‘일’이 벌어진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그것. 전기가 ‘파바박’, 일어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둘은 물 분자(H₂O)를 낳는다.
수소연료전지 안에서는 이 은밀한 사건이 수시로 벌어진다.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자. 탱크에서 수소가 연료전지로 건너와 수소 이온과 전자로 쪼개진다. 구속에서 풀린 전자는 유전기가 되어 배터리로 흘러간다. 배터리를 충전한 전기는 모터를 돌린다. 남은 수소이온은 산소와 만나 물이 된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공기가 정화된다. 산소가 수소를 만나 전기를 일으키려면 오염 없는 순수한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형 디젤 승용차 40대 분량 미세먼지가 3중 필터로 걸러진다. 수소버스 한 대가 1년 동안 8만6천㎞를 운행하면 41만8218㎏의 공기가 정화된다고 한다. 이산화탄소는 연간 125t이 줄어든다. 30년생 소나무 1만9천 그루가 할 수 있는 일이다.
370번 수소버스 내부.
그래서일까. 370번 수소버스에 올라탔을때 코가 먼저 느꼈다. 숨 쉬기가 편했다. 둘러보니 천장에 ‘미세먼지케어 공기청정기’가 달려 있었다. 버스는 지하철보다 부드럽게 출발했다. 새로 뽑은 고급 승용차처럼 매끄럽게 움직였다. 안내방송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20여 분 달리자 패딩 점퍼 속이 후끈해졌다. 서너 명의 승객이 하나둘 두꺼운 겉옷의 지퍼를 내리거나 벗었다. 좌석은 원래 22석까지 가능하지만 16석만 달려 있었다. 대신 내리는 문 건너편으로 유모차와 휠체어를 놓는 자리가 넓게 비어 있었다.
버스가 강동공영차고지에 도착했다. 버스 운전사한테 운행감을 물었다. 버스 운전만 10여 년 하며 5~6종을 몰았다는 최한근(49)씨의 소감은 짧고 강렬했다.
“우아하죠.”
세상에 어떤 차가 운전자한테 이런 찬사를 들을까.
“난폭운전을 하려야 할 수가 없을걸요. 하도 부드럽게 움직여서.”
370번 수소버스를 운전하는 최한근 기사.
그는 수소버스가 승용차처럼 부드럽게 나가고 소음도, 진동도, 매연도 없다고 했다. 천연가스(CNG) 버스는 달릴 때 1㎞당 이산화탄소 968.55g, 질소산화물 0.797g을 내뿜는다.
천연가스 버스와 비교해 충전시간은 수소버스가 10여 분 길다. 천연가스 충전시간은 평균 10여 분. 수소버스는 처음에 연료를 30여 분 동안 완전히 채우고 난 뒤 매일 20분 정도 더 충전해야 한다.
차고지에는 수소버스 석 대가 줄지어 반짝이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 연말부터 투입됐다. 370번 버스 승객이 부러워졌다. 2025년까지 낡은 시내버스부터 1천여 대가 수소버스로 교체될 예정이라 하니, 언젠가는 우리 동네에서도 수소버스를 탈 수 있으리라. 현재는 마을버스 포함 460대인 전기버스도 그때쯤 2천여 대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전기버스처럼 수소버스 역시 완전 무결한 ‘친환경버스’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전기버스는 전력의 40%를 석탄, 26%를 원자력에서 얻는다. 그 탓에 완전한 친환경버스라 불리지 못한다. 수소버스 또한 연료 생산과정의 ‘원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370번 수소버스가 연료를 충전하는 H강동 수소충전소는 부생수소를 쓴다. 석유화학이나 제철 공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부생수소는 그레이(Gray) 수소다. 공정 중 메탄이 수소와 이산화탄소로 나뉘는 과정에서 질소산화물과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이때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잡아 가두면 블루(Blue) 수소가 된다. 태생부터 친환경이면 그린(Green) 수소라 불린다.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온실가스 발생을 처음부터 차단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수소 생산량의 95%는 그레이 수소다. 가격이 1㎏당 1.5~2달러로 가장 싸다. 한국가스공사는 탄소 배출 비용을 1t당 50달러로 가정하면 장기적으로는 그레이 수소와 블루 수소의 값이 같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블루 수소 가격을 유럽은 2030년까지 1.8달러, 미국은 2025년까지 1.2달러로 끌어내릴 계획이다. 그때쯤이면 그린 수소 생산기술도 좋아질 것이다.
아직은 ‘완전한’ 친환경이 아니면 어떠하리. ‘잠정적’ 친환경이라 해도 나는 수소버스에 타고 싶다.
수소연료 전지시스템.
참고 자료 : 서울시 보도자료, 한국가스공사 블로그 ‘에너지 이야기’, 한국전력공사 에너지 발전량 현황(2019년), 현대차 일렉시티 설명 책자, <도시를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과학>(로리 윙클리스 지음)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기자,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삶을 멈춘 뒤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다. 공역서로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저서로 <산타와 그 적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이야기> 등이 있다. 월 1회 연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