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외모는 자판기, 실제는 ‘인공지능’ 쓰레기 처리 로봇!

서울 쏙 과학 ③ 딥러닝으로 학습하는 재활용 로봇 ‘네프론’

등록 : 2021-03-04 15:48 수정 : 2021-04-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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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공원 앞에 서 있는 파란색 로봇

딸과 함께 재활용 병 인식 실험 진행

200㎖~2ℓ다양한 용량 16개를 투입

‘처리 완료’ 메시지에 딸은 환호성 질러


소셜벤처 ‘수퍼빈’, 인공지능 기술 탑재

서울 39대 비롯해 전국에 141대 설치

아직은 학습중…‘중복계산’ 실수 존재


더 많은 데이터 쌓이면 점차 정교해져

순환자원회수로봇 네프론.

“뭐어어~~? 로봇에 쓰레기를 넣으면 돈이 생긴다고?”

물기를 말리느라 거실 바닥에 죽 늘어놓은 빈 병들을 손가락으로 세던 아홉 살짜리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나는 ‘로봇이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판단했을 때에만 돈을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딸은 “그걸 로봇이 어떻게 해?” “돈은 어떻게 줘?” 질문을 마구 쏟아내다가 직접 보고 싶다며 따라나섰다.

여의도공원 6번 출입구 앞에 도착하자마자, 딸은 로봇을 금세 알아보고 달려갔다. 파란 앞면에는 어른 어깨높이로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옆에 달린 길고 네모난 스크린에 “캔(Can), 페트(Pet)를 투입해주세요”라는 메시지와 안내 동영상이 떴다. 언뜻 보기엔 자판기 같아 보였다.

실험을 시작했다. 준비물은 200㎖부터 2ℓ까지 다양한 용량의 빈 병과 캔 16개. 조건은 라벨과 뚜껑을 제거한 것과 제거하지 않은 것, 투명한 것과 색깔이 있는 것, 페트병인 것과 다른 플라스틱 혹은 유리인 것, 깨끗하게 닦은 것과 약간 오물이 묻은 것 등 4가지로 만들었다.

순환자원회수로봇이 얼마나 인식을 잘하는지 실험하기 위해 여러 조건의 빈 병 16개를 모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딸은 가장 완벽한 것부터 투입구에 넣었다. 깨끗하게 닦아서 말리고 라벨과 뚜껑을 제거한 페트병이었다. “폐기물을 인식 중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모니터에 떴다. 이내 메시지는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로 바뀌더니, 투입구 속 빈 병이 로봇 안으로 떨어졌다.

“와그작!”

가볍고 얇은 것이 무언가에 눌려 압축되는 소리가 들렸다. 딸아이가 “와아” 탄성을 질렀다. 로봇은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않고 잘 받아 삼켰다. 맥주캔도 쑥쑥 들어갔다. 그때마다 모니터 속 포인트가 10씩 올라갔다. 이번엔 비닐 라벨이 붙은 페트병을 넣어봤다. 처리됐다. 라벨은 없애고 뚜껑만 남긴 페트병을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어라, 이것도 먹는데? 뭐야, 뭐든 다 먹는거 아니야?”

딸이 약간 실망하는 눈치였다. 이번엔 로봇 개발사가 넣지 말라고 한 것들을 넣어봤다. 뚜껑과 종이 라벨이 붙은 페트병, 유리로 만든 잼병, 2.3ℓ들이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우유병. ‘혹시나 로봇이 못 먹을 걸 삼키고 망가지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스러웠다. 우우웅 하는 기계음이 좀 더 길어졌다. 이윽고 모니터 메시지가 바뀌었다.

“폐기물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폐기물이 반환됩니다.”

기특했다. 로봇은 정말 쓰레기와 자원을 구분했다. 개발사인 소셜벤처 ‘수퍼빈’ 자료에 따르면 이 로봇 이름은 ‘네프론’으로, ‘마치 사람이 눈으로 자원을 보고 기존 지식에 따라 종류를 구분하는 것’처럼 ‘새롭게 투입되는 자원에 대해 끊임없이 학습(Deep Learning, 딥러닝)’하는 인공지능을 갖고 있다.

투명 페트병을 많이 모았을 땐 수퍼빈에 대량판매할 수 있는 ‘수퍼모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딥러닝 즉 심층학습이란 컴퓨터가 사람처럼 배우고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학습 기술이다. 공부 방식은 인간과 다르다. 어른 손 한 뼘만 한 치와와, 망아지만 한 시베리안 허스키, 비슷한 덩치의 늑대를 분류하는 법을 배운다고 치자. 인간은 ‘개답다’는 특성부터 배운다. 컴퓨터는 다르다. 여러 사진에 나타나는 명암과 테두리, 패턴을 파악해 분류한다. ‘눈밭 속에 서 있으면 늑대, 그렇지 않으면 개’ 이런 식이다. 그래서 컴퓨터는 심층학습에 많은 데이터 즉 빅데이터가 필요하다. 충분히 배우지 못하면 틀린다. 실수도 한다.

우리가 본 네프론도 실수했다. 원래 우리가 로봇에 넣은 빈 병은 캔 3개, 페트병 11개 등 14개. 원래는 140포인트가 쌓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내 전화번호에 쌓인 포인트는 500이었다. 수퍼빈 웹사이트로 가서 ‘이용 현황’을 확인했다. 캔 4개, 페트병 49개 등 53개를 투입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로봇이 우리가 넣은 것보다 39개나 더 포인트를 쳐준 것이다!

우리가 넣은 것은 14개인데 계정에는 53개 상당의 포인트가 쌓였다. 수퍼빈 내 개인계정 갈무리.

문득, 로봇 투입구 안에서 ‘잉잉’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던 빈 병들이 떠올랐다. 다른 것보다 길쭉하게 생긴 병, 스티커 접착제가 제대로 떨어지지 않은 병, 간장 병, 둥그렇고 넓적한 요구르트 병 등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페트병들이었다. 이런 병들이 투입구에 머물러 있다가 떨어지기 전까지 포인트가 10씩 계속 올라갔더랬다.

회사에 알렸더니, ‘자체 시스템으로 오류를 파악해 중복 적립된 포인트를 정정하고 있다’는 답이 왔다. 아직은 로봇이 더 배우고 실력을 쌓아야 하는 단계인 모양이다.

로봇이 심층학습을 마친 뒤라 해도 ‘플라스틱 재활용’이라는 임무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면 인간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라벨과 뚜껑을 제거하는 일은 인간이 직접 해야 물, 화학약품, 전기 등 다른 자원 소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리를 뜨려는데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는 가방에서 수십 개의 캔과 페트병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투입구로 던져 넣었다. 모두 라벨과 뚜껑을 잘 제거한 모양인지 넣는 족족 투입구 안으로 슉슉 들어갔다. 살그머니 다가가 그의 포인트를 보니 ‘3077’. 딸이 외쳤다.

“우와, 저 아저씨 대단하다!”

그는 이 로봇한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일을 더 잘하는지 파악한 것 같았다. 서울 39대 등 전국에 141대가 있다는 로봇 주변에 사는 이웃도 그랬던 걸까. 서비스 개시 뒤 2년 동안 벌써 1억7600여만원어치 포인트가 현금으로 보상됐다.

수퍼빈은 올해에만 300대 이상의 네프론 을 전국에 더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사이 빅데이터가 더 쌓이면 로봇의 실력도 나아질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재활용 로봇에 빈 병을 넣어 용돈을 모으는 것을 추억으로 간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전 세대가 구멍가게로 빈 병을 가져가 사탕과 바꿔 먹던 추억을 지니고 있듯.

로봇이 모은 페트병을 원료로 만든 신발.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 자료: 수퍼빈 홈페이지, <안녕, 인간>(해나 프라이 지음, 김정아 옮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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