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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정월 대보름을 맞아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 1호 입주자들이 2층 공유공간 ‘씨실’에서 아이들의 세배를 함께 받은 뒤 단체사진을 찍었다. 소행주 1호 제공
9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주택
6층 고3 아이의 코로나 확진 소식에
화내는 이 없이 ‘고생 많다’ 격려 몰려
돌아가며 ‘응원 엽서와 꾸러미’ 전달도
‘생협 건강식품’ 한 바구니 보내거나
책과 술·숙취해소제까지 꼼꼼히 챙겨
내부 커뮤니티 공간, 쉼‘ 표’ 역할 톡톡히
“어려운 시기에도 이웃 있어서 행복”
“어려운 시기에도 이웃 있어서 행복”
2016년 가을 옥상에 있는 ‘날실’에서 소행주 1호 입주자들로 구성된 ‘야간비행’이 공연하고 있다.
화가 나지 않은 화요일.
8월의 화요일이었다. 단체대화방에 코로나19 확진자 소식이 떴다.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있는 마을공동체 주택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 1호’에 사는 9가구의 단톡방이었다. 그동안은 확진자와 밀접접촉해서 검사받았는데 음성이라는 정도였는데 말이다. 공동체 주택 맨 위층인 6층에 사는 고3생 현웅이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쿵.
현웅이 아빠인 사슴벌이 카톡으로 공유한 건 ‘현웅이가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는데도 양성 판정을 받았다, 금요일 친구 생일모임에 갔다가 그리되었다, 가족도 오늘 검사받는다, 주말 동안 소행주 식구들과 접촉은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현웅이 엄마인 채송아가 공동체 주택 2층에 있는 근린생활시설 식구들을 포함한 단톡방에도 같은 내용을 올렸다. 현웅이가 토요일 저녁 늦게 집에 왔고, 일요일과 월요일 한 차례씩 엘리베이터를 사용했다는 것도 덧붙였다. 2층에 입주한 비누두레와 성미산 공방은 월요일까지 광복절 대체 휴무일로 일하러 나오질 않아서 다행이었다.
소행주 식구들의 반응은 우선 현웅이 몸상태를 걱정하며 잘 회복되길 빌어주는 것이었다. 또 고생 많다는 격려와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는 응원이었다. 일단 입주자 대표인 강호의 ‘지령’대로 아이들을 포함한 전원이 일사불란하게 당일 코로나 검사를 받기로 했다.
‘마포구 보건소보다는 홍익문화공원 임시선별검사소가 줄이 길지 않다, 방역 시간으로 쉬는 시간대는 이러하다’ 등의 정보가 이어졌다. ‘누구한테든 생길 수 있는 일이니 우리 서로 미안한 마음은 갖지 않기로 하시죠.’ 4층에 사는 다정한 매너를 갖춘 피터의 톡은 기본이었다.
3층에 사는 필자인 느리는 출근한 뒤에 카톡을 확인해서 사무실에 위 사실을 알리고 의견을 구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다른시간대에 사용한 거 외 겹치는 동선이 없었음에도 바로 퇴근해서 검사부터 받으라는 판단이었다. 오후 예정된 외근도 취소했다. 귀가하니 필자의 남편 평범이도 돌아와 있었다. 검사 결과를 받을 때까지 ‘근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도 단체대화방에는 불평이나 불만의 숨소리 하나 없었다.
다음날인 수요일. 검사 결과 음성 통보 공유가 줄을 이었다. 그 가운데 오보도 있었다. ‘박짱의 고향이 음성입니다’라고 강호가 올리자 ‘사실 저의 고향은 음성도 양성도 아닌 증평입니다’라는 정정이 따랐다. 박짱은 현웅이의 옆집에 사는 아빠다.
강호가 던진 박짱의 고향 얘기가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이어지는 제안은 참으로 적절했다. 고통스러운 자가격리 잘 이겨내라는 응원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현웅이네를 격리하고 따로 임시 카톡방이 개설됐다. 그 ‘격리’는 소외의 격리가 아니라 함께 보듬는 격리였다. 현웅이, 지웅이, 보미 삼 남매와 채송아, 사슴벌부부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격리였다.
의논 결과는 ‘돌아가며 소소한 먹거리 꾸러미를 현웅이네 문 앞에 두자, 응원 메시지가 담긴 엽서는 필수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됐다. 하루만 맡기보다 수시로 하겠다는 에이미와 평범이의 자청도 있었다. 영양사로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에이미는 반찬류일 거 같고. 평범이가 가져다 놓을 건 사슴벌을 위한 캔맥주나 병 소주가 아닐까 강한 추측을 해보았다.
2019년 5월 소행주 1호 입주자인 변호사 ‘강호’가 법무법인 ‘오월’ 사무실을 냈을 때 다른 입주자들이 사무실을 방문해 축하해주고 있다.
모두 오전에 두었을 응원 꾸러미를 나는 밤에 가져다 놓았다. 미리 준비해 차질 없이 진행하진 못하지만 늦더라도 꼭 한다는 신념에 맞게 특색 있는 시간대 배달이었다. 현미국수 용기면, 감자라면, 채식 현미라면, 우리 밀 비빔라면, 우리 쌀로 만든 짬뽕라면 등 ‘요리계의 찌질이’답게 즉석식으로 마련한 건 물론이되 생협의 건강 생활 식품으로 전달했다.
목요일. 백신 접종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소행주 1호 엄마 아빠를 통틀어 최연소자인 다정한 피터가 잔여 백신 신청에 성공한 걸 부러워하는 끝맺음이었다.
‘사람 인’(人) 자 그대로
자가격리 중인 채송아에게 전화를 걸어 어찌 지내는지 물었다. 경험자 채송아가 들려주는 근황은 이러했다.
“‘혼자서는 못 사는구나’ 하고 많이 깨달았어. 어려운 시기에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어서 고맙지. 사람들이 다 다른 만큼 다양한 꾸러미가 재밌고, 거기 담긴 마음들이 느껴져서 고마운 시간이야.
올해 상반기에 경험한 첫 번째 격리 때는 집에 있게 되니 안 하던 정리 정돈까지 하며 쉼 없이 일해서 몸이 힘들었어. 지웅이랑 일주일 지나선 막 싸우고 그랬지. 요즘은 그냥 쉬고 있어. 하루 2끼 차리고 중간에 간식을 먹어. 전해준 꾸러미로 준비하면 되니까 어렵지 않아. 잠도 많이 자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그냥 밖에 못 나가는 답답함 외에는 휴가 같은 시간이야.”
채송아와 방과후학교에 다니는 막내 지웅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번에도 확진자 밀접접촉자로 격리 생활을 했었다.
“첫 번째 격리 때는 공동체 주택 2층에 입주한 방과후학교인 ‘도토리’ 사람들이 엄청 보내줬어. 그때 우리가 밀접접촉을 한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도토리 회원의 집에 마실까지 가서 난리가 났어. 코로나 때문에 너무 못 만나 소원하니 소규모로 마실이라도하자며 처음 진행한 것이었는데 말이야. 확진자 밀접접촉 사실을 알게 된 뒤 오히려 그동안 인사만 나누던 도토리 사람들까지 모두 응원해줘서 고맙더라고.”
채송아는 토요일에 마포의료사회적협동조합 소모임 산행 뒤 식사를 했고, 일요일에 방과후학교 도토리 마실을 진행했다. 그리고 월요일이 돼서야 토요일 식사 자리에서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런 순서였는데 그때도 이번처럼 모두의 응원이 뒤따랐다고 한다.
잘 지낸다니 농담을 건넬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나가서 쓰는 돈은 없지 들어오는 먹거리는 있지, 가계경제에 보탬 되지 않아?”
“하하하 맞아. 격리지원금도 나와.”
“얼마?”
“두세 달 걸린대. 지난번엔 140만원 나왔어.”
알바 안 나가도 알바비 넘는 금액이 들어온다니 내가 흥분됐다.
예상치 못한 내용의 응원 꾸러미를 말해달라고 하니 풍뎅이네 꾸러미였단다. 꼼꼼 그 자체였다고.
“애들 책과 내가 읽을 책은 기본이고 술도 사슴벌 것과 내 것에 숙취해소제며 애들 과자, 영양제까지 다 넣어준 거야. 다 기억 못할 정도의 엄청난 가짓수에 놀랐어. 너무 디테일해서 놀란 거지.”
치료를 위해 격리공간에 ‘수용’된 현웅이도 증상 없이 무탈하게 잘 지낸다고 했다. 하루 3번 배달되는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중간중간 컵라면도 끓여 먹고 집에서 시켜주는 과자도 먹으니 더 바랄 게 없다고 한다.
코로나19라는 엄혹하고 차가운 고립의 시국에 그래도 우리는 방역지침을 지키며 조심스레 볼 수 있는, 2층에 있는 씨실과 옥상에 있는 날실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숨이 트이지 않았느냐며, 소행주 공간 구성의 이점을 이야기하는 박짱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너무도 긴 코로나 시절에도 식구 같은 이웃이 있어 고립감을 느끼지 않으며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으니 다행이다. ‘사람 인’(人)자 그대로 옆에 지지대처럼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만금’보다 더 든든한 일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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