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위기를 ‘자립 공동체, 열린 공동체’로 성장하는 계기 삼아

행복둥지 이야기 공모전 SH 공동체 부문 대상 후보 구로구 천왕동 ‘천왕마을’

등록 : 2021-12-16 16:47 수정 : 2021-12-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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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여 가구가 사는 구로구 천왕마을은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공동체다. 2011년 입주 시작 뒤 30여 개의 마을공동체 활동 모임이 생겨났다. 2014년엔 이들이 뜻을 모아 천왕마을연합회를 꾸려 함께 마을축제 ‘천생연분’을 해마다 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펼치며 더 단단한 공동체로 나아가려 한다. 재봉틀 동아리에서 일회용 마스크 사용 자제를 위해 천 마스크를 함께 만들고 있다. 천왕마을 제공

코로나19로 마을회관 운영비 고갈

관리비 마련 위해 나물, 특산물 등

8차례 공동구매 열어, 기부도 받아

주민 자립 경제공동체 가능성 엿봐

6천여 가구 사는 SH 시프트 혼합단지

2012년부터 30여 개 마을 모임 생겨

마을연합회 만들어 협력·조율해와


지속성 위해 마을협동조합 만들어

“마을회관 관리비를 내야 하는데 큰일이네요.”

마을연합회 임원들의 시름이 깊어갔다. 코로나19로 2년간 마을회관 문을 열지 못했고, 운영비로 모아두었던 재정은 거의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구로구 천왕동 천왕이펜하우스 701동 1층에는 35평의 자그마한 마을회관이 있다. 이 공간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천왕지구 주민을 위해 제공한 주민자치 공간으로, 2015년부터 천왕마을연합회가 운영해오고 있다.

둘레길 작은도서관에서 ‘도담도담 원격수업 지원교실’이 열려 참여 아이들이 온라인수업을 받고 있다. 천왕마을 제공

마을회관은 낮에는 아파트 주민을 위한 ‘나름카페’로, 저녁에는 동아리 모임 장소로 사용됐다. 운영은 주민 봉사자들이 맡았다. 청소년 시설이 부족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오후 4~7시에는 청소년이 직접 운영하는 ‘철부지카페’가 열렸다. 인건비까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마을회관을 유지하는 관리비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재앙으로 회관 관리비 문제가 발생했다.

“지리산 봄나물 공동구매라도 해볼까요?”

임원 중 한 명의 부모님이 지리산에서 농사짓고 있는데, 마침 봄나물 철이라 공동구매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요즘 도시 젊은 분들이 나물을 요리해 드실까요?”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서 회관 운영비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어려워진 마을회관 살림살이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작한 먹거리 공동구매 행사 안내 카페 게시물. 천왕마을 제공

이렇게 천왕마을회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봄나물 공동구매가 시작됐다. 취나물, 참두릅, 머위, 쑥부쟁이 등을 판매했고, 신선한 나물의 맛과 향에 반한 주민들이 2차, 3차 공동구매에도 계속 구매해주셨다. 누구보다 나물을 많이 팔아주신 분은 지역 어르신들이었다. 마을회관이 코로나로 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동구매 소식이 나올 때마다 나물을 사주셨다.

어르신 세 분은 운영자금에 보태 쓰라고 봉투에 10만원씩 담아서 직접 가져오셨다. “우리는 이제 이 마을에서 죽을 때까지 살 건데, 젊은 사람들이 마을을 위해서 애쓰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요.” 한 어르신이 봉투를 내밀며 하신 말씀이, 나물을 팔아 마을회관을 운영해보겠다고 애쓰던 임원단에 감동을 줬다.

공동구매는 철원 막걸리, 신안 곱창 김부각, 강원도 양구 펀치볼 옥수수, 제주도 새우장, 전복장, 지리산 건고사리에 이르기까지 8차에 걸쳐 진행됐다. 처음에는 회관 관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진행될수록 주민들에게 자립 경제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줬다.

“천왕마을은 서울에서 대표적인 마을공동체입니다”

천왕마을엔 SH공사의 장기전세주택(시프트) 단지 등 6천여 가구가 입주해 살고 있다. 분양 25%, 장기전세와 국민임대 75%로 혼합단지(소셜믹스)다.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사업을 시작하던 2012년 이후 수십 개의 마을공동체가 형성돼 왕성히 활동해왔다. 2014년에는 30여 개의 천왕마을공동체가 힘을 모아 ‘천생연분’ 마을축제를 기획해 2500명 넘는 주민이 참석했다. 더 나아가 자발적 주민조직인 천왕마을연합회를 결성했다. 그 이후로 7차례에 걸쳐 해마다 천생연분 축제를 개최해왔다.

온라인 마을축제 행사 포스터. 천왕마을 제공

천왕마을연합회는 주민들의 생활정보 나눔을 위한 온라인 공동체로 회원 수가 7천 명이 넘는 네이버 지역카페 ‘천왕지구 입주자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네이버 카페에서 온라인 축제로 ‘천왕 동영상 장기자랑전’과 ‘천왕 사진전’을 개최했다. 추석 명절 기간, 고향에도 가지 못하는 주민들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시작한 ‘온라인 천생연분 마을축제’는 장기자랑에 10팀, 사진전에 15팀이 참가했다. 장기자랑전에서는 노래와 춤, 악기 연주 등 주민들의 다양한 끼와 재능을 볼 수 있었고, 사진전에서는 천왕의 아름다운 사계절 사진들이 주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온라인 축제는 조회 수가 1300회가 넘을 정도로 많은 주민의 관심 속에 진행됐다.

천왕마을연합회 아래 천왕마을학교, 천왕작은도서관연합회, 천생연분 축제준비팀, 마을회관 운영팀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마을공동체도 큰 타격을 받았다. 자원봉사자들도 10년의 세월 동안 아이들이 자라면서 경제적 필요가 생겼고, 일자리를 찾아 한 명, 두 명 흩어졌다. ‘이렇게 2~3년이 지나면 천왕마을공동체도 한때 즐거웠던 추억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을연합회 임원단도 점점 힘이 빠지던 차에 회관 운영에 어려움마저 겹쳤다.

“마을협동조합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요?”

공동구매로 마을자립의 꿈을 갖기 시작한 연합회 임원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보고 싶었다. 코로나로 마을공동체도 힘들지만, 마을 주민들도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먹거리를 만드느라 많이 지쳐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며 만들어진 가장 큰 자산인 주민네트워크의 힘으로 재능 있는 주민이 직접 만든 간식이나 반찬을 맞벌이 가정 등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게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자원봉사로 마을공동체 활동을 해오며 한계를 많이 느껴왔지만,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에 번번이 포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물러설 수 없다고 임원들이 생각했다.

연합회에서 마을기업 준비팀을 만들어서 협동조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일을 전담할 임원 중 한 명이 협동조합을 위해 이직하기로 결심했다. 구로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성공회대 마을대학의 도움을 받으며 매주 모여 준비했고, 드디어 11월6일 ‘천왕마을손길사회적협동조합’ 창립총회를 6명의 발기인과 18명의 설립 동의자가 모여서 개최했다.

천왕마을손길사회적협동조합은 공동구매, 다자간 물품 재능 품앗이, 마을 꽃차카페를 중심으로 주민의 재능과 필요를 연결하는 ‘손길’이 되고자 한다. 2023년까지 조합원 1천 명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을공동체가 경제적 주체로 자립해 지역주민의 소득 증대와 지역상권 활성화를 주도하는 플랫폼이 되길 꿈꾸고 있다.

“코로나19로 커진 교육격차를 마을의 힘으로 줄여봅시다”

천왕마을에는 마을교육자치회 ‘풀꽃지기’가 있다. 지역 교육기관들이 손잡고 만든 마을교육자치회다. 천왕초·하늘숲초·천왕중학교와 돌봄센터, 키움센터, 청소년문화의 집, 지역아동센터, 작은도서관협의회, 마을연합회 등이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풀꽃지기는 코로나19로 심화된 아이들의 교육격차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공모한 교육 후견인 사업에 선정돼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겐 또 다른 도전과 체험의 시간이 됐습니다”

이웃 간에 서로 보고 이야기 나누며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 더는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을공동체들은 분명히 약해졌고 어려워졌다. 하지만 코로나 2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이전에 해보지 못한 창의적인 만남의 경험들을 하고 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코로나19 이후 천왕마을은 더 단단한 공동체로, 자립 공동체로, 열린 공동체로 성장해 있을 것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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