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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 달리’ 입주자들이 2020년 ‘싱글벙글 프로젝트’로 꽃꽂이를 하고 난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싱글벙글 프로젝트는 꽃꽂이와 함께 컵받침 등 여러 물품을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민들이 많이 가까워졌다고 한다. 소행주 달리 제공
20~80대 함께 모인 여성 20여 명
입주 초기엔 덤덤히 서로 인사했지만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 벌이면서
절친한 깐부 되어 즐거운 생활 보내
모두가 모여서 음식 함께 나눠 먹고
‘카페 같은 커뮤니티실’에서 전시 열어
암 투병 동료 위로하는 마음 나눌 때면
혼자라면 엄두 못 낼 행복감에 젖게 돼
혼자라면 엄두 못 낼 행복감에 젖게 돼
2020년 10월 말에 열린 문학의 밤 ‘시월애야’의 모습. 입주자 모니카와 딸 해니가 기타 연주를 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소행주 달리 제공
어색한 첫 만남
2019년 10월25일 금요일 저녁, 아직은 새 건물 냄새가 많이 나는 커뮤니티실에 몇몇 사람이 어색하게 모였다.
“저는 저기 아래 우디안에 살고 있는데 지나가는 길에 공사하는 거 보고 집이 깔끔하고 이뻐서 선택했어요.”
“저는 동생이 여기 근처 사는데 여성안심주택이 있다고 해서 왔어요.”
공동체 주택에 대한 이해나 정보를 가진 사람보다는 안전이나 환경을 생각해 여성안심주택 ‘달리’에 왔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공동체 주택이 무엇인지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른 채 그렇게 우리의 달리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마음을 나누는 브런치
1인 가구이다 보니 끼니를 챙기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음식을 하다 보면 양이 많아지고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많다. 게다가 혼자 먹는 밥이란 정말 맛없다. 그러다 보니 하나둘씩 같이 먹자고 청하게 되고, 토요일에는 브런치를 같이 먹기로 했다. 처음에는 몇몇이 모여서 먹다가 달리 식구 모두 모여서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음식을 많이 만들어 나누어 먹기로 했다. 육개장과 감자탕을 한 솥 끓여 한 대접씩 나누어 먹기도 하고, 제빵제과 자격증이 있는 조엘이 티라미수를 만든 날은 신예, 나예, 파랑, 에이, 헤이즐 같은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짱이었다. 중국 동포 출신인 럭키의 마라샹궈는 중국 본토의 매운맛을 제대로 맛보게 해줬다. 강원도 여자 모니카는 구수하고 쫄깃한 감자옹심이를, 기쁨은 웨지포테이토를 만드는 등 각자가 할 수 있는 요리를 선보여서 브런치는 언제나 풍성하고 맛과 흥이 넘치는 자리였다. 83살 복경씨는 식사 뒤 달달한 믹스 커피 한잔을 하고는 “잘 먹었습니다.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하며 허리 굽혀 인사하신다. 이렇게 먹을 것을 나누면서 우리는 정을 쌓아갔다.
추석과 설날 브런치는 조금 특별하게 준비한다. 대부분이 본가에 가지만, 혼자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끼리 모여 같이 명절 장을 본다.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에 가서 새우도 사고, 갈비, 식혜, 송편 등을 사며 명절 느낌을 한껏 즐긴다. 함께 만든 전과 갈비, 떡국을 나누어 먹다 보면, 혼자인 1인 가구가 보낼 수 없는 북적대는 명절을 보내게 된다.
우리 달리는 전원주택처럼 주변 환경이 한적하고 공원과 산이 가까이 있다. 카페처럼 꾸며진 커뮤니티실 ‘소리소문’에 앉아 있으면 교외 어느 카페에 나와 있는 것 같다. 봄이 시작되면 전면의 창으로 보이는 작은 동산에 연둣빛 새순과 나물로 작은 초록 융단이 깔리고, 과수원 배꽃이 신부의 베일처럼 펼쳐진다. 아침 산책길에는 바람에 날린 배 꽃잎과 복숭아 꽃잎이 깔아준 꽃길을 걸을 수 있다. 삶이 그대로 영화 <리틀 포레스트>다.
앞동산에서 캔 냉이와 쑥으로 된장국과 나물을 하고, 씀바귀, 고들빼기, 개망초 등을 쌈장과 함께 먹으면 쌈밥정식이다. 작은 텃밭에 상추와 감자, 배추, 열무, 토마토, 가지, 오이 등을 심어 먹기도 한다. 상추가 많을 때는 따서 바구니에 담아 무료 나눔을 하는데, 지나가는 분들이 한 봉지씩 가져간다.
더불어 하나 되는 ‘신내달리포레스트’
2021년 중랑구 주민제안사업으로 진행한 신내달리포레스트 중 복숭아병조림 만들기 모습. 소행주 달리 제공
제철음식을 만들어 먹기 좋아하는 우리는 중랑구에서 공모하는 주민제안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선정돼 1인 가구에서 맛보기 힘든 제철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업, ‘신내달리포레스트’를 2021년 5월부터 10월까지 진행했다. 봄에는 매실청과 매실장아찌를 담그고, 이른 여름에는 오이지를 담가 공유하고, 늦은 여름에는 복숭아 병조림을 보관하고, 가을에는 육포와 딸기주를 만들어 나누는 사업이다.
오이 세 접을 씻어 소금에 절이고, 매실 60㎏을 씻어 과육을 자르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여서 수다를 떨고 웃음을 나누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수고로움을 잊어버리고 같이 무엇인가를 해낸 기쁨에 뿌듯해했다.
우리 옆집인 공동육아주택 ‘너나들이’에 오이지와 매실청, 육포를 만들어 보냈는데, 며칠 뒤 너나들이 사람들이 미역국을 끓여서 한 냄비 보내 왔다. 그러고는 장 담그기와 김장도 같이 하자는 제안을 했다. 역시 마음을 여는 데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 최고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우리
누구보다 달리 일에 적극적인 행동대장 루나는 폐암에 걸린 지 3년 반 만에 암세포가 뇌로 전이된 암 환자다. 2020년 가을까지 잘 지내던 루나가 아프기 시작하자, 모니카는 사혈과 마사지를 해주고 레지나와 샐리는 죽을 끓여주었다. 아프면 서러운 법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찾아봐주고 기도해주고 식사를 챙겨주는 그 마음들이 고마워 루나는 마음이 찡했다. 병마와 싸우는 루나에게는 달리 식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언니, 오늘 시간 있으면 같이 저녁 드실래요?” 어느 날 배시시 웃으며 얀이 물었다. 샐리가 상을 차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불러 8명이 모였다. 얀은 직장에서의 고민을 꺼냈고 우리는 이야기 끝에 즉흥적으로 강릉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밤바다에서 소원을 써서 풍등을 날리고 불꽃놀이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문득 떠나고 싶을 때 동반자가 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어 안심된다.
자칭 커뮤니티실 죽순이 샐리는 아픈 조카를 돌보며 살아간다. 샐리는 달리에 오기 전에는 제한된 삶을 살았다. 조카와 병원에 다니고 고양이를 돌보고 시간 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달리에 오고부터는 넓은 공간을 활용하여 좋아하는 식물을 가꾸고, 그림동아리 ‘행복을 그리는 사람들’(행그리)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요리로 달리 식구들을 행복하게 한다.
10월의 마지막 밤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10월의 마지막 밤에는 시월애야(詩月愛夜)라는 ‘시나 글을 읽고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는 문학의 밤’을 열었다. 레지나는 첼로를 연주하고, 모니카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앨리스는 명상 글을 읽고, 호시는 책 소개를 했다. 참석자인 레지나 오빠는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께 쓴 편지를 낭독했다. 노신사의 담담하고 솔직한 편지는 듣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2021년 여름 소행주 달리 입주민들이 공유공간 ‘소리소문’에서 타로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소행주 달리 제공
평소 휴식을 취하며 식사와 커피를 즐기던 커뮤니티실 ‘소리소문’도 ‘시월애야’ 기간에는 그림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행그리’의 작품을 열흘간 전시하기로 하고 포스터도 붙였다. 처음엔 ‘누가 보러 올까’ 싶었다. 그런데 뜻밖의 단체손님이 몰려왔다. 이웃 꼬맹이들이 와서는 “와! 고양이 눈이 진짜 같아요”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거 같아요” 하며 저마다 평을 한마디씩 하고 갔다. 지나가던 부부는 커피 한잔과 함께 인생 이야기를 하다가 부부 초상화 스케치를 부탁하기도 했다.
어스름한 퇴근길, 집에 도착하면 들르게 되는 곳이 환하게 불이 밝혀진 커뮤니티실이다. 누군가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있다가 돌아오는 이를 반겨준다. 그날 하루의 안부를 서로서로 전하며 같이 저녁식사를 한다. 하나둘씩 모이면 게임도 하고 따뜻한 차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달리 식구들은 거창한 공동체의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여기 우리 달리에 같이 살게 되면서 “더 이상 외로움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나누고 배려하는 삶이 우리가 꿈꾸던 공동체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깐부가 된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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