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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인지프로그램 효과 논문 써 입증”

치매예방 프로그램 만든 성동구 치매안심센터의 박성현 선임

등록 : 2023-04-13 14:57 수정 : 2023-04-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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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 성동구 치매안심센터 선임(작업치료사)이 4일 성수동1가 센터 회의실에서 치매예방 프로그램 ‘기억을 잇다’ 교재를 보여주며 활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6년간 치매영역 작업치료 역할 개척

2021년 개방형 교재로 프로그램 운영

인지기능 향상, 우울 감소 효과 확인

연구논문 ‘신경과학회지’에 2월 등재

개정판 내놔 “실천 길잡이로 활용되길”

대한신경과학회지 2월호에 성동구 치매안심센터 인지프로그램 ‘기억을 잇다’의 효과성 검증에 관한 연구논문이 실렸다. 논문에 따르면 센터의 치매예방 프로그램이 정상 노인의 인지 기능 회복과 우울 감소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인구 100만 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유병률은 높아지고 뾰족한 치료 방법은 아직 없는 상황이기에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동구를 비롯해 전국 치매안심센터 256곳이 예방 프로그램 운영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이다.

지난 4일 성동구 성수동1가에 있는 치매안심센터에서 만난 연구논문의 주 저자인 박성현(41) 선임(작업치료사)은 “기억력 향상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효과가 검증된 교재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성동구 치매안심센터가 문을 연 2007년부터 근무해온 원년 멤버다. 센터는 현재 한양대 병원에서 위탁 운영하며 18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박 선임은 치매 영역 작업치료사 역할을 개척해오며 개발 업무를 주로 해왔다. 작업치료사는 교육과 훈련, 운동 등을 통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그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효과성 검증까지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2021년 처음 선보인 교재 ‘기억을 잇다’는 인지프로그램 활동지 형태로 만들어졌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개방형 과제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글자나 숫자, 단어를 다르게 넣으면 정답이 바뀐다. 동일한 과제지만 생각이나 활동을 다르게 하면 결과도 달라지는 것이다. 활동지 한 권을 끝낸 뒤 새로 받은 활동지로 다르게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셈이다. 박 선임은 “반복 수행할 수 있게 해 기억력 향상 활동을 습관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교재 개발 뒤 60~80대 인지 기능 정상 주민 130명을 모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주 2회 8주 동안 사전, 사후 평가와 14번의 활동이 이뤄졌다. 참여자들은 주마다 한 번은 오프라인 공간(센터, 복지관, 경로당 등)에 나와야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6주 이상 참여율이 66.7%로 높지 않았지만, 주관적 기억감퇴 평가와 노인 우울척도 평가에서 의미 있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센터를 위탁 운영하던 서울의료원 의료진과 함께 연구논문에 결과를 담아 신경과학회지에 투고했다.

그사이 박 선임은 교재 개정을 진행했다. 신체기억법 등 8개 영역의 새로운 인지 활동을 추가했다. 신체기억법은 신체를 이용해 단어를 기억함으로써 연상기억력을 향상하는 활동이다. 예를 들어 기억해야 하는 단어가 전화번호라면, 머리, 눈, 코, 입 등 신체 부위와 전화번호를 연결해 신체 부위만 떠올려도 전화번호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주민들이 책자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활동 영상을 볼 수 있는 정보무늬(QR코드)도 삽입했다. 그는 “집에서 영상을 참고해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인지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했다.

투고한 논문에 대해 지난해 11월쯤 신경과학회로부터 수정 요청 회신을 받았다. 3차례 수정을 거쳐 통과했다. 학회지 등재 뒤 센터는 프로그램 확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국 센터에 공문을 보내 프로그램을 알렸다. 열흘 동안 16곳에서 교재와 프로그램 운영 예시 피디에프(PDF) 파일 신청을 해왔다. 부천에 있는 한 어르신은 직접 센터를 찾아와 교재를 받아 가기도 했다. 그는 “전국 치매안심센터 어디를 가든 효과적인 치매예방 서비스를 받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지역에서는 17개 동 주민센터와 돌봄시설에 책자(교재)를 보냈다. 활동가 양성 교육과정 참여자들의 자발적 확산 활동도 이어졌다. 성동구가 2년 전부터 평생학습 프로그램과 연계했고, 올해는 센터가 동네 배움터로 지정돼 교육과정에 주민 참여가 손쉬워졌다. 교육은 자연스레 봉사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50여 명이 활동하는 기억이음봉사단은 치매전문자원봉사단으로 지난해 서울시광역치매센터의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치매예방법을 배워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 실천으로 연결되는 좋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했다.

박 선임은 기억력 향상 활동은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에 와 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이나 가족이 프로그램 참여를 꺼리는 경우도 여전히 있다. 그는 “당사자가 하지 않으려 하더라도 가족들이 ‘그래도 해보자’고 해줬으면 좋겠다”며 “꾸준히 활동하도록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도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치매 지원을 위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센터에는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다. 벌써 주위에서 센터의 치매예방 프로그램의 다음 단계가 궁금하다는 말도 나온다. 박 선임은 “더 좋은 프로그램을 위한 개발을 이어갈 계획”이라며 “치매예방 프로그램이 더 많이 알려져 원하는 주민 누구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게 길잡이로 활용되기 바란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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